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주 Jun 02. 2024

가끔은 YES맨이 되곤 한다

인도여행 일곱

드디어 오로빌에 입성한 첫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숙소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2층에서 어딘가로 갈 준비하는 외국인 둘과 만났다. 각자 출신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독일에서 온 스테파니는 오로빌에서 유명한 브런치 카페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여행을 좀 더 재미있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흐름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가진 고집을 운운하느라 재미있고 색다른 경험을 놓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대답은 YES였다. “그래 가자. 브런치 카페.”


그녀는 근처 바이크샵에서 빌린 오토바이를 몰았다. 나는 뒷좌석에 올랐다. 그렇게 예정에도 없던 브런치를 찾아서 우리는 저 멀리 떠났다. 스테파니는 몸집이 꽤 있는 여성이었는데 나까지 뒤에 태우자 더 무거워진 오토바이는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마다 나를 저 멀리 하늘로 날려 보내려고 했다. 엉덩이가 오토바이에서 탈출하려고 해서 나는 뒤쪽 손잡이를 꽉 붙잡고 그저 살아서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오토바이를 타자고 권해 준 스테파니에게 고마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스테파니는 운전을 못 했다. 과속방지턱은 운전자에게 불쾌감을 주려고 만든 트랩이다. "빠른 속도로 이곳을 지나갔다가는 불쾌해질 거야. 그러니 속도를 줄여!"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스테파니는 과속방지턱의 의미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그런 메시지를 무시한 듯 액셀을 밟아댔다. “스테파니이이~~~!” 독일어에는 과속방지턱이라는 단어가 없는 걸까? 긴장 상태에서 치른 로데오는 10분 정도 지속되었고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토바이로 10분이라니 왠지 와서는 안 될 것 같은 곳을 온 느낌이었다.


먼저 출발한 다른 외국인과 스테파니는 익숙한 듯 주문을 하고 자리를 잡았다. 젊은 외국인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브래드앤초콜릿은 오로빌 속 핫플레이스인 것 같다. 스테파니는 커피와 브라우니, 크루아상을 주문하고는 자리로 와서 중간에 들른 가게에서 산 비닐 팩에 든 우유를 뜯어 커피에 넣었다. 막 넣고 젓는 걸 보니 스테파니가 가진 필살 레시피가 있어 만드는 게 아니라 그저 돈을 아끼려고 그런 것이다. 팩에 든 우유는 절반쯤 남아 다른 외국인 친구가 시킨 커피 속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오로빌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그저 이름 모를 빵 한 조각 시켜 그녀들 옆에 앉아 있었다.


독일과 스페인에서 온 그녀들은 오로빌에서 보내는 휴가에 만족하고 있었다. 물가가 매우 저렴해서 마음껏 소비해도 큰 부담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스테파니는 편안한 삶(Easy Life)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쉽게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미 먼 미래에 있을 은퇴를 대비해 미리미리 즐길 준비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은퇴자의 삶, 그리고 따뜻한 날씨를 찾아 요양 온 사람인 것 같았다. 스테파니의 친구는 36살이라고 했는데 16살부터 여행했다고 한다. 20년째 여행 중인 걸까 하는 단순 셈으로 생각했지만, 그런 사람은 아닐 거로 생각한다.


스테파니가 주장하는 ‘여행은 쉼이다.’ 이론을 듣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향했다.  그녀가 바이크를 빌릴 수 있는 곳에 데려다주겠다고 해서 바이크샵으로 갔다. 그녀는 같이 기다려주지 않고 그냥 숙소로 돌아갔다. 바이크샵이라고 해서 오토바이를 기대했지만, 그곳은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었다. 오토바이와 비슷한 가격이라서 차라리 오토바이를 빌려야지 생각하고 그곳을 떠났다.


한국인 오로빌리언을 만나러 비지터 센터까지 걸어갔다. 그녀는 계획도 없이 온 용기는 대단한데 낯선 도시에 밤에 도착하는 건 위험하다고 했다. 그리고 건기인 지금은 핫시즌이라 오로빌에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고 한다. 그래서 숙소도 한 달 정도는 이미 잡혀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고심하더니 내게 물었다.


“오로빌을 체험하려고 왔으면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는 게 좋고, 아까 그 외국인들처럼 그저 멀뚱 거리고 지켜보는 오로빌 관광을 하러 왔으면 근처에 숙소를 잡으면 되고, 왜 오로빌에 왔어요?”


나는 무엇을 찾아 오로빌에 왔는가? 나 또한 대답하고 싶은 질문이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현지인과 같이 호흡하면서 여행할 것인지 아니면 편안한 삶을 쫓는 여행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이었다. 나는 체험하고 싶다고 했고, 그녀는 내게 사다나 포레스트를 추천했다. ‘나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 나를 죽이러 들지는 않겠지’하는 생각으로 그곳이 뭐 하는 곳인지 물어보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곧장 짐을 싸서 툭툭을 잡아 그곳으로 떠났다. 툭툭은 오로빌 중앙지역을 떠나 멀리 나갔다.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때 사다나 포레스트에 도착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획 없이 여행하다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