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나초 1702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by 리처드 탈러
선택은 항상 어렵다.
아주 사소한 문제를 놓고도 '나'라는 존재를 돌아보게 한다. 선택의 영역에 특히 숫자가 들어오면 때론 비참하기까지 한다. 머리를 이성적으로 굴리면 A를 선택하는 것이 맞는데, 이 놈의 마음은 자꾸 B를 향할 때 그 자괴감이란.. 나는 지금껏 얼마나 많은 멍청한 선택을 해왔던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이 그 정도로 실패한 인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서 비교적 괜찮은 선택지를 골라 왔던 것 같다. 문제는 이마저도 명확히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선택을 했을 때 벌어질 일을 모르는 상태에서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멍청한 선택은 있다.
'이콘'의 관점에서 최상의 선택은 정해져 있고, 그에 맞지 않는 선택은 멍청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책에 나오는 대다수의 사례들은 산술적 합리성과 인간 심리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된다. 눈보라가 몰아친 다음 날 아침, 철물점에서 눈 치우는 삽의 가격을 어떻게 책정할 것인가? 이 문제에서 소비자들과 MBA 학생들의 사고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점. 결론은 같지만 어떻게 프레이밍하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는 점. 그리픽 스키장에서 벌인 '장난질'에 소비자들이 움직였던 사례 등등.. '이콘'이 되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장난질'을 철저히 꿰뚫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도 있다. 친한 동기 중 한 명은 돈 문제와 관련해서 싫은 소리를 잘 못한다. 이사를 해야 되는데 건물주 할머니가 어처구니 없는 짓을 많이 하셨다.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라고 누차 얘기했지만 동기는 그렇게 하는 시늉만 하고 모질지 못했다. 할머니와의 정이 너무나 깊단다. 결국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봤다. '이콘'의 관점에서 이 동기는 멍청한 정도도 아니고 그냥 인간 이하의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동기 입장에서는 좀 다를 것 같다. 싫은 소리를 하고 감정 낭비를 해야 하는 심리적 불안감과 스트레스.. 어쩌면 동기에게는 그것이 더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었을 것이다. 심리적인 것에 속지 말자고? 좀 속으면 어떤가? 그로 인해 나의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면 단순히 산술적 계산에 의거해 멍청한 선택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멍청한 선택은 없기도 하다.
개별 사례로 들어가면 멍청한 선택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흡연자는 흡연할 때마다 멍청한 선택을 하는 것일까?
연애할 때 선택의 통제권을 과연 내가 갖고 있기나 한가?
나는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
퇴사준비생의 선택에는 매우 복잡한 요인들이 작용한다. 현 직장의 연봉 및 부가가치와 이직할 곳을 비교하는 것만으로는 답을 찾기 어렵다. 그나마 이직할 곳이 정해졌다면 다행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판단의 준거를 찾는 것조차 매우 어렵다.
책을 보면 퇴사준비생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도 나온다. 미래에 대한 할인이 시간에 따라 달라지면서 이직의 만족도 역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이직하기 전에 그려본 3년 뒤의 목표가 막상 닥쳐보니 너무나 멀리 있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책에 나온 <뉴요커>의 표지 '9번가에서 바라본 세상'처럼 말이다. 이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수반하는 선택의 본질적 어려움과 연결된다. 아니 선택 그 자체도 어려운데 어떻게 선택의 질을 평가하란 말인가..
내가 존경하는 친구의 생각을 잠시 빌려본다. 똑똑한 선택, 멍청한 선택에 대한 정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논할 때와 비슷한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불행하게 하는 조건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 따라서 불행의 조건을 배제함으로써 행복에 조금 더 가닿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똑똑한 선택이 무엇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더라도, 멍청한 선택의 조건은 나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멍청한 선택의 조건은 배제하고 선택을 내린다면 적어도 후회하지 않는 선택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게 멍청한 선택의 조건은 비교적 명확하다.
선택의 중심에 '나'라는 존재가 없는 것.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더라도 스스로가 납득하지 못할 것이고 평생 마음의 짐으로 남을 것 같다. 내가 선택하고, 그 결과에 내가 책임지는 삶. '이콘'이 아닌 내가 선택하고 살아갈 방식이다.
+ 이 책은 개인 차원에서 보다 조직 및 기업 차원에서 훨씬 효용성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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