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글자 이 말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육아휴직 하겠습니다."
이 말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꺼내야 할지 머릿속으로 수십 번 시뮬레이션을 했다.
최소한 상사의 기분이 괜찮을 때, 이 말을 꺼냈을 때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컨디션이 갖추어졌을 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주에는 꼭 이 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3일이 지난 목요일에 비로소 말할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과 상사의 상태를 포착하게 되었다. 오후 4시 무렵, 이제 때가 왔구나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팀장님께 가서 잠시 드릴 말씀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사무실과 회의실은 열 발자국 남짓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팀장님의 뒤통수를 보며 따라가는 그 길이 아주 느리게 느껴졌고, 내 머릿속에는 수십 번도 더 연습했던 멘트를 되뇌었다.
그리고 서로 자리에 앉아 대면했다.
마치 면접 보러 온 신입사원처럼 준비한 멘트를 앵무새처럼 읊었다.
수십 번 연습했던 멘트였기에 실제로 말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연습한 시간이 무색할 만큼 짧게 지나가버렸다. 이 몇 마디를 하려고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공을 던지고 나니 내 손은 훨씬 가벼워졌다.
하지만 내 공을 받은 팀장님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내 말을 듣자 얼굴이 붉어지며,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쩔 수 없죠. 부장님께도 보고하세요. 그리고 부장님이 좋아하시진 않을 겁니다."
짧은 대답과 함께 던졌던 공은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
팀장이라는 산 하나를 넘었다는 안도감도 잠시, 부장님을 독대해야 하는 대망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게 육아휴직 구두신청을 완료했다.
대화가 끝나고 각자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몇 분 뒤 부장님이 사무실로 오셨다.
팀장님은 부장님과 이야기를 잠깐 나누시고는 두 분이 함께 사무실 밖으로 나가셨다.
그 이후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갈지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다.
팀장님은 부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온 뒤, 표정이 더 굳어졌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잠깐 불러 이야기했다.
"부장님께 육아휴직한다고 보고 드리되, 부장님이 뭐라고 하시면 듣고만 계세요. 절대 부장님 말씀에 토 달거나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되도록이면 참으세요."
육아휴직이라는 자극을 내가 주었을 때 회사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여러 번 생각해 보았으나, 이러한 반응은 예상치 못한 반응 중 하나였다.
앞으로 부딪히고 뚫고 나가야 할 여러 장면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