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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듬 May 24. 2021

다시 배우는 태권도

어릴 적 배웠던 태권도를 성인기에 다시 만나며 비로소 알게된 것들

  어렸을 적에 나는 어린이집 건물에 병설된 태권도장에 다녔었다. 

당시 나는 아이들의 기강을 잡겠다는 이유로 나에게 큰 소리를 치며 겁을 주는 사범님이 너무 무서워서 흰 띠에서 탈출하여 마침내 노랑 띠로 승급하는 영광스러운 순간에 돌연 태권도를 그만뒀다. 

태권도에 다녀온 날에는 항상 집에서 엄마에게 사범님이 무섭다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마음을 강하게 먹고 조금 더 다녀보라며 나를 타일렀고, 그 타협의 지점이 바로 흰 띠를 벗어던지는 날이었던 것이다. 

장성한 이후로도 나는 태권도장 근처를 지날 때면 열린 창문 틈새로 들리는 어린아이들의 쩌렁쩌렁한 기합소리에서 어리었던 그때의 두려움과 "연약함"의 아릿한 냄새를 느끼곤 한다. 

"더 크게!" "동네가 떠나가도록!" "밖에 지나가는 어른들이 화들짝 놀라도록!" 크게 기합소리를 내라는 사범님의 말씀에 조그만 배에 있는 힘, 없는 힘 짜내어 목청 높여 소리 지르던 아이는 이제 장성하여 바로 그 지나가다 화들짝 놀라는 어른이 되었다. 


  태권도와 관련해 모종의 트라우마가 있었던 내가 다시금 태권도에 흥미가 생긴 것은 독일의 어느 산속에서였다. 근교를 여행 중이었던 나는 도시를 조망하기 위해 높은 언덕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정상에 도달해 숨을 고르고 있던 중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수풀이 우거진 한가운데에 도복을 갖춰 입고 맨발로 홀로 태권도 품새를 하고 있던 한 남성이었다. 어찌나 경건하던지 호기심 어린 나의 시선조차 방해가 될까 두려워 그 옆을 지나가는 척 힐끗힐끗 보았다. 마치 명상을 하듯 평화로워 보이는 남성의 품새는 동작 하나하나가 날렵하고 절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기도를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는 그 모양새는 나에게 태권도의 정신에 대한 무궁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종전에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저 사람의 마음은 무엇을 향하고 있을까? 그가 온몸과 마음을 다해 집중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 나는 궁금했다. 태권도의 무엇이 저 독일인을 이끌어 먼 나라의 무술을 배우게 했을까? 


  한국에 돌아가면 태권도장부터 알아봐야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성인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는 태권도장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어렵사리 주말 취미반이 개설된 태권도장을 찾았다. 주말 "취미반"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태권도를 해온 수준급의 수강생들이 대부분이었고,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사람은 내가 거의 유일했다. 운동이라곤 요가 외에는 꾸준히 해본 것이 없는 나에게 태권도는 말 그대로 익스트림 스포츠였다. 몸을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이 어색한 나는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다 굼뜨고 어설펐다. 이미 현란한 기술을 구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주먹을 내지르거나 발차기를 할 때 '슉슉' 소리가 나는 것이 영화에서나 가능한 효과음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도장을 다닌 지 어언 한 달째. 한결같이 흡사 춤을 추고 있는 나에게 사범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는 것은 시선이다. 물구나무를 설 때도, 턴을 할 때도, 킥을 차고 후릴 때도, 시선이 고정되어있지 않고 흐르면, 몸은 무너진다. 시선은 내가 나아가는 곳, 나의 손이 뻗고, 발이 뻗는 그 끝 지점에 매달린다. 어떠한 몸의 형태(form)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천착되어 시선이 분산되면 움직이는 몸은 궤도에서 벗어나거나, 멈춰 서야 되는 지점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끊겨버린다. 턴을 할 때 정면을 응시하지 못하고 주변 풍경이 보이는 순간 이미 축은 틀어져버린다. 시선의 시작과 끝이 스치거나 일치하는 그 미묘한 줄타기에서 몸은 균형점에 착지하거나 헛디뎌 데구루루 넘어져버린다. 응시의 정확도를 높이는 과정 속에 나는 휘청거리고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수업 첫날 넘어지는 연습을 한 것은 이를 예비함이었나 보다. 


  그날 산속에서 보았던 남성은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의 시선이 단단히 뿌리내림에서 나오는 균형 잡힌 동작들이 마치 가부좌를 틀고 촛불을 응시하는 명상인과 같은 경건함을 뿜어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태권도를 하는 것은 마음에 나무를 한 그루 기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풍파와 같이 휘날리고 지르는 동작들 속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단 하나의 굳건한 뿌리를 길러내는 것. 앞으로 내가 갈 길이 멀다. 당장에 안 쓰던 근육을 쓰고, 사정없이 자빠지고 구르다 보면 일주일 내내 몸이 너무 아프다. 그래서 내게 도장을 나가는 주말은 항상 두렵고 떨린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다. 나에게는 목표가 생겼다. 태권도를 하고 싶은 이유가 생겼다. 시선의 나무를 기르는 지난한 과정 끝에 마침내 중심을 찾을 내 모습을 그리며 나는 흰 띠를 넘어서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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