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말씀이 있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보여지는 존재론

by 낭만민네이션

처음에 그 말씀이 있었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하나님도 그 말씀과 함께 있었다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셨다


그 말씀은 첫날부터 하나님을 위해

준비된 말씀이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다

그 분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존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바로 생명이었으니


그 생명은 삶을 유지하는 빛이었다

그 생명 빛이 어둠을 뚫고 타올랐으니


어둠은

그 빛을 끌 수 없었다


요한복음 1장_메시지 성경




기독교는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법이다

또한 진리를 규정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진리가 여러개라고 말하지 않고

한개만 있다고 말하는 방식에서 유일신을 믿는다


기독교가 안정적인 이유는

몇가지가 있는데


일단 존재론에서 하나의 신을 인정하기에

그리고 그 신을 인정하는 근거를 '성경'에 두기에.


존재론적인 안정성은 다른 선택이 아니라

선택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묻는 것에서 나온다


이러한 메타포는 '선악과를 따 먹을 것인가 아닐 것인가?'에서

다른 과일을 먹을까 말까가 아니다


그러니까 명령이 주는 단순함에서

안정성이 온다


존재론으로도하나의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을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가 고민이지


하나님 1, 하나님 2, 하나님 3을 믿는 다는

토르의 아스가르드와는 다른 것이다


하나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고

하나의 믿음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조직신학은 영어로도

systemetic theology라고 한다




존재론적 안정감 안에서 이제

치열한 해석의 전투가 시작된다


헬라어와 히브리어의 연결고리에서부터

고대근동 언어를 어떤 맥락에서 이해하느냐까지.


여기서 파생되는 구원론, 인간론

사회론, 내세론, 신론 등등은 여전히


아주 풍성한 해석의 공간을 주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복잡해서 그냥 믿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지적인 파고듬으로

발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맹신하면서 해석을 주체인 목사를

믿는 사람들도 생긴다


치열한 전투 속에서 한국 기독교는

수만갈래의 신앙으로 나뉘어졌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외에는

다른 부분들이 지금도 양산되고 있는 중이다


해석의 문제로 성경이 오류가 있냐

있다! 없다?로 자유주의와 근본주의가 나누어지고


베빙턴의 '복음주의'정의를 사용한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권위와 경건주의를


중요한 사상의 기둥으로 삼고

자신들 만의 입지를 굳혔다


이러는 와중에서 성도들은

어떤 번역을 믿고, 어떤 교단에 가야하는지


그리고 어떤 신학교를 나온 목사님이

어떤 출처를 가지고 설교를 하는지에 대해서


점점 까막눈이 되어 가면서

머랄까? 종교개혁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사제들의 왕국이 만들어진 것 같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이 그렇다




오늘 말씀에서 처음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후반부로 내려오면 그 말씀이

곧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오셨는데


그 말씀이 곧 예수님이시라고 한다

그래서 그 분을 영접한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예수님은 자신의 집으로

영접하는 것이었겠으나


지금의 시대와 맥락에서는

예수님을 마음속으로 영접하는 사람


곧 말씀을 믿고 그게 진리로

자신의 중심에 세우는 사람


그 사람에게 구원이 있다고

결론이 맺어진다


창조론으로 규결되는 이야기의 시작은

말씀으로 이 세상이 만들어졌고


그 말씀은 곧 빛이고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이 사람들 안에 있었지만

사람들이 그 빛을 싫어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오면 여러가지

메타인지가 생기나


항상 내면에서는 같은 음성이 들려온다

'오늘도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는.


나는 그래서 기독교는 오히려

지식의 종교이전에 경험의 종교라고 생각한다


종교라는 말이 부담스러우면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인격적인 하나님이라면,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자비의 하나님이라면.


내가 경험을 해본 것을 가지고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어떤 초자연적인 것으로 치장된

신사도주의가 아니고


정말 우리의 쪼그만한 일상에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명령


그리고 사랑의 어떤 느낌과

또력한 대화의 음성이겠다 싶다


지금도 햇빛처럼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시고


용서하시고

이해하시고


사랑하시고

웃으시는 하나님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경험과

지식이 만나서 감동이 만들어지는


감정과 정서가 만들어지는

전인적으로 하나님이 좋아지는 중이다


그리고 그 좋아짐이 사랑으로

옮겨가는 시점은 오늘의 말씀처럼


내가 사랑을 실천했을 때

비로소 내 안에서 하나님이 진정한 하나가 되신다는 것.


오늘도 사랑을 살고

오늘도 말씀이 육신이 되는 성육신의 경험을


우리는 성화라고 부르겠지

나에게는 일상의 작은 도전이지만.




오늘도 말씀이 내 안에서 또아리를 틀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해 가신다


그렇다면 창조론이 맞고

빛이, 생명이 맞다


나는 어제와 다른 삶을

방금 전과는 다른 살을 살게 되니까!


보라! 이전 것들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