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학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민네이션 Jul 29. 2024

아브라함 카이퍼와 세계관

한국교회를 위한 카이퍼의 세상읽기_김은득 교수님 직강

오늘은 현대기독연구원에 진행하는 북콘서트에 왔다. 김동춘 교수님과 함께하는 제임스 스미스 스터디에 잠시 오셔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제 백석대 교수가 되셔서 책까지 내셨다. 독특한 입담과 남다는 재치로 항상 재미와 의미를 깊이 남겨주시는 김은득 교수님의 새책 북토크를 하는 중이다. 갤빈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고 특히나 아브라함 카이퍼의 저작들을 즐겨 읽으시면서 그 후예들과 대화를 나눈 이야기를 책으로 쓰셨다. 짧은 스토리이지만 깊은 울림을 주고 오늘날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더욱 깊어갈 때쯤 교수님의 아브라함 카이퍼의 이야기는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강의를 들으면서 적느라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지만 그래도 현장에서 나눈 이야기를 남겨 놓기 위해서 써본다.



제임스 스미스와 변주적 카이퍼주의

스미스는 카이퍼적으로 변주된다. 종말에 대한 확고한 세대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구속을 대단히 편협하게 이해하는 북미 복음주의의 대체로 이원론적인 분파 안에서 회심하고 성장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도시 계획이나 화학공학이나 개발도상국의 수자원 확보에 관해 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할 말이 거의 없었던, 휴가에 대비하는 천국 중심의 경건이었다.

결국 불타없어질 세상에서 정의나 번영에 왜 굳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는가?

카이퍼 복음을 들었을 때 충격과 화가 동시에 났다. 죄와 영혼 구원 뿐만 아니라 창조, 문화 만들기, 정의에 대한 관심을 포함하는 구속에 대한 통전적 이해를 아우르는, 성경 서사에 대한 더 풍성한 이해를 접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비물질적인 영혼에만 관심을 기울이시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속량하시며 피조물을 갱신하신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이 세상의 구속도 성취했다. 복음으 누일의 영혼을 위한 탈출 장치에 관한 선언이 아니라 샬롬의 틈입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자칫하면 카이퍼주의의 변주가 일어나면서 이 세상의 내재성만으로 빠져들 위험도 있다. 그래서 결국은 예전과 예배, 우리를 형성하게 하는 것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장feild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와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했다.




https://brunch.co.kr/@minnation/3278


기독교 세계관 운동과 카이퍼


한국기독교에서 '세계관운동'은 무엇이었을까?


15년전까지만해도 한국교회에서는 대부분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논쟁이 많았다. 당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다원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기였고, 이에 대해서 교회들은 절대진리인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 세계관을 비판의 요소로 사용했다. 카이퍼가 가지고 있는 사상인 '일반은총론'이나 '영역주권론', '분화와 개현'과 같은 부분은 교회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단순히 '기독교 세계관을 통한 문화비평'으로써 대중문화를 비판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니깐 절반의 전파, 소수의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처음 카이퍼가 소개되고 한국에 받아들여지는 시기가 교회가 성장하던 시기라는 점을 기억하다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사실 네덜란드어가 확산되지 않은 영향으로 카이퍼의 사상이나 헤르만바빙크, 도예베르트와 같은 학자들의 저작이 많이 소개되지는 않았다. 우리 중에 누가 '네덜란드어'를 공부해서 번역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캘빈신학교 정도에서는 카이퍼의 책들을 볼 수 있는 언어적인 풍부함이 있었지만 그 외의 신학교에서는 카이퍼의 저작은 '네덜란드어'로 읽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보통 학문이 발전하면 3세대정도 학자들이 등장할 때부터 발전한다고 한다. 최근에서야 캘빈신학교에서 제임스스미스의 3권의 저작이 나오면서 다시 카이퍼의 저작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최근에는 '영역주권'이 소개되었고 캘빈신학교에서 공부하신 김은득 백석대 교수님께서 '한국교회를 위한 카이퍼의 세상읽기'를 펴냈다.


진리에 도달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기독교세계관이 제대로 확장되면 '진리'에 도달한다. 카이퍼의 논리는 모든 학문을 기독교 안으로 가지고 와서 해석할 수 있다고 하는 것보다는 한 영역에서 누가 더 진리에 도달했는가를 보겠다는 것이다. 영역주권은 창조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창조원리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은 단순히 기독교인이라고 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했다면 모든 인간은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고, 이러한 갈망을 자신이 서 있는 영역에서 충분히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카이퍼가 지금 시대에 등장한다면 다양한 사회적인 열망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펼처 보이는 것을 즐겁게 생각할 것이다.


신칼빈주의는 보통 교리로 인식하고 있지만 카이퍼와 바빙크가 처음에 만들 때는 교리가 아니라 '세계관'이었다. 세계관이라는 단어는 칸트가 처음 사용했고 헤겔을 통해서 '세상과 일상에 대한 관점'이라는 것으로 소개되었다. 신칼빈주의에서는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성경을 통한 관점을 가지고 일반대중들이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제시했다. 교리적 칼빈주의와 세계관적 신칼빈주의의 사이에서 카이퍼는 교리가 아니라 삶 전체를 조망하면서 일상 생활속에서 분화하는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관점으로 신칼빈주의를 제창했던 것이다. 카이퍼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이러한 삶에 대한 조망을 이야기한 것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정치사회적 구조에서 소외된 자들을 '시민'으로 격상시키면서 자유와 민주의 개념을 모두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북미개혁주의는 3가지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인 변화에 대해서 두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오로지 경건한 생활만을 강조하는 경건주의적 개혁주의 칼빈주의가 있다. 이에 조금 더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 교리적인 칼빈주의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문제를 교리적으로 정죄하고 비판하면서 타부시하기도 한다. 또한 가끔 문화변혁적 칼빈주의가 등장하면서 창조의 신학의 관점에서 다양성과 다원성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려는 움직임도 있다. 최근 한국교회에서는 세계관운동이 많이 시들해졌지만 미국신학에서 세계관에 대한 관심은 그래도 존재하기도 한다.




북미 개혁주의적

경건주의적 개혁주의인 칼빈주의 : 새벽기도와 중보기도 그리고

교리적 칼빈주의 : 예정설, 성경무오설, 전적타락와 같은 바른 신학. 문제는 누가 이것을 규정할 것인가?

문화변혁적 칼빈주의인 신칼빈주의 : 구속보다는 타락이고, 타락보다는 창조에 더 관심을 가지고 문화를 변혁해가는 기독교 신학에 대한 접근을 통한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




카이퍼는 정치영역에 대해서는 매우 명확했다. 반혁명 국가학에서 드러난 것처럼 국가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성과 정의'이다. 세속적인 국가라고 치부해버릴 것이 아니라 공공성을 추구하면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이퍼가 살았던 시대의 네덜란드는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가운데 국가가 공공성과 정의를 실현하는 주체가 되었다. 소외되고 배제된 자들을 위한 혁명이 국가단위에서 지속되었으며,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가 드디어 주체를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 국가가 어느순간 빛날 때가 있다. 제대로 된 지도자와 시대를 만난 제도들 그리고 시민들의 의식과 다음세대들의 노래가 커질 때이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지도력으로 네덜란드는



유기체적 교회, 기독교 세계관, 영역주권론


카이퍼의 유기체적 교회론의 핵심은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라는 것이다. 현대 기독교에서는 자연스럽게 고린도전서를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지어져 가는 몸으로 인식되지만 18세기만 하더라도 '특별히 선택된 존재'로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이라기 보다는 선택된 나그네였다. 그러나 카이퍼는 교회가 단순한 건물이 아니고, 인간의 모임이 아니고 선택된 백성들의 언약관계 안에서 연결된 몸으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각가 다른 역할과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로 연결된 존재라고 보았다. 또한 교회는 세상의 문화와 대립하면서도 그 문화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증언하는 존재였고 구체적인 정치와 교육의 참여를 통해서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교회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 개혁주의 교회 전통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카이퍼의 기독교 세계관은 몇가지의 특징이 있다. 바로 영역주권론이다.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면 모든 것이 하나님과 연결되었다고 단순하게 치부할 수 있지만, 영역마다 하나님이 운영하는 원리가 다르다고 한다면 하나님과 연결된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더욱이 한 영역에서는 분화와 개화가 일어나면서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세분화되는 가운데 영역들의 완전성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영역들은 서로 독립되어 있지만 상호존중하는 상태이며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영역마다 독특한 구조와 방향으로 인간의 문화를 이끌고 계신다.


또한 아브라함 카이퍼는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이 세상의 문화에 기독교인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소극적이거나 도피적인 태도로 임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구조와 방향 속으로 들어가서 '변혁'을 일으키는 주체가 되라는 것이다.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기독교인들의 활동 무대는 각자을 부르신 각 영역안에서 전문성으로 대변되는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세상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참여를 하되 공정하게 경쟁하면서 진리에 더 접근하려고 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문화에 대한 태도는 단순히 교회 내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직업과 사회활동 속에서 동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삶으로써의 기독교'를 설파한다.



강의를 들으면서 들었던 질문들

1. 아브라함카이퍼가 이야기하는 '분화'와 '개현'이라는 관점은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운동에서 잘 전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세계관운동과 카이퍼의 사상과는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다르다고 생각하나요?

2. 카이퍼의 일반은총과 로잔의 관계가 있을까요?

3. 그리스도의 주권과 다원주의는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

4. 카이퍼의 영역주권론은 '엘리트주의'가 되는 것은 아닌가? 전문성이라는 담론이 가진 권위주의로 빠질 가능성은 없을까?

5. 오늘날 카이퍼의 사상은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안이 될 수 있을까?

6. 료타르의 '포스트모던적 조건'에서 말하는 다원성은 성경 66권에서도 나온다. 이렇게 보았을 때 기존의 관점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장 문제라고 하지만 카이퍼에게는 오히려 다원성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데 맞는가?

7. 카이퍼가 보기에 '죄'에 대한 혹은 '악'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8. 국가가 추구하는 것은 매우 다양하다. 정의와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때 특정한 국가체제를 진리로 받아들이는 거이 가능한가?

9. 카이퍼의 관점에서 공공선과 정의가 '자본주의'와 만나게 되면 사실 말하기기 힘들어지는 부분이 많아진다.



https://brunch.co.kr/@minnation/1165



https://brunch.co.kr/@minnation/2097



https://holywaveplus.com/135/?idx=249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8212118



책소개


공공신학의 시조,
아브라함 카이퍼가 한국 교회에 보낸 편지가 도착했다!

“기독교 세계관과 공공신학의 원조
아브라함 카이퍼의 음성을 직접 듣는 듯하다!”
★류호준, 신국원, 이재근, 김관성 추천

한국인 저자가 한국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쓴 아브라함 카이퍼의 기독교 세계관과 공공신학 가이드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말한 기독교 세계관을 본래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그가 기독교 신앙과 현실의 삶 사이를 연결하는 문제와 교회의 공적 효용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변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을 일인칭 시점의 편지 형식으로 풀어 쓴 이 책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유산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또한 기독교 세계관과 공공신학의 논의들이 단지 이론에 그치지 않고, 교회를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사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제시하는 원리에 따라 형성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게 한다.

“한국 교회는 지금 세속화의 위협 가운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보다는 세상만큼이나 죄악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상이 한국 교회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도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 교회의 공공성 회복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공성 회복을 미국 복음주의의 경우처럼 공적 영역, 특히 정치 영역에서의 영향력 증가로 인식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나는 것은 한국 교회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왕권 아래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 왕을 위하여(Pro Rege)!” _1장에서



목차


감사의 말
들어가는 말

1부 지금의 한국 교회가 아브라함 카이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1장__ 왕을 위하여: 삶의 모든 영역을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2장__ 한국 교회의 공공성 회복: 미국식 칼뱅주의를 극복하려면

2부 진짜 기독교 세계관 이야기

3장__ 기독교 세계관: 위기와 혼돈의 시대를 극복하는 힘
4장__ 신칼뱅주의 세계관: 도대체 칼뱅주의가 뭐길래?
5장__ 기독교 세계관이 한국 교회의 숨구멍이 되려면
6장__ 한국 교회를 위한 기독교 세계관
7장__ 기독교 세계관과 일터

3부 삶의 모든 영역을 통치하시는 그리스도: 영역 주권

8장__ 정치적 지향: 진보냐 보수냐 그것이 문제인가
9장__ 영역 주권의 출발
10장__ 영역 주권은 신정주의적인가?
11장__ 영역 주권은 세속주의를 부추기는가?
12장__ 영역 주권의 정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4부 카이퍼 신학, 나라를 바꾸다

13장__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기독교 세계관
14장__ 기독교 세계관에 기반을 둔 기독교 하위문화
15장__ 분화와 협의적 민주주의

5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16장__ 세속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진짜 공공신학




매거진의 이전글 공동체의 변화는 어떻게 세계관의 변화로 이어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