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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Sep 26. 2024

성령의 감동으로 사도들이 걸었던 길

로잔대회 첫날 말씀_성령의 인도하심

로잔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어떤 쪽에서는 로잔대회가 자유주의의 현실판이거나 종교다원주의의 축소판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한다. 그런데 직접 참석해보니 절대 그럴수가 없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면서 신실하게 자신의 삶에서 직접적인 행동으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한국적인 맥락에서 분열된 교회의 진영들이 서로 싸우는 가운데 교인들은 부족한 정보로 자신이 경험해보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한 것들을 가지고 피켓을 들고 사람들을 악마화한다.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느라 다른 사람을 인간이하로 떨어뜨는 일은 허다하며 그 사람 안에 있는 성령의 역사하심까지 부정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로잔대회에서 들은 말씀들 중에서 엄선하여 공유하고자 한다. 



약속된 성경의 오심


성령의 능력없이는 어떤 사명도 완성될 수 없다. 모든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세계에서 성령의 능력을 받아 복음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끝까지 증거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교회들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지역적이면서도 지역을 넘어서 '자신들의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전파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성령의 임재이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기 위해서 반드시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 사도행전 2장 1절에서부터 21절까지 살펴보자. 




1) 성령의 강림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예루살렘에 머무를 것은 명령하셨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선교가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기도로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 여기에 모인 제자들은 다양한 민족들이 모였고, 여성이나 남성이나 인종이 달라도 모두 모여서 약속의 성취를 기다렸다. 성령께서 결국 '오순절'에 임하셨고 성령의 능력은 이적과 표적과 이상으로 보옂주셨다. 하늘로부터 크고 강한 소리가 각 사람의 머리 위에 불의 혀가 임했고, 제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지고 충만해졌다. 성령께서 주신 언어로 각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1904년 웨일즈의 부흥을 이끌었던 사람들은 처음에 이러한 부흥이 일어날지 몰랐다. 1906년에는 LA에서, 이후에는 아프리카에서 부흥이 이어졌다. 1920년에서 1930년대까지 전세계적으로 일어났던 부흥은 전략이나 기획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오직 성령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지 않고 성령님이 인도하시는대로 충만한 영성을 붙잡고 오순절 다락방과 같은 그 부흥을 갈망해야 한다. 


2) 성령감림에 증인들


성령의 감동을 입은 군중은 다양했다. 다락방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언어로 말씀을 듣게 되었다. 하나님은 어떤 민족 집단의 언어도 경멸하지 않는다. 군중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로 하나님의 역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이 모든 것은 전세계 선교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경이로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는 '새술'에 취했다고 조롱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성령에 취했던 것'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들이 술에 취했다고 말했다. 같은 현상을 보고도 다른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오순절의 사건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았다. 베드로는 성령이 임하시고 예수님을 담대하게 전했다. 베드로가 대중에서 예수님을 선포했을 때 요엘서의 환상이 오늘 이루어졌음을 선포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핍박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부활하셔서 결국 하나님의 세계를 완성하시리라는 것을 선포했다. 베드로의 설교는 모인 사람들의 마음에 '우리가 어찌할꼬'라는 회개의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음이 쪼개지고 자신의 삶을 돌이키기 시작했다. 우리의 사역은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로잔대회의 주제처럼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하고 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한다. 그러나 그 전에 '성령의 임재'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 없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선포하는 것에 주저하지 말고 담대하게 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초대교회와 같은 '성령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전략과 철학, 역사적인 경로에 너무 심취해 있다. 성령의 능력은 오히려 뒤쳐진 것 같고, 트렌드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모인 우리는 다시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도행전의 시작부에서 성령의 임재가 없었다면 그 이후의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로잔대회에 모인 우리들도 고민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성령이 임하시면 큰 부흥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부흥은 단지 돌이킴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의 변화와 국가의 변화,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켰다. 1906년 중국에서, 1907년 평양에서 부흥이 일어났고 인도네이상, 동티모르, 호주에서 부흥이 일어났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중심으로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고 돌아보아야 한다. 이러한 부흥은 단지 사람들의 회개에서 끝나지 않고 대학들에서도 회개운동이 일어나고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러한 부흥은 많은 학생들이 전세계로 파송되어 선교의 사역을 담당하였다. 


3) 성령강림의 목적


오늘날 우리는 담대하게 선포해야 한다. 어제와 오늘도 내일도 항상 하나님이신 분께서 여기 모인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 우리는 더욱 담대해져야 한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근대 서구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기적적인 환상이 끝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서구의 계몽주의의 영향을 덜 받은 아프리카 지역은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다는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가지고 있다. 2010년 케이프타운 대회 이후에 남반구 중심의 선교가 중요해진 이유 중에 하나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믿지 않는 이상 발전된 사회에 대한 찬사나 멋진 계획이나 기획에 대한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고 기다린다면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현상에 접근할 수 있다. 


성령이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회개할 수도 없고 그리스도를 전할 수도 없다. 성령의 인격과 능력을 온전히 인전하고 성령계 전신으로 헌신하는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당면한 필수적인 과제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우리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예수그리스도를 우주의 주인으로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겸손하게 기다리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성령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더 겸손하게 기다리고 기다려야 한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성령을 구하고 회개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말씀전파였다. 5000명이 모인 자리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최신 선교이론이나 종교통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성령의 은혜를 구하고 분열되어 있던 것을 회개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한국적 맥락에서 너무 방법론이나 진영논리, 전략적인 접근만 이야기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눈을 들어보니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이고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그리스도가 주가 되시는 인생에서는 사랑이 기본적인 원동력이 되고, 섬김이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 된다. 교회여 일어나서 예수님을 나타내자. 복음 선포를 두려워하지 말고, 겸손하게 사람들을 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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