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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김 Jul 01. 2021

조금 더 달달한 내일로 가자

장류진 ‘달까지 가자’

바쁠 , 소설은  꺼려진다. 손을 댔다가   자고 읽을까 걱정되는 것도 있지만, 소설을 읽는다는  자체로 어딘가 느슨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있다.  판타지가 아니더라도 내가  딛고 사는,  지저분한 세계로부터 유리된  같은 단어와 문장을 만날 때가 많아서다. 평범한 나의 삶과는 많이 다르게 사는 예술가의 이야기가 ‘한가하다 생각되기도 한다.


‘달까지 가자’는 그런 점에서 한가함과는 거리가 먼 소설이다. 내가 방금 지나 온 골목을 걷고 있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위로와 불안을 동시에 느끼면서 두근두근 읽어 내려가게 된다. 소설은 중견 제과 회사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 직장인 셋이 삶의 부조리를 딛고 일어날 방법으로 이더리움 투자를 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주인공 다해는 알려진 회사에 다녀도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적은 월급, 학자금 대출 갚고 월세 내고 나면 내가 취직을 한 게 맞나 싶은 용돈벌이가 되고 마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햇빛이 드는 창, 화장실 물이 넘쳐흐르지 않는 방, 변기나 싱크대가 보이지 않는 곳에 놓인 침대, 학자금 대출 상환 정도가 희망사항이다. 에르메스 버킨 같은 아무나 못 갖는 뭔가를 사겠다는 게 아니라 제 기능을 멋지게 해내는 ‘좋은 물건’을 죄책감 없이 사서 쓰는 삶을 꿈꾼다.


2017년의 실제 이더리움 가격의 차트가 세 등장인물의 삶과 맞물려 돌아가면서 이야기는 등락을 오간다. ‘코인’ 얘기라고 하면 떠올릴 만한 ‘30억 벌어 회사 그만뒀대’ 유의 뻔한 드라마가 아니다. 엄청난 불행도, 상상만 해본 화려함도 없다. 평범에 가까운 인물들이 별일 없는 일상에서 느끼는 작기도 크기도 한 기쁨과 슬픔이 너무나 정확한 단어들로 아주 담백하게 묘사될 뿐이다. 그런데도 긴장감과 몰입감이 대단하다. 오랜만에 ‘한 페이지만 더 읽을까’와 ‘아껴 읽고 싶은데’ 사이를 오가면서 설렜다.(결국은 금방 읽어 버리게 됨)


투더문을 외치고 장군님 타령을 하고 있다고 해서 정말 달까지 치솟아 보겠다는 꿈을 꾸는 건 아니다. 요행을 바라지 말라는 우화에서 교훈을 얻기에는 우리가 바라는 요행의 사이즈가 너무 작다. 이더리움 가격이 치솟을 때, 주인공들은 커피빈에서 케익을 종류별로 시켜 먹는 ‘사치’를 누린다. 소설에선 다해가 이더리움을 200만 원대에 팔아 3억 원의 차익을 거두고 성공한 것으로 묘사되지만, 지금의 이더리움 가격을 생각해 보면 일확천금이라고 할 수도 없다. 다해는 멋지게 퇴사하고 외제차 모는 강남 건물주가 아니라 국산 SUV를 사고 셋집을 옮긴 직장인이 되었다. 책 내지에 작가의 사인과 함께 실린 ‘달달한 일들만 가득하길 바랍니다’라는 손글씨 메시지야말로 ‘달까지 가자’는 주문에 담긴 진짜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글씨체도 달달해요.

낯선 단어나 꼬인 문장이 전혀 없는 쉽게 쓰인 글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따라가다 보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미처 언어화되지 않은 채 곪은 감정들이 산뜻하게 정리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는 동네나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를 기준으로 나를 상대의 아래 등급에 놓아 버리는 뒤틀린 감정을 느끼는 순간에는 돈이 부러운 게 아니라 방금 내가 한 생각 같은 건 꿈에도 하지 않을 맑고 깨끗한 마음가짐이 부러워진다는 것. 나이 먹고 자리 잡은 뒤에도 습관처럼 남아 있는 꼬인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느껴지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말끔한 문장으로 읽어 내면서 찜찜하고 불안했던 한 구석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달까지가자 #장류진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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