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결혼식은 이제 흑역사가 되었지만, 그래도 괜찮아
결혼식에 대한 내 로망은 딱 하나였다. 우리 교회에서 결혼하는 것. 비록 지금의 나에겐 흑역사가 되었지만 그래도 좋게 생각해서 꿈은 이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다신 없을 웨딩드레스이니까.
세미를 낳고 한 결혼식이라 최소한으로 하고 싶었다. 준비도 혼자 다 했고 (그게 억울하지도 서운하지도 않았다) 결혼식을 하면 전남편과의 관계가 사이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라는 아주 작은 희망과 기대로 치렀지만 예상대로 큰 변화는 없었다. 그 후로 오히려 더 확실해졌다고 해야 하나.
코시국이 막 시작할 무렵이었어서 주변에서는 결혼식을 다 미루고 있던 중이었지만,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 미루지 말고 해 보자고 하셔서 믿고 따를 수 있었다. 그리고 미룰 마음도 없었다. 아마 미뤘다면 결혼식 준비를 다시 하지 않았을 것 같아서. 빨리 해치우고 싶은 숙제 같았으니까.
그즈음에는 세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전이었고 코시국 초반이라 집 밖은 워낙 위험했기에 (그 당시에는 다들 이해했다기보다 두려움이 컸던 시기라서) 청첩장을 직접 준 경우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이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에 와주어서 그 사실에 감동받아 혼자 많이 울었다는 걸 내 사람들은 알까. 아마 나를 잘 아는 내 사람들은 짐작했겠지.
축주를 해준 친구와 눈이 마주친 순간 꾸욱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 모습을 본 내 사람들도 함께 울었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버텨왔는지 거기까지 어떻게 견뎌왔는지 다들 잘 알고 있었고 그 누구보다 내 행복을 빌어준 내 사람들이니까.
무리 지어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서 (내 생각으로는 내 주변엔 I가 확실히 많아서) 전부 다 혼자 따로 왔을 텐데 그것 또한 고맙달까나. 초등학교 베프 두 명, 중학교 베프 세 명,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친구들 다섯 명 정도에 뽀빠이화원을 운영하면서 손님에서 언니 동생 친구로 지금까지 내 곁에 머물러주고 있는 내 사람들 8명 총 20명 안팎이 전부.
그때 와준 내 사람들 덕분에 그 후로 내가 용기 내서 이혼이라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이 말이 너무 하고 싶었다.
여전히 내 곁에 함께해줘서 고마워 :) 내 사람들과의 모든 순간들 꼬박 빠짐없이 다 기억하고 있어. 정말 모조리 사랑해. 이게 결론이야!
#사진은이거하나남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