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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브러리 Jan 28. 2016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현실의 고통이 치유되거나 혹은 재현되거나, 무의식의 세계



인간은 늘 꿈을 꾼다. 꿈이란 실제의 현실과 대조되는 개념이기에, '비현실적'이다 라는 수식어로 형용되기도 한다. 때문에 꿈의 세계에서는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3차원의 시공간이 무너져내린다. 꿈꾸는 자의 정신은 직선적인 시간 개념이나 공간의 한계 따위를 가볍게 초월하며 자유로이 여행한다. 이 정신적 여정을 지탱하는 줄기는 꿈의 주체가 지닌 경험에 맞닿아있다. 현실에서 체험했던 감정과 사고들이 무의식적 변이, 응축 등의 단계를 거치며 꿈의 세계를 구축하는 재료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렇듯 꿈은 현실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다. 단순히 허황된 판타지적인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감각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해내는 '반(半) 현실적' 세계인 셈이다.


꿈 혹은 무의식의 세계는 영화에서 꽤나 자주 사용된 소재이기도 하다. 영화 전공자라면 한  번쯤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대해 관심을 가져봤을 것이다. 사실 꿈은 그 자체로 숱한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미지의 세계이기도 하다. 의식은 현실을 송두리째 통제하는 절대적인 요소이지만, 이 무의식의 영역에서는 최소한의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다. 그저 경험할 뿐이다. 


때문에 인간은 꿈이라고 하는 일종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된다. 이러한 원초적 갈증을 해소시키기 위해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내놓는다. 그리고 이 심오한 세계를 가시적으로 표현해내기 위해 다양한 감독들이 꿈과 무의식을 소재로 영화를 제작해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꿈의 완벽한 실체와 결코 마주할 수 없다. 그것을 분자처럼 쪼개고 도표를 통해 구성요소를  체계화할 수도 없다. 앞서 말했듯, 꿈은 인간의 의식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다이안의 환상 속 베티와 카밀라의 모습.


<멀홀랜드 드라이브> 역시 무의식의 세계를 담고 있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꿈(Dream)' 보다는 '환상(Illusion)의 느낌이 강하다. 비척거리며 가쁜 숨을 내쉬는 누군가의 시점으로 표현되는 오프닝 씬으로 미루어 보건대, 마약 혹은 무언가에 취해 의도적인 환각을 경험하고자 한 게 아닐까 짐작해볼 수 있다. 어쨌건 영화는 전반부 2시간의 환상, 그리고 후반부 30분의 현실로 구성된다. 작품의 서사 구조 자체가 뒤틀려있기 때문에, 현실로 돌아오는 후반부에서나 어렴풋이 작품의 전체적인 골격을 예상할 수 있다.




2시간가량 벌어지는 꿈의 주체는, 주인공 다이안(나오미 왓츠 분)이다. 그녀는 스타의 꿈을 품은 배우로서,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카밀라 로즈(로리 허링 분)와는 사랑을 나누던 사이다. 바람직한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순수한 사랑을 갈구하던 인물이다. 그러던 그녀의 인생에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다. 


사랑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을 거라 믿었던 카밀라에게 남자가 생기게 된 것이다. 심지어, 외도의 인물은 영화감독인 아담 케셔(저스틴 셔룩스 분)이다. 다이안은 일순간에 카밀라와의 사랑을 잃게 되고, 선의의 경쟁자이기도 했던 그녀의 성공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씁쓸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녀의 인생을 지탱하던 두 개의 기둥이 와르르 무너져버린 것이다. 이 시기에 다이안이 경험했던 패배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었을 게다.


<멀홀랜드 드라이브> 스틸컷.


다이안의 내면에서 진행되는 격동과 혼란은, 전반부의 환상을 통해 재구성되어 표현된다. 현실에서 그녀가 경험했던 모든 감정과 사고들이 꿈을 통해 재현되는 요소들과 완벽히 대응되지는 않는다. 이 과정에는 응축과 전이, 억압과 저항 등의 무의식적 활동이 왕성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태만 달리 했을 뿐이지, 곳곳에 배치된 다양한 요소들은 결국 현실적 경험의 산물이다. 데이빗 린치 감독은 천재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꿈과 현실의 영역을 치밀한 설정들로 연결짓는다. 때문에 이 짧은 리뷰를 통해 작품에서 사용된 모든 설정을 하나하나 기록하기는 무리가 있다.


데이빗 린치 감독은 기형적인 서사구조를 통해 관객들을 혼돈에 빠트린다. 무의식을 다루는 만큼 불가피한 설정인지도 모르나, 뒤틀리고 꼬여버린 구성은 도무지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다. 하지만 영화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감독의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 묻어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잡다한 소품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를 주의깊게 관찰한다면 시간의 역전적 구성을 쉽게 따라갈 수 있다. 또한, 전반부의 이야기가 다이안의 무의식이라는 사실을 암시해주는 복선도 적잖게 등장한다. 마치 동성애를 다룬 <인셉션> 같기도 하다.


거울 속 포스터의 여인은 엔딩씬에서 등장하는 여왕과 흡사하단 느낌을 준다. 일종의 복선.



Silencio


실렌시오. 다이안의 환상 속 리타가 불현듯 중얼거리는 대사이기도 하며, 관객을 환장하게 만드는 엔딩씬의 대사이기도 하다. 스페인어로 '침묵' 또는 '무언'을 뜻하는 단어다. 왜 데이빗 린치는 이 짧은 단어로 작품을  마무리했을까. 무의식의 세계는 그저 짐작만 할 뿐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니, 그곳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라는 의미일까. 혹은 자신이 표현해낸 판타지를 해석하려 들지 말고 조용히 받아들이기만 하라, 이런 뜻일까. 


전자든 후자든, 혹은 둘 다 아니건 간에 이 침묵의 어휘는 극에서 무거운 비중을 차지하는 주요 키워드 인 것 같다. 허나 개인적으로는 '실렌시오'를 입모양으로 내는 여왕 분장의 이름모를 여성이 마치 데이빗 린치를 대변하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는 다소 거만한 자세로 우리를 조롱하듯 속삭이는 것이다. 닥치고 그냥 받아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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