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배 부른 소리
카카오톡 메시지 빼곤 좀처럼 울리지 않던 전화 벨소리가 울려된다.
오랜만에 서울에 머물고 있는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그는 남 부러워할 스펙에 걸맞게 대기업에 취업해 승승장구 해오던 유일한 친구였다.
'그런 바삐 사는 친구가 어연 일로 전화를 다 했을꼬, 안부 전화인가 새해 밝았다고 임마가 철 들라하나.'
마저 보던 업무를 뒤로 한채 창고 너머 뒤뜰에 나아가 통화를 이어갔다.
생각보다 전화 내용은 간결했다.
"나 일 그만두고 내리 간다."
친구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내게 시 부리고 있었다.
"아니 그냥.. 여행도 좀 하고 고향 내려 가서 딴일 찾아볼라고.. 모르겠어 즐겁지 않아 행복한지 않은 건 확실해"
'임마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순간 통화를 이어가며 거닐고 있던 내 발검음이 멈추어 섰다. 오직 통화 중에 있는 그 친구의 말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허허벌판 매장 뒤뜰에 불어오는 거센 겨울바람 소리도 뒤에 보이는 장례식장에 늘 울려 퍼지는 아이고- 소리마저 그 순간만큼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그냥 그냥.."
난 더 이상 공격적인 질문을 이어갈 수 없었다.
수 없이 많이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겠거니 하며 친구와의 통화에서 짧게 나마 그의 앞날을 응원했다.
그리고 전화를 끓고 잠시 내 발걸음을 멈춰섰던 그곳에 멍하니 서 주머니에 있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순간 이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애써 현실과 타협하며 쉼 없이 달려왔노라 내 스스로에게 자신 있게 말한 선택들이, 내가 믿어왔던 이 소신과 기준 끝엔 결국 아반떼가 아닌 아우디 차키가 내 손에 움켜쥐고 있을 것이라고 그럼 그 차키 하나가 내 삶의 질을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게 옳은 것이라고 믿어왔던 된장 같은 내 신념이 그 순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깨닫기까진 채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다 각자 사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법이 틀리듯 그 기준 또한 다른 법이라고, 난 결국 돈이 목적이었고 그 친군 자신의 신념과 당장 앞의 행복이 우선적 이었음을.
그렇게 명품에 목말라하며 사람의 기준을 돈으로만 평가하던 된장인을 잣대 하고 욕을 서슴지 않던 내가, 나만 몰래 간직하며 절대 들켜서는 않아야 했던 진짜 된장 같은 내 속내가 들키고 보여진 것 같아 한없이 작아지고 창피해져만 갔다.
그리고는 흩날리는 담배 연기 속에 한숨만 따라 묻어 갈 뿐이었다.
우린 어느새 우리가 만들어 놓은 틀에 끼워 맞추려 부정하려 하는 이질감에 불현듯 이염됐을 지도 모르겠다.
돈이 전부라고 돈이 최고라고 말하는 그 어느 누구처럼.
사회가 지정해놓은 스펙에 걸맞기 위해 당장 눈 앞에 행복은 멀리하고 그 끝에 더 큰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며 본인의 이문만을 따지고는 스스론 아니라고 치부해도 결론적으론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소시오패스처럼.
우린 그렇게 변질되며 세뇌 당한 것은 아니 었을까
적어도 그렇게 난 여전히 명함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것처럼.
행복하지 않다는 친구의 말이 애써 거짓된 내 방식에 대해 일침이라도 하듯, 가슴이 답답해져만 갔다.
알다가도 모를 친구가 내심 부러웠다. 어떠한 이유로 퇴사를 결정 지은 것은 알 수 없다한들 퇴사라는 명분이 그에 앞날에 행복이 주어질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으나, 현재 나의 행복 기준은 이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그 친구의 용기가 부러웠다.
늘 시간에 쫓겨 돈을 쫓아 바쁘기만 했던 내 삶에 느낌표 하나를 쥐어주는 친구의 소신이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돌아보라는 일종의 메시지 같았다.
난 결국 우리 안에 갇힌 새마냥 이안에 울타리가 세상 전부라고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친구는 등 따시고 배 부른 소리에 불과했을까?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정답이 뭔데?..'
그리고 다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사람은 아무도 다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고 아무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만들어 줄 수 없다.
-그레이엄 그린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20,30대 평범한 내 이야기들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