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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현 Jul 13. 2022

나 혼자 키우는 엄마는 꽃사장님

나에게 결혼식은 이제 흑역사가 되었지만, 그래도 괜찮아


결혼식에 대한 내 로망은 딱 하나였다. 우리 교회에서 결혼하는 것. 비록 지금의 나에겐 흑역사가 되었지만 그래도 좋게 생각해서 꿈은 이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다신 없을 웨딩드레스이니까.


세미를 낳고 한 결혼식이라 최소한으로 하고 싶었다. 준비도 혼자 다 했고 (그게 억울하지도 서운하지도 않았다) 결혼식을 하면 전남편과의 관계가 사이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라는 아주 작은 희망과 기대로 치렀지만 예상대로 큰 변화는 없었다. 그 후로 오히려 더 확실해졌다고 해야 하나.


코시국이 막 시작할 무렵이었어서 주변에서는 결혼식을 다 미루고 있던 중이었지만,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 미루지 말고 해 보자고 하셔서 믿고 따를 수 있었다. 그리고 미룰 마음도 없었다. 아마 미뤘다면 결혼식 준비를 다시 하지 않았을 것 같아서. 빨리 해치우고 싶은 숙제 같았으니까.


그즈음에는 세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전이었고 코시국 초반이라  밖은 워낙 위험했기에 (그 당시에는 다들 이해했다기보다 두려움이 컸던 시기라서) 청첩장을 직접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하지만 생각했던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에 와주어서  사실에 감동받아 혼자 많이 울었다는   사람들은 알까. 아마 나를  아는  사람들은 짐작했겠지.


축주를 해준 친구와 눈이 마주친 순간 꾸욱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 모습을 본 내 사람들도 함께 울었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버텨왔는지 거기까지 어떻게 견뎌왔는지 다들 잘 알고 있었고 그 누구보다 내 행복을 빌어준 내 사람들이니까.


무리 지어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서 (내 생각으로는 내 주변엔 I가 확실히 많아서) 전부 다 혼자 따로 왔을 텐데 그것 또한 고맙달까나. 초등학교 베프 두 명, 중학교 베프 세 명,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친구들 다섯 명 정도에 뽀빠이화원을 운영하면서 손님에서 언니 동생 친구로 지금까지 내 곁에 머물러주고 있는 내 사람들 8명 총 20명 안팎이 전부.


그때 와준 내 사람들 덕분에 그 후로 내가 용기 내서 이혼이라는 결심을   있었다. 사실 이 말이 너무 하고 싶었다.


여전히 내 곁에 함께해줘서 고마워 :)  사람들과의 모든 순간들 꼬박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어. 정말 모조리 사랑해. 이게 결론이야!


#사진은이거하나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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