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복음과 사회복음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로잔언약이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데, 왜 한국에서는 많이 회자되지 않았나? 1970년대 한국의상황은 독재정치가 흥하고 있었고 사회복음의 측면에서 인권과 가난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금기시 되던 때였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야 로잔언약의 정신이 반짝거리고 있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도 로잔언약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할 수 있고, 한국교회복음주의교회 연합이라는 단체도 마찬가지다.
서울신대 조정남 교수가 이미 로자언약을 번역을 했지만, 이것이 어떤 배경이고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2013년 영국에서 복음주의 세계확산'이라는 책을 통해서 이러한 배경들을 서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겼다.
현재는 로잔 3번째로 케이프타운 서약이 번역되어 나왔다.
빌리그레이엄 전도협회에서 베를린전도회의를 개최하면서 전세계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확산을 위해서 베를린 선교대회를 시작한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잘 수행하기 위한 조직으로 이러한 운동이 시작된다.
일단 1966년에 시작된 운동은 그 영향으로 수 많은 모임들을 기획하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로잔대회였다.
휴머니즘의 입장에서 인간구원을 중심으로 정치적 해방으로서의 구원과 선교를 외치게 된다.
1968년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중요하다. 68혁명 당시 프랑스와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떄였다.
그러나 사실은 빌리의 계획은 근본주의가 자유주의에 대해서 반대하는 차원에서 구원'의 문제로 소급되었던 것처럼, 너무 사회주의에만 집중되는 경향을 균형적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빌리가 로잔대회를 열려고 했을 때 빌리의 기반은 미국이었기 때문에 네트워크와 파급력에 있어서 영국인을 세워서 전세계적인 포섭이 가능하도록 전략적으로 조직을 운용한다.
아시아 96%, 북미 90%, 중미88%, 아프리카86%, 남미85%, 오세아니아85%, 유럽51%
유럽, 특히 영국 복음주의자들은 미국에서 개최하는 부분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존스토트, 고든 랜드레스, 존 레어드, 데이비드 윈터, 마이클 하퍼 등)
영국과 미국의 근본적인 복음주의 문화차이 및 영국인의 전형적인 미국인 폄하가 큰 장벽이었다.
그 이유는 영국인들이 미국인을 생각할 때 세계복음화 구호만 그치는 깊이 없는 대회, 지나친 대규모, 미국인의 지배 및 정복 기질, 지나친 호화 숙소, 주제넘고 자만과 천박함으로 가득한 말잔치, 좁은 신학범위, 미국인들의 돈잔치'라고 생각했다.
이 대회의 성공의 큰 요건은 존스토트의 참석이었다. 존스토트는 성공회와 연결되어 있고 IVF와 연결되기 때문에 전세계적인 동원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1974년 7월 16일-25일까지 로잔 팔레드볼리외 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총 2473명 159개국, 135개 교단, 비서구 신자 1천명이 모였다.
여성은 7.1% 정도였고, 평신도는 10% 미만이었으며, 44세 이하는 50% 이상이었다.
1910년에 있었던 에딘버러 선교대회와 비견할 만한 세계적인 대회였다. 에딘버러보다 로잔에는 목회자들의 참석이 크게 증가되었다.
차세대 리더들을 모으고 새로운 연구주제를 만들어가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미전도종족 ; 도널드 맥가브란, 랄프윈터, 피터 와그너 등 미국 플러신학교 그룹에서 이러한 주제를 밀고 나갔다.
사회정의 및 급진제자도 ; 라틴아메리카 복음주의자 그룹에서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존 하워드 요더가 영국에서는 짐 펀턴이 주로 목소리를 내었다. 메노나이트 계열의 사람들이 참석해서 사회정의에 대한 목소리르 높였다.
기독교 역사사 처음으로 비서구출신의 목회자들과 일반인들이 복음에 대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지난 400년 동안 혹은 2000년 동안의 기독교에서는 백인 중심의 서구화가 심화되었지만, 로잔대회부터는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목소리도 듣기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구조적 사회불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분석과 성경의 급진적 제자도 융합
르네 파디야 : 복음을 값싼 은혜, 소비자에게 최상의 가치를 보장하는 시장상품으로 축소시킨 미국식 문화기독교를 비판하고, 복음화를 최단기간에 최소비용으로 최대기독교인을 만들어내는 수학적 계산으로 축소시킨 실용적, 공리주의적인 '교회성장운동'을 비판했다. 라틴아메리카 IFES부총무였고 에쿠아도르 침례교 출신이었다.
사무엘 에스코바르 : 캐나다 IVCF 대표였고 페루침례교 소속이었다. 나사렛선언'(누가복음 4장)의 전인적인 이해를 촉구했다. 그 당시 해방신학자들은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영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그리스도의 자유와 더불어 자유롭게 된 심령은 경제, 정치, 사회적 압제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인간의 갈망에 무관심할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선포는 미국사람들에게 매우 큰 충격이다.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로써 그 당시 남미를 경제적으로 착취하고 독재정권과 결탁을 해서 제국주의의 확장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이러한 에스코바르의 선언은 반미신학'이라는 입장에서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올란도 코스타스 ; 푸레에르토리코 침례교 소속으로 코르타리카성경신학교 교수였는데, 로잔대회에서 연설을 하는 것은 아니었고 책자를 만들어서 돌렸다. '심층전도'는 복음을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현 세대의 사회-경제구조에도 적용하는 것을 의미하며, 미국 복음주의 남미선교는 제국주의 문화의 경제 이익과 연결된 부패한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에서 신학을 하거나 신앙을 가지면 부패한 독재정권과 사회문제에 대해서 눈을 감게 만들고 심지어 이러한 구조를 정착화 시킨다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3명의 활동은 남미 해방신학의 위엄을 보여주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냈다.
동아프리카 부흥의 영향력과 서구 선교의 모라토리엄이 일어났다.
동아프리카 부흥을 통해서 케냐를 비롯한 동부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의 80% 국가들이 부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존가투는 케냐 출신으로 동아프리카 장로교 총무였고 로잔대회에 초청을 받았다.
아프리카교회의 자립과 자치를 위한 서구 선교사업 선언을 한다.
서구사회의 물량 선교는 이제 끝이 나고 자치를 위해서 모라토리엄을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잔에서는 선교사 '철수' 대신 '축소'로 수정하여서 마찰을 줄였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반감혹은 당혹감을 가지게 되는데, 영국에서는 이러한 분위기를 화해하는 역할을 존스토트가 하게 된다.
한국은 동노회를 통해서 자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부흥이 일어나면 감정적인 터치가 필요한데 외국인 선교사들이 그러한 터치를 할 수 는 없었기 때문에 현지인의 자치가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주도권의 이양이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일어나게 된다.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고 현지인이 복음을 전하는 자치와 자립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존가투역시 케냐 부흥의 핵심이 되고 자치와 자립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로잔언약 입안위원장 의장이 되어서 15주제 로 정리한다.
초안은 스콜틀랜드 JD더글라스가 대회 3일전에 작성하였고, 초안을 기반으로 4번의 수정 끝에 로잔언약이 만들어진다.
쉐퍼, 바이어하우스 등 보수파와 라틴아메리카 급진파의 중재가 일어난다.
미국사람들이 원하는전도우선성을 위치시키고, 사회참여(7안이었던 사회참여를 5안으로 올리고 6, 7안으로 확장시킨다)를 원하는 비서구의 목소리도 포함시킨다.
대회 중 서명은 2473명 중에 2000명이 하게 된다.
미국복음주의자의 일방성, 보수성, 지배의지 무력화와 급진 복음주의자와의 타협을 주도하였다.
이후 복음주의 세계에 급진파 등장의 산파 역할을 하게 된다.
로잔 계속위원회LCCWE에서 미국인의 보수반동에 저항하며 로잔언약의 더 넓은 선교 개념이 만들어지는데, 전인정신 계승 감독하게 된다.
존스토트는 서로 반대되지 않고 모든 부분에서 균형을 갖춘 로잔언약을 만들어 낸다.
로잔의 진짜 메시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게 된다.
멕시코 시티1975 대회, 파타야1980 대회에서는 다시 미전도 종족 주제로 바뀌게 된다.
그랜드피즈1982대회에서는 가위의 양날, 새의 양날개라고 하면서 다시 균형을 회복한다.
로잔2 마닐라대회1989를 통해서 전인성이 부활하고 마닐라 선언은 21개로 늘어나게 된다.
로잔3 케이프타운2010년 대회에서는 "온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계에"라는 구호로 케이프타운서약이 진행되고 크리스토퍼라이트의 하나님의 선교라는 개념이 습진적 제자도와 화해자로서의 선교의 개념이 완성된다.
사회행동, 사회복음은 자유주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선교와 전도는 근본적으로 같은 말이 아니다.
복음주의는 서구 북반구 백인 기독교인의 전유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