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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피셔 Mar 28. 2018

홀로 떠난 일본 다카마쓰 여행기 #2

즐거운 시간낭비의 시간

난 리쓰린 공원에서 내가 혼자라는 걸 자각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어도, 목적 없이 걸어도, 벤치에 앉아서 멍을 때려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난 정말로 목적 없이 걸었다. 일부러 길을 돌아가기도 하고 갔던 길을 또 가기도 했다. 즐거운 시간낭비. 


이번 여행은 정말 아무런 사건도 없었고 그야말로 잔잔한 여행이었는데, 리쓰린 공원에서는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다카마쓰에서는 정말 외국인들을 만나기 쉽지 않다. 중국인들도 거의 없다. 그런데 리쓰린 공원은 조금 다르다. 아무래도 유명하다 보니 외국인 관광객들이 꽤 많은 편이다. 한국어를 꽤 들을 수 있다. 



연못을 보며 멍 때리던 내 어깨를 누군가 건드렸다. 돌아보니 한 아저씨였다. 등산복을 입은 모습이 확실한 한국인이었다. 뒤에는 아내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아저씨의 손에는 핸드폰이 있었다. 아저씨가 나에게 말했다.


"포토, 포토, 사진, 사진" 

"????"

 

아저씨는 나에게 짧은 영어와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으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난 당황했다.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한국인이라고 해야 하나. 내 머릿속은 당황하고 있었는데 입에서는 자연스레 영어가 나왔다.

 

"OK"


난 일본인이 됐다. 뒤에 계시던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웃하며 나의 정체를 의심하는 듯 보였다. 한국인인 거 같은데..? 난 자연스럽게 "원, 투, 쓰리"까지 외치며 사진을 찍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아리가또"라고 말했다. 난 목례를 했고 급히 자리를 떴다. 아주머니는 마지막까지 날 의심했다.



다음 목적지는 기타하마 앨리였다. 이쁜 카페가 많고, 가게들도 많다고 했다. 난 그런 곳을 좋아하니까 한번 가보고 싶었다. 리쓰린 공원에서 걸어서 40-50분 걸린다. 걸어가기로 했다. 


평소에는 초행길을 걷는 것도, 지도를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이날은 모두 하기로 했다. 시간이 많았고, 어딜 가도 다카마쓰니까. 어딜 봐도 처음 보는 곳이었다. 큰길을 걸으며 상가 구경을 하기도 하고, 골목을 걸으며 초등학교를 지나치기도 했고, 유치원을 지나치기도 했고, 여러 가정집을 지나쳤다. 이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까.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궁금했고, 월요일일 낮 자전거를 타고 가는 고등학생이 궁금했다. 횡단보도에 서서 맞은 편의 카페가 이뻐서 난 사진을 찍었고, 같이 서 있던 사람은 무신경하게 지나쳤다. 그 사람에게 이 카페는 지루한 곳일까. 내가 그곳들을 지루해하는 것처럼?



걷는 게 점점 힘들어질 즈음, 난 기타하마 앨리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많이 작았고, 되게 조용했다. 문을 닫은 상점도 많았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잡화점을 몇 개 구경했다. 선물을 몇 개 살까 생각했지만, 사지 않았다.


기타하마 앨리 구경은 순식간이었다. 오후 1시였다. 벌써 할게 없어졌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유명한 카페를 가기로 했다. Umie.



카페는 생각보다 컸고, 사람이 많았다. 외국인은 나밖에 없었다. 카펜데 카페 냄새는 아니었다. 음식점 같은 냄새? 가정집 같은 냄새가 났다. 실제로 밥을 먹는 사람이 많았다. 혼자 앉을 수 있는 구석 창가에 앉아 음료를 시키고 사람들을 구경했다. 커플들이 있었고, 일 때문에 온듯한 양복 입은 직장인들이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온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밖을 보니 바다가 보였다. 해수욕장 같은 풍경은 아니었고, 그냥 항구였다. 조용한 항구. 멍하니 밖을 보다가 월요일 낮에 이렇게 있을 수 있다니. 행복해졌다. 이게 행복인가?



카페를 나와 기타하마 앨리를 떠나고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특별히 본 것도 없고 한 것도 없다. 배고프면 먹었고, 힘들면 앉았다. 공원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다 동네 한 바퀴 돌고, 다카마쓰역 한번 구경하고, 신기한 것들이 있으면 사진 찍었다.



내 마지막 20대 가을, 마지막 가을의 시간을 다카마쓰 거리에 뿌리고 왔다. 이렇게까지 시간을 낭비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했다. 사실 낭비라고 할 것도 없지. 이런 삶이 나에게 더 정상적일 수 있잖아? 내가 한국에서 사는 삶이 비정상적인 걸 수도.



돌아오는 날 아침, 작은 다카마쓰 공항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일본 사람들을 보면서, 한국 네이버 뉴스를 보면서 퇴사를 생각했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 자유롭게 살면서 돈 벌고 시간 낭비하면서 살고 싶다. 시간 낭비하고 싶다. 서울 거리에 내 시간을 뿌리고 싶다" 고 생각했다.



Written By. 낭만피셔
Photo By. 낭만피셔
Instagram : @romanticpis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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