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 투자. 잘 활용하면 나쁜 거 아니에요.
한 동안 전세가가 매매가의 80%를 넘어서면서 '매매가-전세가=gap' 만큼에 투자하는 '갭 투자'가 새로운 부동산 재테크 방식으로 각광을 받았다. 서점에는 '몇십채의 집주인이 되었다'며 자랑하듯 떠벌리는 서적들이 늘어났는고 혹자들은 '쇼핑하듯 아파트 사라'며 갭 투자를 부추기기도 했다.
갭 투자는 분명 잘못된 것이 맞다.
이러한 방식으로 몇 십 채의 집을 사는 갭 투자는 아파트 시장을 교란시키는 '투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판 의식과 함께,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라고 갭 투자자들의 심리와 그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갭 투자는 현실에 두 발 딛고 사는 평범한 시민들이 집을 매매함에 있어 분명히 필요한 접근 방식이기 때문이다.
(갭 투자가 아닌 '갭을 활용한 매매'라고 해야 정확할 것 같다.)
갭 투자자들은 두 가지 원칙을 전제로 한다.
-. 아파트를 '상품'으로 바라본다.
갭 투자자들에게 아파트는 실거주 수단이 아니다. 언제든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일 뿐이다.
더 좋은 신상이 나오면 과거의 물건은 중고나라행이요, 가격비교를 통해 얼마에 살 수 있는지를 따져가며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그들은 '실제 내가 투자한 투자원금=gap'이 얼마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Ex)
# 매매가(3억)-전세가(2.5억)=gap(0.5억)이라 가정해 보자.
실거주 목적의 구매자들에게 이 상품의 가격은 3억이지만, 갭 투자자들에게는 본인들의 자본이 들어간 0.5억으로 보일 뿐이다.
# 전세 끼고 매매 후 2년 만에 가격이 1억 오르고, 전세는 0.5억 올랐다 가정해 보자.
매매가(4억)-전세가(3.0억)=gap(1억)
갭 투자자는 2년 만에, 본인이 투자 투자금(gap 0.5억)을 전세를 올려(2.5억->3억) 회수했고 매매 호가는 1억이 올랐다.
즉 2년 만에 투자금은 0이 되었고, (세금 이슈와는 별도로) 호가는 1억이 상승했다.
이것이 갭 투자자들이 최근 상승기에서 돈을 번 원리이다.
아... 탁 치게 한다.
-. 지역은 '계층화'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부동산은 어느 한 곳만 집중적으로 오르지 않는다. 주식이나 코인처럼 고급 정보에 반응하는 시장이 아니라 모든 정보가 열려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즉 (슬프게도) 지역 별로 명확하게 서열화, 계층화가 되어 있다.
마치 비슷해 보이는 자동차 브랜드에도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하는 것과 같다.
(취향의 차이는 존중하지만, 대중적인 시각이 제네시스 <BMW, 벤츠인 것처럼... 미안해요 현대차)
지난 4년 동안 상승장을 기반으로
'타 지역으로 이동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의식의 흐름대로 기술해 본다.
# 1-1) 마곡, 위례가 신도시 버프를 받아 올랐다.
1-2) 마곡, 위례에서 충분한 수익을 낸 사람들이 '교통이 편한 도심'으로 진출하고자 한다.
# 2-1) 그 시세를 이어받아 공덕, 옥수가 직주 근접과 신축발로 올랐다.
2-2) 공덕, 옥수에서 충분한 수익을 낸 사람들이 '문화생활과 평지에 위치한 대단지'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 3-1) 그 시세를 이어받아 잠실이 올랐다.
3-2) 잠실에서 충분한 수익을 낸 사람들이 '중-고등학교까지 안정적인 학군'으로의 이사를 꿈꾼다.
3-3) 잠실에서 충분한 수익을 낸 사람들이 '강남권 신축'으로의 자산의 이동을 생각한다.
3-4) 잠실에서 충분한 수익을 낸 사람들이 '더 강남스러운 지역 브랜드'를 꿈꾼다.
# 4-1) 교육을 꿈꾼 사람들은 '기승전 대치로!'
4-2) 강남권 신축에 갈증이 있는 사람들은 '강남의 마지막 신도시 개포로!'
4-3) 서열화와 강남 브랜딩에 심취한 사람들은 '끝판왕 반포로!' 혹은 '압구정으로!'
# 서울 한 바퀴 돌고 나니 안 오른 지역이 없네?!
갭 투자자들은 위에 기술했듯이,
아파트를 실거주 목적으로 보지 않고 '상품'으로 한정 짓기 때문에 지역 별 계층화에 민감하고
서열화의 정의에서 벗어나는 예외가 생길 때 재빠르게 그 갭을 메우러 들어간다.
이렇게 서울 전역이 들썩였고, 투기를 규제하겠다는 8.2 대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아무 물건이나 싸다고(매매와 전세의 갭이 작다고) 다 사 제치는 갭 투자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정책적으로도, 양심적으로도 옳은 판단이 아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투기 수요 근절을 목표로 한 정책이, 일부 내 집 마련을 하려던 실거주 수요까지 발목을 잡아버렸다는 사실이다.
대출 규제로 대출 규모가 줄어들면서 맞벌이를 통해 소득은 높지만 깔고 있는 자산은 적은 30대들이 도전할 수 있는 아파트들이 많이 사라졌다. 또한 30대의 대부분은 청약통장이 없거나, 청약통장이 있어도 점수가 높지 않아 일반분양 가점제에서 승산이 없는데 84제곱미터(34평) 이하를 모두 가점제로 변환함으로써 분양을 받을 수도 없게 문을 닫았다.
이 과정에서 남은 건 이제 갭 투자(갭을 활용한 매매)뿐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속에서 대출까지 막힌 평범한 시민들이 보다 나은 집을 득템 하기 위해 '갭 투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시기에 필요한 몇 가지 원칙이 있어 이를 설명하려 한다.
1. 갖고 싶었던, 열망해 온 물건을 사자.
사전 예약의 개념과 같다. 당장 필요는 없는, 그러나 갖고 싶어 돌아버리겠는 물건을 선점하는 개념이다.
언제든 내가 들어갈 수 있고, 오를 것 같다는 확신이 있는 지역에 내가 들어가는 그 날을 꿈꾸며 세입자에게 빌붙어 내 지분을 남겨두는 것이다.
갭 투자는 내가 가진 물건, 내가 사는 지역보다 상급 물건으로 배팅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하락기가 와도 내가 원했던 물건을 조금 비싸게 산 것뿐이니 아쉬움이 덜하고, 지금처럼 상승기가 이어지면 갖고 싶었던 물건이라 미리 찜콩 했는데 남들도 사고 싶어 줄 서는 모습을 보며 안도할 수 있다.
반대로 급한 마음, 혹은 더 벌어보겠다는 욕심에 잘 안 팔리는 물건을 잡아 버리면 하락기에 현금화도 안될뿐더러 내가 못 들어갈 경우 전세입자를 구하기도 힘들어 심적-금전적으로 타격을 입게 된다.
2. 갖고 싶다고, 무리해서 돈 빌려 사지는 말자.
갭 투자는 이미 빚을 엄청나게 끌어안고 사는 것이다. 세입자의 돈은 다 빚이다. 즉 아파트를 소유함에 있어 내 자본보다 훨씬 큰돈을 세입자가 함께 내준다는 것이다.
갭 투자로 성공한 투기꾼들 이야기 중, 본인들의 자산 규모를 매매가로 잡고 떠드는 경우가 있는데 회계상으로 빚도 자산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만 상당히 과장된, 언젠가 뻥 터질 수 있는 부풀어진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갭 투자 시에는 세입자가 대주주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전세가가 하락하면 그들(혹은 다음 세입자)에게 내어줄 돈을 생각해야 하고 역전세난에 대비한 자금 준비를 해 놓아야 한다. 또한 위기 속에서도 세입자의 수요가 받쳐줄 만한 곳(신축, 혹은 역세권)에 투자를 하는 것이 맞다.
겸손함이 곧 미덕이다.
몇 년 전에 비해 매매-전세 갭이 많이 벌어졌다. 좋은 물건일수록 더 그렇다.
지금이 갭 투자 타이밍이라고는 말을 못 하겠다.
다만, 실수요자들은 지금부터 살고 싶은 지역을 타겟팅하고 사고 싶은 단지를 리스트업 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정부의 규제책 이후, 매매가 숨고르기하느라 주요 지역에서 전세가가 다시 고개를 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원하는 단지의 갭을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내가 배팅할 수 있는 자금 범위도 생각해 놓자.
기회는 언제든 온다. 그때 배팅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