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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과학일기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맞선 개발패러다임의 대안들

필립맥마이클_거대한 역설 7장_개발에 대한 전지구적 대항운동

by 낭만민네이션

0.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맞선 대안적 도전의 모색


현대 세계는 신자유주의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이 사상은 자유 시장 경제를 곧 자연의 섭리이자 인간 사회의 필연적인 현실로 간주하며, 개인의 성공과 보상은 오직 이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논리는 자기 이익에 호소하는 매력적인 힘을 발휘하며, 빈곤층조차도 자유 시장이 가져올 더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를 통해 언젠가 자신들도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불평등의 심화를 용인하게 만드는 기제를 작동시킨다(Perrons 2005)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구화 정치(Globalization Politics)의 거대한 흐름과 발전주의적 사고방식은 필연적으로 환경 파괴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대안적 가치 모색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 부족민, 하층 계급민, 소수 민족 집단을 포괄하는 원주민 집단부터 시작하여, 환경주의와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신사회운동이 등장했다. 이들 운동은 기존의 계급 갈등 중심의 사회운동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의식과 실천 방식을 제시하며, 지구화가 초래한 위기에 맞서 지역 기반의 생명력과 사회 구조적 전환을 촉구하는 중요한 대안적 도전들을 수행하고 있다.


https://brunch.co.kr/@minnation/3555


1. 환경의 변화와 남반구 주도의 근본적인 환경 저항


1960년대 이후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은 급격히 확산되었다. 북반구에서는 1962년 출간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화학 살충제에 의한 생태계 파괴의 위험성을 전 지구적으로 각인시키며, 자연환경 보전을 주장하는 '녹색' 운동의 태동을 이끌었다. 북반구의 녹색론자들은 자연 착취적인 소비주의를 비판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대안적 소비주의 방식을 채택하며 지속 가능한 농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주로 발전주의가 초래한 환경적 영향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남반구(빈곤층 지역)에서는 생물 지역(bioregion) 보호를 위한 보다 절박하고 근본적인 환경 운동이 전개되었다. 남반구 사람들은 지역의 천연자원에 의존하는 먹거리 문화를 가지고 있어, 생물 지역의 보존이 곧 자신들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생물 지역에서 자원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활동들을 강력하게 비판했으며, 이에 저항하기 위해 지역 공동체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했다. 남반구의 환경 운동은 발전주의로 인한 '환경적 피해'를 비판하는 북반구와 달리, 발전주의 그 자체를 추동하는 시장의 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정치적인 비판을 가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환경 문제에 대한 이러한 인식 변화는
자연(또는 자원)에 대한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단순히 자원의 한계가 미래에 불러올 인과론적인 현상을 염려하는 것을 넘어, 대기환경의 변화나 생태계 다양성 감소와 같이 이미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생동감 있는 변화를 통해 자원의 유한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개발로 인한 공해와 환경오염의 문제는 '발전주의'가 인간들의 존재 기반이 되는 자연 그 자체를 오염시키고 파괴함으로써 인간 존재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를 던져 주었다. 이처럼 자연이 인류 문명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생태적 회계(ecological accounting)와 같이 전통적 경제 논리 내에서 환경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하려는 움직임도 등장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개념이 등장했는데, 이는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하면서도 미래 세대의 욕구 충족 능력을 해치지 않는 발전"(Our Common Plan, 1987)으로 정의되었다. 1992년 리우 ‘환경 정상 회의’는 환경문제를 ‘전 지구적’ 문제로 설정하고 북반구의 지원을 통해 남반구가 환경 보호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으나, 환경 악화의 근본 원인이 ‘빈곤’인가 ‘풍요’인가에 대한 논쟁을 해결하지 못했으며, 사회적 불평등을 핵심 문제로 다루지 않고 여전히 시장의 자유를 강조한다는 한계를 노출했다.


남반구 주도의 환경 저항 운동과 사파티스타 봉기

북반구 주도의 '전 지구적 환경 관리' 시도는 남반구 국가들의 천연자원을 '전 지구적 공유물'로 인식하고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실제로는 전 지구적 경제활동의 수익을 보장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맞서 남반구에서는 국가와 시장의 개발 압력에 대항하고 환경이 악화된 거주지를 새롭게 회복시키는 '적응' 형태의 저항 운동이 활발했다.

대표적인 예가 인도의 칩코운동이다. 마을의 여성들이 상업적 벌목에 저항하며 나무를 끌어안거나, 기존의 단일 수종 식목 사업을 비판하고 토착 수종을 심어 숲과 토양을 회복시키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운동은 원주민과 부족민들이 자신들의 지역을 보존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노력이다.

멕시코 남부 치아피스 주에서 발생한 사파티스타 봉기는 이러한 환경 저항을 지구적 정치 맥락과 연결한 상징적인 사례이다. 이 농민 봉기는 멕시코 정부와 국제 동맹의 개발 프로젝트, 특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시행 시점에 맞춰 봉기하며 지구화 정치에 강력히 대항했다.

이들에게 치아파스 지역을 보호하는 운동은 단순히 생태계 보호 차원을 넘어, 민족적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시도에 맞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정치적 투쟁이자 '민족해방 운동'의 성격을 가졌다. 이처럼 남반구의 환경 저항 운동은 자본/에너지 집약적인 전문 영농에 맞서는 대안 농업 개발 및 산림 농업 창조와 관료적이고 하향적인 개발 계획에 맞서는 대안 모델 구축이라는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채희태 박사님의 브런치 https://brunch.co.kr/@back2analog/640


2. 페미니즘의 도전과 젠더 기반의 대안적 경제학 모색_WID에서 GAD로


페미니즘 운동은 기존의 남성 중심적 개발 담론에 강력하게 도전하며 개발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 의미 자체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페미니즘은 인간 개발이라는 개념 속에 젠더 평등 추구를 핵심 가치로 포함시켰다. 초기에는 개발 내의 여성(WID, Women in Development) 관점이 주류를 이루었다. WID는 주로 기존의 개발 프로젝트 내에서 여성이 겪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여성을 생산자로서 (특히 먹을거리 생산자), 그리고 사회적 재생산 (교육, 의료, 가족계획 등)의 주체로서 인식하여 여성의 역할과 기여를 개발 계획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관점은 여전히 기존의 개발 틀 내에서 여성을 통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점차 젠더와 발전(GAD, Gender and Development) 관점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GAD는 단순히 여성을 개발에 포함시키는 것을 넘어, 젠더의 사회적 구성을 강조하며 개발 프로젝트 내에서 젠더 불평등을 생산하는 사회 구조 자체에 문제 제기했다. GAD는 가정 안에서 수행되는 재생산 노동이 생산 노동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며, 개발 프로젝트 내에서 ‘젠더 문제’를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개발 정책의 상류(upstream) 문제, 즉 사회 구조적 문제를 건드린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페미니스트들은 문제 제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남성 편향적인 기존 경제학을 비판하고 여성의 재생산 노동을 포함하는 새로운 경제 모델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여성주의 경제학은 기존 경제학이 ‘생산 노동’만을 경제활동으로 규정함으로써 여성과 자연이 경제 영역에서 배제되고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여성의 재생산 노동이나 생태계의 가치를 경제적 논리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는 비시장적 활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경제적 계산에 포함시켜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노력은 초국적 여성 네트워크(TFN, Transitional Feminist Networks)의 등장과 함께 지구적인 연대로 확장되었다. DAWN, WIDE, WEDO와 같은 네트워크들은 통신 기술의 발달을 활용하여 개발 프로젝트의 지구화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의 전 지구적 연대를 가능하게 했다. 이 네트워크는 개발 프로젝트가 자유화와 효율성이라는 가치 추구에 의해 여성의 필수적인 재생산 역할을 배제하고 등한시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 제기했다.


여성과 환경운동의 교차점 및 권리 문제

지역 중심의 풀뿌리 운동, 특히 환경운동에서는 여성들의 참여가 지배적이다. 이는 지역의 생태계 문제가 먹을거리와 직결되고, 먹을거리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던 여성에게 환경 보존 문제가 가장 중요한 사안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여성들의 환경 보호 운동 참여는 생존과 직결된 비생산 노동의 일환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들은 천연자원에 대한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 활동에서부터 시작해 스스로 조직체를 결성하여 천연자원에 대한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등의 다양한 실천을 펼쳐왔다.

그러나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은 계속되는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 '빈곤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주장은 종종 여성의 강제 불임을 시도하는 등 여성의 출산을 관리하려는 시도로 이어졌으며, 이는 출산에 대해 여성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여성의 권리 문제와 직결된다.

또한, 남반구 국가 내에서 여성의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지위는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으며, 문화 상대주의와의 갈등 속에서 여성의 권리 (예: 명예살인, 히잡)를 어떻게 보편적으로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도 지속되고 있다.



3.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ST)_구조적 불평등에 맞선 대안적 사회 건설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ovimento dos Trabalhadores Rurais Sem Terra, MST)은 브라질의 고질적인 토지 집중(latifundia)이라는 구조적 불평등에 맞서 1984년에 결성된 남반구의 가장 강력하고 조직적인 사회운동 중 하나이다. 브라질은 세계적으로 토지 소유 편중도가 매우 높은 나라로, 전체 토지 소유자의 약 1%가 전체 농경지의 50% 이상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들 대규모 농장은 상당 부분이 경작되지 않은 채 방치되거나 수출용 단일 작물 재배에만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 속에서 수많은 농촌 노동자와 도시 빈민은 토지를 소유할 기회 자체가 박탈되어 생존권을 위협받아 왔다. MST는 이러한 역사적 불의에 정면으로 맞서며, 토지 소유를 넘어선 새로운 사회경제적 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지구화 시대의 중요한 대안적 실천 모델이다.


MST 투쟁의 핵심 전술은 경작되지 않고 버려진 대규모 토지(라티푼지오)를 점령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령 행위는 단순히 무단 침입을 넘어, 브라질 헌법에 명시된 ‘토지의 사회적 기능’ 조항을 법적 정당성의 근거로 동원하는 정치적 행위이다. 헌법에 따르면 토지는 환경을 보호하고 생산성을 유지하는 등 사회적 기능을 수행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못하는 토지는 국가가 몰수하여 농지 개혁에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MST는 이 조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불모의 토지를 점령하고, 농지 개혁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촉구한다. 점령 초기에는 ‘아캄파멘토스(acampamentos, 임시 주거지)’를 형성하며 조직적인 투쟁을 이어가고, 이후 협상을 통해 토지 소유권을 획득하면 ‘아센타멘토스(assentamentos, 정착촌)’를 형성하여 영구적인 공동체를 건설한다.


이 운동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토지를 재분배하는 경제적 차원을 넘어선 대안적 사회 변혁에 있다. MST 정착촌은 실직 노동자, 무토지 농민, 소규모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협동조합을 조직하여 운영된다. 이 협동조합은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통해 공동체의 모든 사안을 결정하며, 참여적 예산 정책을 도입하여 주민들이 직접 공공 자원의 사용에 관여한다. 특히, 이들은 시장 지향적인 대규모 농기업(agronegócio)의 농업 방식에 맞서 농생태론(agro-ecology) 기반의 지속 가능한 농업을 실천한다. 농생태론은 전통적 영농 지식과 현대 생태학적 원리를 결합하여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고 화학 비료 및 살충제 사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식량 생산의 자급자족과 환경 회복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결론적으로, MST는 시장 논리에 포획된 개발과 토지 사유화에 대항하여 지역 공동체의 자립 능력과 생태 회복 능력을 발전시키는 가장 성공적인 사례이다. 이 운동은 대안적 농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적 전환을 넘어, 농업 체제를 구축하는 사회적 기반과 정치경제적 구조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수적임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MST의 활동은 브라질 사회는 물론 전 세계의 지구화 정치와 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다른 풀뿌리 운동에 깊은 영감을 주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실천적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4. 개발 패러다임의 변천사


그럼 여기서 개발패러다임의 변천사를 살펴보자. 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해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등장 전후로 어떤 문제점들이 도출되었는지를 알아보아야 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오늘 우리가 알아본 운동들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은 단지 전쟁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개발(Development)을 통해 신생 독립국과 저개발국가들의 경제적, 사회적 후진성을 극복하려는 거대한 국제적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다. 초기에는 근대화론과 성장론에 입각하여 선진국의 궤적을 따라 경제 성장과 산업화를 지상 과제로 삼았으나, 곧이어 이러한 서구 중심적 접근이 종속 이론의 비판에 직면하며 빈곤과 불평등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촉발했다. 이러한 개발 프로젝트의 패러다임은 냉전 종식과 함께 더욱 복잡해졌으며,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신자유주의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자유 시장 경제만이 인간 사회의 필연적인 현실이며, 개인의 노력과 성공은 오직 이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서만 정당하게 보상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념이다. 이 사상은 자기 이익에 호소하는 매력적인 힘을 발휘하여, 심지어 원주민, 부족민, 하층 계급민을 포괄하는 빈곤층조차도 자유 시장이 언젠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를 가져와 자신들도 부자가 될 기회를 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불평등의 심화를 용인하게 만드는 기제를 작동시킨다.(Perrons 2005) 이러한 맥락에서 개발은 주로 효율성, 시장 개방, 민영화를 의미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사실 고전적 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정치, 경제, 종교, 사회의 각각의 자유에서 '경제'영역만을 확장하여 무한으로 열어 놓은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정치나 경제 종교는 자유가 아닌 방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지구화 정치(Globalization Politics)의 거대한 흐름과 시장 중심의 발전주의적 사고방식은 필연적으로 환경 파괴, 문화적 동질화, 그리고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대안적 가치 모색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환경주의와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신사회운동이 강력하게 등장했다. 이들 운동은 기존의 계급 갈등 중심의 사회운동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의식과 실천 방식을 제시하며, 지구화가 초래한 위기에 맞서 지역 기반의 생명력과 사회 구조적 전환을 촉구하는 중요한 대안적 도전을 수행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개발 패러다임의 주요 전환점, 특히 세계의 공장, 녹색혁명 등 핵심적인 변화의 흐름을 중심으로 1945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개발 프로젝트가 겪어온 변천사를 조금 더 알아보자.


1940년대 후반 ~ 1960년대: 근대화, 성장론, 그리고 '세계의 공장' 모델의 태동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 개발 프로젝트는 미국의 영향 아래 근대화론(Modernization Theory)이라는 단일한 이념에 기반을 두었다. 이 이론은 저개발국들이 서구 선진국들이 과거에 겪었던 경로를 따라 자본 축적, 기술 도입, 산업화를 이루면 자동적으로 경제 성장을 달성하고 정치적 안정에 이를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개발의 목표는 주로 GNP(국민총생산) 성장률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프로젝트는 주로 대규모 인프라 구축 (댐, 항만, 고속도로 등)과 중화학 공업 등 자본 집약적 산업에 대한 투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개발 원조는 주로 무상 원조 및 차관 형태로 선진국의 잉여 자본과 기술을 이전하는 데 집중되었다. 특히 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은 이러한 글로벌 자본 흐름과 값싼 노동력을 결합하여, 글로벌 공급망의 주요 생산 기지로서 비유적인 의미의 ‘세계의 공장’ 역할을 자처하는 모델을 채택하며 단기간에 높은 경제 성장을 달성하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성장 중심의 개발 모델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라틴 아메리카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등장한 종속 이론(Dependency Theory)은 저개발국(주변부)이 선진국(중심부)과의 불평등한 무역 구조와 자본 흐름 때문에 구조적으로 저개발 상태에 갇혀 있다고 주장했다. 즉, 성장은 있었지만 그 성장의 과실이 중심부로 귀속되거나 주변부 내의 소수 엘리트에게만 집중되어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이 오히려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경제 성장을 넘어 국제적, 국내적 구조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함을 역설하며 다음 단계의 개발 담론에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후반 ~ 1970년대: 녹색혁명, 빈곤 문제의 대두, 그리고 기본 욕구 접근법

1960년대 후반, 세계적인 식량 부족 위협 속에서 농업 부문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이다. 이는 멕시코, 필리핀 등지에서 개발된 고수확 품종(High-Yielding Varieties, HYVs)의 벼와 밀 종자를 개발도상국에 도입하고, 이에 맞는 화학 비료, 농약, 관개 시설을 함께 보급하여 식량 생산성을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혁명은 기아 문제를 완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 자본 집약적인 기술이었기 때문에 화학 비료와 관개 투자가 가능한 대규모 토지 소유자에게 주로 혜택이 집중되었다. 결과적으로 영세 농민들은 소외되고, 계층 간 불평등과 토지 소유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불평등 심화와 성장 모델의 실패에 대한 반성으로, 1970년대에는 개발의 초점을 GDP 성장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삶으로 전환했다. 기본 욕구 충족 접근법(Basic Needs Approach, BNA)은 개발의 목표를 식량, 의류, 주거, 의료, 교육 등 인간의 필수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두었으며, 이를 통해 빈곤층에게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고자 했다.

이 시기부터 개발 프로젝트는 소규모 지역사회 기반 프로젝트와 보건, 교육 등 사회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또한, 이 과정에서 여성이 개발의 수혜자이자 참여자로서 무시되어 왔음이 지적되며 개발 내의 여성(WID, Women in Development) 접근법이 처음으로 도입되어 여성의 역할을 공식적인 개발 틀에 통합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1980년대 ~ 199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적 구조 조정과 지속가능성의 대두

1980년대는 세계 경제의 대전환기였다. 오일 쇼크와 개발도상국의 부채 위기가 심화되자,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은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신자유주의 이념에 기반한 구조 조정 프로그램(Structural Adjustment Programs, SAPs)을 강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개발 원조와 차관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수혜국에 강력한 긴축 재정, 민영화, 규제 완화, 무역 자유화 등의 시장 개혁 조치를 요구했다. 개발 프로젝트는 다시 효율성과 경제적 합리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게 되었으며, 사회 부문 지출은 대폭 삭감되었다.

그러나 구조 조정 정책이 초래한 빈곤층의 사회적 안전망 해체와 자연 자원의 무분별한 착취에 대한 비판이 전 세계적으로 거세지면서, 1990년대에는 개발 담론의 대규모 전환이 일어났다. 1992년 리우 환경 정상 회의를 통해 환경 문제가 전 지구적 의제로 설정되었고,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이 핵심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경제적 효율성, 사회적 형평성, 환경적 지속가능성 세 가지 축을 통합하여,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하는 동시에 미래 세대의 능력을 해치지 않는 발전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와 함께 페미니즘 운동의 영향으로 젠더와 발전(GAD, Gender and Development) 담론이 등장하여, 여성의 불평등이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됨을 지적하고 젠더 주류화를 통해 개발 프로젝트 내에서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하려 했다.


2000년대 이후: 글로벌 목표, 포용적 개발, 그리고 포스트 개발론의 도전

2000년, 국제사회는 개발을 단순히 원조 대상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지구적 공동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밀레니엄 개발 목표(MDGs)를 설정했다. MDGs는 빈곤 퇴치, 교육, 보건 등 8가지의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개발 원조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제 사회의 관심을 결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MDGs의 성과와 한계를 바탕으로, 2015년에는 지속가능 개발 목표(SDGs)가 채택되면서 개발 패러다임은 한 단계 더 진화했다. SDGs는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를 통해 빈곤, 불평등, 기후 변화, 평화, 혁신 등 사회, 경제, 환경의 다차원적인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룬다. 특히 SDGs는 모든 국가(선진국 포함)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목표이며, 포용성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조함으로써 개발을 더욱 포괄적인 개념으로 확장했다. 현재의 개발 프로젝트는 기후 회복력 강화, 불평등 해소, 혁신 기술 도입 등에 초점을 맞춘 효과적인 개발 협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편, 이러한 주류 개발 담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인 탈발전론(Post-development) 역시 중요한 도전으로 작용하고 있다. 탈발전론은 서구 중심의 획일적인 '개발(Development)' 개념 자체의 폭력성을 비판하며, 지역 사회가 스스로 결정하고 원하는 다양한 대안적 발전 형태와 풀뿌리 사회운동의 내재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ST)과 같은 지역 기반의 실천이 글로벌 개발 담론에 미치는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천사는 개발 프로젝트가 경제 중심에서 인간의 역량 강화, 그리고 궁극적으로 지구적 지속가능성과 포용성 중심으로 끊임없이 진화해 왔음을 보여준다.



0. 나오기_지구화 정치에 대한 대안적 실천의 확장과 잠재성


요약해 보자면, 환경의 변화에 대응한 남반구의 근본적인 환경 저항 운동과 식량주권 운동은 시장의 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대안적 생산 체제 구축을 통해 지역 사회의 자립을 모색했다는 부분을 알 수 있다. 동시에, 페미니즘의 도전은 젠더 평등을 개발의 핵심 가치로 끌어올리고 여성주의 경제학을 통해 비시장적 활동의 가치를 재조명하며 사회 구조적인 전환을 촉구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멕시코 사파티스타 봉기와 같은 세계주의적 지역주의 운동과 결합하여, 지역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지구적 맥락 속에서 민주주의의 세계화를 주창하는 새로운 정치적 실천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한계는 많지만 계속되어야 한다

환경주의, 페미니즘, 소비자 보호 운동 등 지구화 정치에 저항하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운동은 지구화라는 거시적 흐름 자체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에는 쉽지 않다는 한계를 인정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대안적 실천과 네트워크들은 지구화 정치의 정당성에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새로운 정치적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풀뿌리 차원의 개발 활동을 추진하는 NGO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가운데, 이러한 대안적 실천의 경험은 미래의 더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축하는 데 있어 시민사회 조직을 활성화하는 핵심적인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보자면 OECD에서 계속해서 주창하고 있는 '개발효과성' 패러다임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오늘 필립맥마이클의 글을 정리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다양한 대안들을 모색하면서 개발협력 패러다임의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하는 미션을 받은 느낌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tqP38-nq9A

1992년 환경콘서트는 SDG의 한국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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