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 넷
일상 속 아침은 알람과의 싸움이다. 하지만 큰돈 내고 온 인도여행에서 아침은 낯섦과의 싸움이다. “여기가 어디지? …… 아, 맞다. 나 인도여행 왔지.”하고 생각하는 거다. 아침부터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에 잠이 깨서 옆을 보니 낯선 사람이다. 어제의 나에게 전보를 쳐본다. “이 친구는 누구냐?”
어제의 나는 방 빌리는 데 실패했다고 한다. 일본 친구가 예약한 호텔에는 남은 방이 없었다더라. 인도여행 와서 새벽 4시에 밤거리를 나돌아 다닌다는 건 미친 짓이라고 판단. 일본 친구에게 스미마셍하며 나그네에게 인정을 베푸는 게 어떻겠냐면서 방을 같이 쓰자고 했던 거다. 그래서 내 앞에 자는 낯선 사람은 어제 그 일본 친구다. 이 이야기를 주변에 하면 겁도 없다는 말들을 한다. 그 말대로면 사람을 쉽게 믿기 때문에 명이 짧을 것 같다. 나도 일본 친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이 출판되면 보험 가입 거부 사유가 될까?”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다.
사람들은 여행지에 온 첫날 어디 가서 무얼 할까? 나의 경우는 죽은 스마트폰을 심폐소생술로 살리는 일이다. 인도여행 온 이 가난한 여행자는 저렴하다던 현지 유심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걸어 통신사로 향하려 한다. 새벽에 차 한 대 안 보이던 길에는 경적을 울려대며 돌진하는 일본제 자동차들이 넘쳐난다. 인도의 자동차들은 마치 GTA 게임에서 튀어나온 듯이 계통 없이 돌진한다. 달리는 자동차에 공포감이 들면 신호등의 존재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하지만 이 동네의 신호등은 누가 다 뽑아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인도인들은 경적의 사용법을 잘못 익힌 듯싶다. 앞에 차가 없어도 마구 울려댄다. 마치 경적의 내구성을 검증하는 엔지니어 같다. 10만 번쯤 누르고 “일본 차라 다르군”하는 거다. 그게 아니라면 경적을 처음 듣는 꼬맹이가 신기해서 막 눌러대고 있는 모양이다. 통신사까지 걸어가는 20분은 그렇게 고막을 테러당했다. 귀만 문제였다면 나았으리라. 전 세계에서 노후화된 차들은 인도로 흘러들어온다. 다른 나라에서 사망선고를 받은 차들이 인도에서는 버젓이 생존하여 검은 방귀를 내뿜는다. 그것은 마치 은퇴할 나이가 훨씬 지난 노인에게 강제노역시키는 것 같다. 길을 걸으며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먼지와 매연은 내 얼굴에 피부층 하나를 더 만들어준다. 눈과 코, 목구멍. 어디 하나 맵지 않은 곳이 없다.
통신사를 앞에 두고 길을 건너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인도는 길 건너는 일 하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횡단보도라고 믿고 싶은 길이 있었으나 거기로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는 그렇게 빤히 쳐다보던 인도인들이었지만 운전자가 되니 앞에 사람이 지나가는지 보지 않는 것 같았다. 건넌다는 의사의 표현으로 운전자와 눈을 마주 보려 했으나 거들떠보지 않는다. 옆을 보니 길을 건너려는 인도인들조차도 주춤거리고 있다. 타고난 레이서로 길러진 인도 운전자들에게 졸아있는 건 한국인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고 자랐던 사람들은 능숙한 솜씨로 차를 뚫고 지나간다. 그건 뚫었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었다. 나는 길을 건너는 인도인의 뒤꽁무니를 쫓아 죽지 않고 길을 건넜다. 작은 일이지만 신에게 감사드리게 된다. 이렇게 다들 신자가 되나 보다. 인도여행은 내게 신호등의 위대함과 차에 맞서는 방법을 알려준다.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