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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아파커플 Sep 03. 2023

아빠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하는 날

아빠!

소개할게.

내 남자친구야.

잘생겼지?

잘생긴 거뿐만이 아니야.

진짜 든든해.

그리고 나는 남자친구 앞에서도, 우리 집에서 맨날 불리던 별명인 공주로 잘 지내고 있어.


남자친구가 아빠한테 꽃을 드리고 싶다고 했는데, 생화는 금방 시들어 버리니까 조화로 가져왔어.

화병도 예쁘지? 꽃은 밝은 희망처럼 보이는 노란색으로 골랐어. 이곳에서 파는 조화는 뭔가 촌스러워서, 내가 직접 다이소에 가서 꽃이랑 화병을 골랐고 동생이 스타일링을 도와줬어.


생각해 보니, 내가 직접 이렇게 조화를 아빠한테 드려보는 건 처음이네. 매번 아빠를 보러 올 때마다, 입구에 모여져 있는 수많은 조화 꽃바구니들을 보며, 내가 꽃을 갖다 놓아도 저렇게 버려질까 봐 걱정되었나 봐. 그래서 아예 갖다 드릴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 어차피 버려질 거니 의미 없다고 생각했나 봐.


그런데, 남자친구 덕에 이렇게 아빠한테 처음으로 내가 준비한 꽃을 드려보네. 처음 해보는데 좋다.

남자친구는 가끔 냉소적이게 느껴질 수도 있는 내 생각을 따뜻한 것으로 바꿔주는 사람이야. 어차피 언젠가는 버려진다 할지라도 남자친구는 아빠한테 꽃을 드리고 싶어 했어. 아빠한테 드릴 수 있는 최대의 예우를 갖추고 싶어 하는 사람이랄까. 그게 내 남자친구야. 아빠가 좋아했던 홍어랑 오징어도 가지고 오고 싶었는데, 냄새날 까봐 이건 못 구해왔어. 그래도 내 남자친구가 그렇게 하려고 했다는 거랑 마음만은 알아줘.

아빠, 내 남자친구 참 괜찮지? 아빠 딸이 진짜 똑똑하게 잘 골랐지?


꽃이 참 예쁘다. 너무 예뻐서 내가 도로 집에 가져가고 싶을 정도야.

그만큼 내 마음엔 쏙 드는데, 아빠도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아빠! 그런데 조금 많이 아쉬워.

아빠가 살아계셨으면 진짜 행복 해했을 텐데.

내 남자친구는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아저씨 입맛이야. 얼굴 피부는 반질반질하고 장난도 많아서 아직도 외모는 소년 같은데 노포 맛집도 좋아하고. 아빠처럼 전국으로 우리나라 향토 음식 맛집 찾아다니는 거 좋아해. 운전하는 것도 좋아하고. 이름처럼 강, 산, 바다, 자연을 좋아하고. 낚시는 좋아하지 않지만, 체력이 좋아서 밤낚시도 문제없어. 아빠가 낚시하자고 하면 기꺼이 따라가서 옆에서 아빠 좋아하시는 술 한잔도 따라드리고 든든한 아들이 되어 줬을 거야.

요즘 유행하는 성격유형검사에 의하면 ESTJ인데, 어른들께 진짜 잘하는 성격이라고 보면 돼. 처음 보는 어르신들한테도 싹싹하게 잘해서 예쁨 받는 거 보면 정말 대단하다니까.


그리고 아빠처럼 책임감도 강하고, 일도 열심히 하고. 나를 진짜 많이 사랑해.

아! 그리고 아빠처럼 장난치는 거 너무 좋아하고 방귀도 좋아해.


남자친구가 잠깐 아빠한테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네. 근데 나는 아빠한테 무슨 말했냐고 굳이 물어보지 않았어. 그냥 알 것 같아. 아마 아빠가 내 남자친구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이미 내 남자친구가 준비해 왔을 거야.


아빠! 남자친구가 아빠랑 약속한 것들 잘 지킬 수 있게 응원해 줘.

아빠! 또 보러 올게.

결혼하면 이제 남자친구랑 같이 찍은 사진도 가져와서 아빠 옆에 놔두려고.


내년 이맘 때면 이제 아빠가 내 곁에 있던 시간보다 내 옆에 없는 세월이 길어지네. 안 흐를 것 같던 시간이 어떻게 흘렀어. 그 긴 시간들을 우리 가족이 어떻게 잘 지내왔네. 하나님의 은혜야.

매년 올 때마다 아빠한테 ‘아빠 요즘 난 이렇게 지내고 있어’라고 한 마디씩 하는데.

내년엔 ‘아빠! 나 결혼했어!’ 이 말을 가지고 올 수 있겠다.

아빠! 또 올게.


아빠, 혹시나 결혼식 못 참석하니 속상해하거나 걱정할까 봐 미리 말해두는 거야.


신부등장할 때 행진은 그냥 나 혼자 하려고 해.

아빠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으니 애초에 그냥 비워둘 거야.

다행히 요즘엔 신부 혼자 등장하는 거 많이 한다더라. 오히려 신랑이 프러포즈하는 듯한 퍼포먼스를 하면 다들 환호성 지르고 좋아한대.

그래도 혼주 석에 엄마는 혼자 앉아계시는 게 싫으실 수 있으니 그건 전적으로 엄마 의견에 따를게.


아빠! 하늘에서 미소 지으며 우리를 바라봐줘.

그거면 충분해!


언제나 나를 들여다보고 응원하고 있단 거 알아.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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