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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양 Mar 22. 2017

"무의식적 차별을 경계해야 해."

나를 자라게 했던 가르침들 1 - 독일에서의 그래픽 디자인 프로세스

UN 산하의 한 단체가 빈곤 퇴치를 위한 기금 조성 서비스를 만들었다. 아주 간단한 인터렉션만으로 기부를 할 수 있는 어플인데, 꽤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이었다.


나는 머지않은 국제 행사에서 이 서비스를 소개할 때 사용될 포스터를 만드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래픽 디자인, 그것도 포스터 디자인은 내가 거의 해보지 않았던 일이었던데다가 나는 영어 서체를 사용해 디자인하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한국인 디자이너였다. 그래서 처음엔 무척 겁을 먹고 시안을 보여주는 것조차 주저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언제나처럼 상냥한 디자이너들과 완벽한 기획자들을 만나, 무척 즐겁게 임했던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에서 얻은 가장 귀중한 가르침은 결이 조금 다른 것이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함께 일하는 기획자들은 정말 상냥했고, 나의 의견을 무엇보다 중시해 주었다.

비록 제약이 많은 포스터였지만 우리는 50센트만 기부하면 한 어린이가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포스터에 빈 밥그릇, 50센트 동전, 그리고 꽉 찬 밥그릇을 그려넣어 아이콘으로 삼기로 했다.



중요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시안을 한번 만들 때마다 색, 글꼴, 레이아웃 등 모든 디자인 요소 하나 하나를 모든 기획자들과 선임 디자이너들이 전지 크기로 출력해서 벽에 걸어놓고 함께 컨펌했다.(사실 이렇게나 거창하게 매번 컨펌하니 시안 보여주기를 두려워했던게 마냥 이상할 일은 아니다) 그 결과 다른 요소들은 만족스러운데, 아이콘의 의미 전달이 불분명하고 너무 딱딱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50센트 동전은 사용하는 국가마다도 그 모양이 제각각인데 이 서비스는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것이므로 어느 한 국가의 동전으로 표현하기에는 애매하다는 의견이었다. 또, 환율이나 화폐 단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좋은 일을 하는 어플리케이션인데 너무 '기부 액수'에만 치중한듯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다. '기아 문제 해결'이 목표인 서비스이니만큼 어린이 캐릭터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결론이 났다. 그래서 나는 '결식 아동'를 그렸다.

그리던 중에 모니터를 찍은 것

결식 아동이 빈 밥그릇을 보며 슬퍼하다가, 서비스를 통해 밥그릇이 채워지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는 컨셉이었고, 라인드로잉 스케치 단계에서는 디자이너들이 내 모니터를 보며 '귀엽다!' 하고 미소지으며 지나가곤 했다. 나는 일러스트 그리기에는 나름 자신이 있고, 그래서 그림 그 자체에 대한 이유로 혼날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한 채, 새로운 아이콘을 반영한 다음 시안을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안을 보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굳었다.


왜였는지 눈치챘다면 읽고 있는 당신은 시안을 펼쳐보이던 순간의 다양보다 훨씬 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일 것... 나는 영문을 모르고 당황해서 "프린터 상태가 안좋은지 원래 디자인이랑 색이 많이 달라졌어." 하고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한 기획자가 말했다. 

다양, 다시 디자인해봤으면 좋겠는데. 이건... 인종차별이야.


뭐라고? 금발이며 백인인 독일 시민이, 까만 눈 까만 머리 노란 얼굴의 외국인 노동자가 인종차별을 한다고 말하다니, 내가 무슨 인종차별을 해? 당해도 내가 당하는데. 처음에는 잘못 알아들은줄 알았다. 하지만 곧이어 다른 디자이너가 말했다.

(그건 바로 내가 좋아하는 친구인 바네사였다! 바네사에 대한 다른 이야기는 (https://brunch.co.kr/@versatiledayang/11))


"다양, 기아 문제는 흑인종만의 것이 아니잖아. 넌 지금 특정 인종이나 민족, 국가가 아닌, 모든 결식아동을 돕는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는 포스터를 만들고 있어. 그런데 다양이 그린 아이는 특정 인종을 연상하게 하거든. 이건 혹시라도 '이 피부색'과 '결식아동', '빈곤' 등의 이미지와 연관짓는 고정관념의 산물일 수가 있어. 특정 피부색이 아닌, 그저 이 아이가 '사람'임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중립적인 색으로 바꿔 보자. 어떤 색으로 피부를 칠하면 중립적으로 '사람'을 표현하기에 좋을까?"


그리고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Emoji는, 결코 저런 색의 사람 피부는 없는, 정직한 '노랑색'으로 사람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물론 Emoji를 통해서도 다양한 피부색을 표현할 수 있다. 원하는 Emoji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꾹 누르면, 

이렇게 다양한 피부색이 나타난다. 일정한 톤으로 밝은 색의 피부부터 어두운 색까지 그려주지만, Default, 기본 설정은 언제나 저 노란색이다. 설혹 황달에 걸린다 해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밝고 환하고 선명한, 피부색이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할 만큼의 노란색. 


생각해보면 나는 거의 모든 구성원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얼굴색을 한 사회에서 평생을 살았다. 아주 미세하게 다른 톤 차이를 애써 구분해서 21호, 23호로 나누는 파운데이션을 쓰고 산 사람. 그렇지만 외국의 경우, 다인종 다민족이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피부색이라던가 인종차별에 대한 고민을 아무래도 나보다는 더 많이 할 수 있었겠지. 특히 독일의 경우에는 나치라는 흑역사가 있는 만큼, 초등학교에서부터 '차별'에 대해 엄중히 가르친다고 한다. 


내가 비교적 뛰어난 바보라거나 유달리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평균보다 높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인식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당사자성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다지도 무감각했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것은 결코 타고나는 자질이 아니며, 계속해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다양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얻을 수 있는 태도라는 것을, 누구라도 무엇에라도 몰지각 몰상식 무감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컨대,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페미니즘 이슈도 마찬가지다. 내가 인종차별 혹은 피부색 표현 문제에 상대적으로 둔감했듯이,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거나 또는 당사자성이 없었던 사람의 경우 비교적 무디게, 혹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반응할 수 있다. 물론 더 많이 고찰해보고 알게 된 입장으로서는 답답할 노릇이지만 이런 사람들을 몰아세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본 적이 없음'은 아쉬울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마구 몰아세울만큼의 중한 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각적으로 사고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만약 내가 그린 아이를 보고

"세상에 다양, 너 인종차별 주의자구나! 극혐! 미개해! 너라고 차별 안 당할 것 같아?"

했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어쩌면 수치심이 반발심이 되어

"그래! 나 인종차별 주의자다 어쩔래!" 하고 바락바락 대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나의 동료들, 나보다 선배된 디자이너들이 조심스럽게 그러나 명확하게 문제를 지적해주고 개선 방향까지 알려주었을 때 나는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했던 나의 문제를 알게 되고 즉시 수정할 수 있었다. 이처럼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믿음으로 상냥하게 가르쳐주는 것이 전체적으로는,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더 좋은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가르쳐준다고 경청할 마음과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일 때나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새로 그린 아이가 담긴 나의 포스터는, 클라이언트 회사에서 비단 그 포스터에서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여러 매체에서 계속 활용하고 싶다고 특별히 부탁해 온 소중한 작업이 되었다. 디자인을 하면서 내가 한걸음 더 성장했다고 느꼈던 행복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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