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떨어져서, 혹은 아주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본다면. 지금 이 모습도 한 편의 영화 같을 수 있을까. 나의 현재는 어떤 장르의 영화일까. 비극? 다큐멘터리?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정지된 화면일까.
문득, 아주 오래전 그분과 당일치기로 강릉에 갔던 날이 떠올랐다. 결혼도 하기 전이었고 내가 운전대를 잡는 법조차 몰랐던 아득히 먼 시절의 이야기. 3월의 첫날 공휴일의 공기는 차갑지 않았고 시야를 가리는 미세먼지도 하나 없이 세상이 선명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 파란 하늘과 투명한 공기. 여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듯했다.
강릉역에서 택시를 잡아 도착한 겨울 바다는 생각보다 더 텅 비어 있었고 고요했다. 파도 소리만이 멀리서 들려올 뿐 인적 드문 해변은 세상의 끝처럼 느껴졌다. 깊은 침묵 속에서 우리도 한참 동안 말을 잃은 채 밀려왔다 부서지는 파도와 은빛으로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았다. 파도는 끊임없이 제 몸을 부딪혀 하얗고 부셔졌고 햇살은 그 위에서 보석처럼 빛났다. 우리가 함께 바다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순간, 시야 한쪽으로 모래사장을 아주 천천히 거니는 중년 부부가 들어왔다. 그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걷고 있었다. 잔잔한 파도와 정오의 따스한 햇살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모습은 잘 구성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완벽하게 보였다. 대사도 없고 사건도 없었지만 존재 자체로 완성된 이야기였다. 그들의 뒷모습에서 오랜 시간 쌓아온 삶의 흔적과 사랑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나는 곁에 있던 그분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도 저분들처럼 저기 모래 위에 서 있으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일까요? 어쩌면 지금 우리 모습도 누군가의 눈에는 그림처럼 보일지 모르겠네요"
내 말에 그분이 어떤 표정으로 무슨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목소리만이 기억 속에서 울렸다 사라졌다. 기억나는 것은 당시의 평화로운 공기와 내 질문에 담겨있던 막연한 낭만뿐이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이 질문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현재의 내 모습은 과연 어떨까. 누군가 한 걸음 뒤에서 혹은 무심한 하늘 위에서 나를 본다면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초점을 잃은 눈빛, 축 처진 어깨, 의미 없는 발걸음. 영화라면 어떤 장면으로 그려질까.
그분의 눈에 나는 어떨까. 그분의 시선은 지금 어디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시선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아무런 의미 없이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하며 서 있는 한 사람일까. 시간의 흐름에 표류하며 방향을 잃은 존재일까. 아니면 아주 길고 조용해서 아무런 이야기도 없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일까. 대사도, 다음 장면도 없는 그저 멈춰버린 풍경처럼. 나는 그분의 기억 속에서 어떤 프레임에 박제되어 있을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만이 머릿 속을 공허하게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