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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Feb 14. 2016

목사의 아내

단편소설 첫번째


동수역 뒷쪽에는 허름한 사층 짜리 빌라들이 많다. 골목에 들어서면 양쪽에 펼쳐지는 네모 반듯한 건물들 네모난 창문에 사람들의 흔적이 보인다. 빼곡히 들어선 건물들에 빈 집이 없다. 역에서 오 분 거리라 위치가 좋아서일까. 새로 지어진 건물도 없고 골목엔 아이들이 버린 포스틱 과자 봉지와 비닐, 종이 조각들이 바람에 뒹굴거리고 있다.

동수역 삼번출구를 끼고 돌면 재민이네 집이 나온다. 다른 빌라들은 일층에 주차장이 있는 반면 재민이네 집은 주차장이 없다. 옆 빌라나 다른 집앞에 차를 대고 수업하러 들어가야 한다. 낮 수업이라 그런지 차 한번 빼달라 한 적이 없다.

빨간 벽돌 사층 건물 반지하방. 벨을 누른다.

“누구세요?”

재민이 엄마목소리다. 발음 정확하고 고운 음성이다.


“00선생님이에요.”

안에서 재민이가 쿵쿵거리며 문 쪽으로 오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리고 까무잡잡한 사내아이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나를 반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가자 어머니도 반갑게 나오셔서 두손모아 깎듯하게 인사하신다. 검은색 면티셔츠에 발목까지 오는 플레어스커트. 앞머리 없이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를 질끈 묶었다. 남자아이 키우는 엄마답지 않게 차분한 성격에 목소리도 작다.


이제 오주차 수업. 추가 두과목 입회가 목표다

초등학교 2학년 재민이는 나와 공부한 지 이제 한 달 남짓 된 아이다. 약간 산만하긴 하지만 선생님을 말 잘 듣고 착한 아이다. 항상 엄마가 계셔서 수업 후 상담을 진행해왔다. 재민엄마는 처음부터 수학 한과목만 하시겠다고 차분한 듯 강한 어조로 말씀하셔서 입회얘기는 계속 미뤄 왔었다. 삼주가 지났으니 추가입회를 말해볼 때가 왔다. 수업이 끝나고 재민이가 화장실로 쪼르르 들어간다. 어머니를 두 번이나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어 안방으로 가 보았다.


반쯤 열린 문사이로 다리 한 쪽을 꺾고 앉아있는 재민엄마가 보인다. 성경책을 한 장 잡고 뚫어지게 보 중얼거리고 계셨다.

 “어머니 수업 끝났습니다.”

문을 두드리며 말하니 그제서야 내 쪽을 보신다.

“죄송해요. 선생님 끝난 줄도 몰랐네요. 방으로 들어오시겠어요?”

안방엔 여덟자짜리 장롱만 덩그러니 있다. 방바닥에 머리카락 하나 실오라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문 뒤쪽을 보니 삼단 책장에 키가 다른 성경책들이 꼽혀있다. 식탁의자에 앉아 상담하는 게 편하지만 안방까지 들어오라고 하는 데 거절할 수는 없지. 게다가 오늘은 타 과목 얘기를 꺼낼 타이밍이니 기꺼이 들어가야지.


“재민이가 선생님 수업에는 잘 집중하네요. 까불지도 않구요. 선생님이 재밌고 좋데요.”

“재민이가 착해요. 어머니. 재민이 수학교재가 학교진도보다는 좀 빨라서 힘들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재민이가 수감각은 있는 아이에요. 수개념도 잘 잡혀있고 자리수도 어려워하지 않아서 오늘 곱셈 첫진도 나갔는데 잘 따라왔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연산은 확실하게 잡아줘야 하거든요”


이제 서두를 꺼냈다.

재민이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해 듣고 계신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도 다니고 많이 하죠?”

“아이들마다 생긴 것도 다르고 받아들이는 것도 다른 것처럼 학습방법도 다 달라요. 학원다닌다고 해서 공부 잘 하는 것도 아니구요. 저희 큰 아이는 5학년 때부터 학원 보냈어요. 지금 중1인데 전교 십등안에 들거든요. 학습지만 꾸준히 시켰어요. 그리고 제가 채점도 했줬구요. 어머님처럼요. 재민 어머니가 지금 잘 하고 계신 거에요. 저학년 아이들 학습은 양육자의 관심이 많은 부분 영향을 끼쳐요. 이제 자릿수 개념잡고 덧셈, 뺄셈, 곱셈들어가는데 연산학습을 다져놓으려면 추가 학습이 필요해요. 셈수학이랑 병행해서 하셔야 해요. 그리고 한자는 기본으로 해야하구요. 수학은 연산만 있는 게 아니라 문장제 문제들도 있잖아요. 푸는 연습을 해야하는데 많은 아이들이 한자어를 몰라서 문제를 이해 못해서 못풀어요. 그래서 저는 꼭 한자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하며 크게 한 번 웃어본다. 재민어머니의 표정을 살피니 동조하는 듯 소리내 웃어주신다.


“저도 선생님 생각이 맞는거 같아요. 연산도 이 때 다져놔야죠. 저는 수학 잘 못했거든요. 우리 재민이는 수학땜에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재민어머니가 긍정적이다. 그렇다면 바로 다음주부터 수업하자고 밀어부쳐 보는 게 좋다. 이번 달 두 개 입회까지 하면 열 개 입회로 지국 삼십여명 선생님들 중 일등이다. 일등 시상금이 삼십만원이었다. 입회수당 2만원에 시상금까지 더하면 오십만원. 입회점수까지 올라가니 수수료율 2% 상승이다.


“어머니 그러면 다음주부터 수업 준비해올게요. 입회서류 지금 작성해주시겠어요?”

재민어머니가 얼굴표정이 바뀌더니 한숨을 한 번 쉰다.

“어 저기 근데 우리 애 아빠한테 얘기해봐야해요. 목사 월급이 빠듯해서요. 제가 뭐 부업이라도 하고 있으면 당장 시켜줄 텐데 그럴 수가 없네요. 선생님도 너무 좋고 믿음이 가요. 제가 오늘 얘기해보고 다음 주 수업 오실 때 알려 드릴게요.”

아빠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건 안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오십만원이 한 순간에 날아갔다. 그래도 다음주에 희망을 걸어봐야지. 첫술에 배부르랴. 아빠가 뭐라 하시는지도 들어 보고 반박할 얘기도 준비해가면 된다.


일주일 후 희망을 안고 재민이네 집을 향한다. 오늘은 현관문이 살짝 열려있다. 그냥 열고 들어가기가 뭐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린다.


“재민아 00선생님이야.”

문을 더 열어보니 식탁에 앉아있는 재민이의 등이 보인다. 뒤를 돌아보는 재민이의 눈과 마주쳤다. 조금 놀란듯하다. 의자에서 내려와 문앞까지 달려온다. 뭔가 해줄 말이 있다는 듯 내 손을 잡아끌고 안방으로 향한다.


“엄마, 선생님 오셨어요.”

재민엄마는 안방문 뒤에서 문고리를 잡고 재민이가 문을 열지 못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선생님 수업해주세요.” 하더니 문을 꽉 닫으셨다.

안방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식탁의자로 갔다.

“재민아. 앉자. 수업해야지.”

세자리수 덧뺄셈이 끝나고 곱셈단계에서 어렵지 않게 따라와 줘서 입회도 쉬우리라 생각했다. 영업에선 항상 복병이 있는 법. 모든 게 쉽게 이뤄진다면 별 재미가 없지.


수업을 마치고 안방문을 두드린다.

“어머니 수업 끝났어요.”

안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재민엄마의 왼쪽눈과 마주쳤다.

“어머니 어디 아프세요?”

“아니에요. 저희 애 아빠가 일단 한자만 먼저 시켜보자고 했어요. 내일 문자로 계좌번호 알려주시면 교육비 입금할게요. 그럼 들어가세요.”

다시 문이 닫힌다. 어쨌든 한과목 입회성공이다. 재민이엄마가 왜 그러는지 궁금했지만 지국장님한테 입회성공을 알리는 게 더 급했다.


 운전석 뒷자리에 교재가방을 던졌다. 전화기를 꺼내들고 지국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국장님.국장님!”

“어 안선생님. 이 시간에 전화를 주시는 걸 보니 좋은 일 있구나! 재민이 엄마 입회성공이에요?”


“네 한자만 한 대요. 셈수학까지 해보려고 했는데 아빠가 좀 반대하나봐요.”

“이 꺄악! 그럼 입회9개네. 하나만 더 해보세요. 알았죠? 홧팅! 안선생님 아침에 어쩐지 표정이 밝더라. 예감했구나!”


저번 달 마이너스를 겨우 면했고 이번 달부터 쭉쭉 나가려나. 전화를 끊고 급히 차에 오른다.

상담없이 나온 게 맘에 걸린다. 목사인 재민아빠가 반대했는데 엄마가 어떻게 설득했을까?

재민아빠는 딱 한 번 마주쳤었다. 두 주차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재민이가 선생님필통 두고 갔다고 전화가 와서 가는 길에 들렀었다. 어스름 저녁이 되어 한 집 두집 불이 켜져 있었다.

반지하 재민이네집도 불이 켜져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는데 등뒤에 누가 있는 것 같아 돌아보았다. 키가 한 일미터 칠십정도 되려나. 마른 체구에 등이 약간 굽어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모으고 허리굽혀 인사한다.


“저 재민이 선생님 되시죠? 아이고 반갑습니다.”

우렁차고 또렷한 발음이다.

“네 안녕하세요. 필통을 두고 가서요.”

젊은 여자에게 낯가림도 없고 말꺼내는 것이 자연스럽다. 보통 아버님들은 선생님과 눈도 안 마주치고 인사도 안받고 방으로 들어가기 바쁘신데 말이다.

재민아빠가 목사라는 건 그때 짐작었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십자가까지. 둥근 이마에는 머리 한 올 없이 뒤로 넘기고 검고 굵은 테 안경을 썼다. 얼굴엔 기름기가 흘렀다. 침을 발라 넘기듯 손으로 연신 머리를 어루만진다. 안에서 재민엄마가 남편을 맞는데 놀란 토끼 눈으로 나온다.


 재민엄마는 왜 긴장하는 걸까?

한자수업 첫 시간.

입회선물도 챙겼다. 각도기, 컴퍼스 셋트와 샤프, 수첩. 재민이가 좋아하겠지.

재민이가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안방문은 닫혀있다. 수업하는 내내 방안에서 낮은 소리로 흐느낀다. 오늘은 재민이 엄마와 상담하리라. 수업을 마치고 방문을 두드렸다.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문을 확 열고 들어갔다. 재민엄마머리는 헝클어지고 입술은 부르트고 피가 나 있었다.


“어머니 병원에 전화해드릴까요? 어디에서 다치신 거에요?”


한쪽에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술이 가득 찬 잔을 한참을 노려보다가 말을 꺼냈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목사님 같았던 재민아버님은 폭력남편이었다. 깔끔한 성격에 방바닥에 먼지하나 굴러다니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와는 반대로 덜렁대고 정확하지 않은 성격의 그녀가 적응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폭력은 결혼 초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나이보다 어려보이고 참하게 생긴 그녀를 남편은 늘 불안해했다고 한다. 한시간마다 전화를 해서 뭘하느냐고 확인했고 매일 과제를 내주었다고 한다. 청소하는 방법, 매일할일,삼일마다 할 일, 일주일마다 할 일, 한달마다 할 일을 정해놓고 남편은 그녀를 체크하고 있었다.


매일해야할 일은 가계부 쓰기, 청소기돌리기, 빨래, 전자제품, 가구 마른 수건으로 닦기, 현관앞 쓸기다.

삼일마다 할 일은 욕실청소, 화초에 물주기, 현관앞 물청소, 이불 털기, 변기에 락스붇고 소독하기, 재민이 공부 점검이다.

일주일마다 할 일은 가계부 일주일 통계내기, 요시트 세탁, 씽크대, 서랍정리 등..

노트에 빼곡히 적어내 려간 항목들을 읽다가 숨이 콱 막혀 덮어버렸다.


재민엄마가 초여름인데도 긴팔에 발목까지 오는 스커트를 입고 있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살짝 젖힌 스커트 안쪽 허벅지엔 멍이 보였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이해한다고 말한다.


“저는 매일 기도해요. 착한 사람 되게 해 달라구요. 매질도 멈추게 해 달라구요. 교회에선 정말 신자들이 좋아해요. 신자들이 가끔 저희 집에 찾아오는데 친절하고 좋은 분이라고들 해요. 남편은 예배를 마치고 씩씩대며 집에 오는 날이 많아요. 신도들의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듣다보면 화가 치민데요.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다면서요.”

“어머니, 경찰에라도 신고하세요. 이러고 살 순 없잖아요.”

“안돼요. 그럴 순 없어요. 아빠가 목사인데 신도들이 알면 난리나죠. 그보다도 우리 재민이가 걱정이에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이런 거 보면서 배울까봐 무서워요. 안 보는 데서 때렸으면 좋겠어요.”

하면서 눈물을 쏟아낸다. 나는 옆에 다가가 등을 토닥여 주었다.

“선생님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오늘 이렇게 얘기 들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좀 후련하네요. 남편 올 때 됐어요. 가 보세요.”

뒤이어 목사 남편이 들어온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재민아빠얼굴을 한번 노려보았다.


 어이없다는 듯 재민아빠는 나를 위아래로 훓어 본다. 재민엄마에게 또 손찌검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억지웃음을 지어보이며 인사를 하고 나와 버렸다.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잠시 괴로웠다. 남편을 버리고 도망치면 될 텐데... 경찰에 신고하고 남편을 정신 차리게 하면 될 텐데... 부모가 와서 같이 살면서 때리지 못하게 하면 될 텐데...

그러나 그녀는 남편이 매질 할 때마다 큰소리를 내거나 울음소리도 내지 않고 참아냈다고 한다. 남편은 거친 성격과 말투는 목사와는 맞지 않았다. 신도들의 이름을 대며 욕설과 폭언을 아내에게 퍼부었다. 집에서라도 풀고 나가기를 바랐다며 그냥 참을 거라고 한다. 그녀는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까? 그런 그녀를 난 언제나 그냥 지켜볼 수 있을까?



2015년 3월

초고노트에서 한 편을 꺼내 처음 써본 소설입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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