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산책, 미니신도시의 산책길을 따라 걷다
감성나들이라고 크게 붙여놓고서는 첫번째로 동네 산책을 하고 온 배포는 최근 호주 여행을 준비하며 생각난 생애 첫 일본 여행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때는 스무살 초반 친구가 머무는 오사카에 일정의 반은 친구와 함께, 반은 혼자 하는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름 어학원에서 계획된 어학연수를 제외하고는 정말 처음으로 스스로 예약과 세세한 여행 계획까지 짠 본인이 생각하기에 제대로 된 첫 해외여행이었어요. 원래 처음이라는 것은 별 것 아니어도 의미가 크게 남기 마련이죠. 지금으로 따지면 짧은 혼영이 곁들인 여행이었네요.
그때 저는 큰 여행 윤곽을 잡은 후 남는 자투리 시간에 숙소로 잡은 동네나 메인 여행코스 주변의 작은 신사 혹은 공원에 들릅니다. 그럴 때마다 감탄을 하는 것이지요. 일본의 속성이 그렇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수많은 소규모 신사와 공원이 가득했고 매번 저는 그 섬세함과 작은 여행의 묘미에 감동을 하곤 했습니다. 때때로 조금은 뻔하고 큰 여행지에서의 거대한 낯섬보다 한적한 곳에서의 짧은 시간이 여행을 더욱 맛깔나게 해주지요.
저는 별 것 아닌 식물에도 하나하나 깊게 살펴보고, 우리나라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까마귀의 거대함에 놀라며 작은 것들이지만 미세하게 다른 점들에 웃고 즐거워했었더랬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제가 항상 마음에 품은 문장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머나먼 곳에서 삶이라는 여행을 왔다는 사실을요.
매일의 일상을 함께하기에 소중하게 대해주지 못했던 집 마당과 주변의 공간들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오지 못할 숨은 공간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매해 그렇게 해외여행을 고민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조차 잘 알지 못하고 전부 여행을 해본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아름답고 좋은 곳이 많을 텐데도 말이에요.
최근에 저는 유홍준 교수님의 아는만큼 보인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문화역사가 살아 숨쉬는 지역이 이렇게 많은데 제가 제대로 가본 곳이 정말 한군데도 없더군요. 아무리 관심이 없었다지만 너무하다 싶기도 해서 아마 기회가 된다면 하나씩 가보고자 합니다. 그 이전에 저희 동네 산책이나 가볍게 먼저 하고요.
저희 아파트는 할미산 자락에 있습니다. 할미산이라니 정말 저답고 정다워요. 집들이에 온 친구들이 웃음짓는 것을 보아하면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 큰 산자락은 아니지만 주변에 개구리나 너구리가 출몰하는 것을 보니 품을 것은 다 품고 있나봐요. 할미산 자락에는 부천대 소사캠퍼스도 있고 저희 아파트도 있고 오래된 옛 집들과 크고 작은 텃밭들도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그런 저희 아파트를 주욱 따라 내려가면 산들역사문화공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저는 이사전부터 이곳을 자주 산책해야지 했지만 주로 아파트 단지 내에서만 돌아다니고 정작 이곳은 이름만 아는 동네 공원이 되었네요. 아주 먼 친척처럼요.
오늘은 그곳을 다시 제대로 돌아보기로 합니다. 공원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이곳은 범박산숲길입니다. 6번길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니 여러 길들이 이어져 있나봐요. 마치 둘레길처럼요. 드라이브를 하면 때때로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며 표지판을 보며 스쳐지나가는 길들이 있었는데 가까이에 숲 둘레길이 있었습니다. 조금 웃기다고 생각하면 전 참 실 없는 사람이겠죠. 숲길을 따라 가보니 숲길 속에는 거름골이라는 곳도 있어요. 공원 내 나뭇가지나 잡초, 낙엽 등 유기물을 퇴비로 만드는 고랑이라고 하네요. 시작부터 새로운 정보들이 재미있습니다. 한번도 길 자체를 주의깊게 살피며 돌아보지 않았거든요.
숲길을 조금 걸어가면 바로 그곳이 산들역사문화공원입니다. 놀랍게도 이곳에는 묘가 있어요. 많은 세대의 신축아파트와 스타필드 바로 뒷편에 이런 곳이 있다니,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고 의미있는 공간이에요. 묘와 묘비와 묘표, 신도비 등이 있습니다. 구색을 꽤 갖추고 있는 것을 보아 작지만 보존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여요. 이곳은 산들초등학교 길목이기도 한데 이 길을 등하교 때 즐긴다면 크고나서도 참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곳곳에 이곳이 얼마나 신경써서 만든 자리인지에 관한 팻말들이 있어요. 잘 보지 못해왔지만 나름의 구성을 해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네요. 그리고 저는 다시 길을, 아파트 단지 사이를 걷습니다. 걷다보니 역곡천으로 들어가기 전 부천 옥길 함박공원도 슬쩍 봅니다. 공사중인데 10월 중순에 완료가 되면 한번 다시 와봐야겠어요. 감찰나무 숲이 가득하고 빛무리를 볼 수 있는 감성도시 부천 옥길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감성나들이에 적합한 공원임에 틀림이 없네요... 모르고 지나쳤으면 평생 아쉬울 뻔했습니다. 가까이에 이렇게 좋고 가벼운 여행지들이 있음을 우리는 잊고 살지요.
저는 마지막 코스라 여기는 옥길의 끝자락 역곡천으로 들어갑니다. 작은 천이지만 버들공원, 용못내공원과 함께 있으니 작지 않습니다. 물도 맑고 이름이 웅장한 것을 보아하니 설화가 있을 것만 같은데 그것은 누군가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힘겹게 걸어와서 작은 정자에 털썩 들어누워 버들나무가 살랑거리는 것을 구경하다보니 오늘의 작고 씩씩한 산책은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짧지만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와 함께 하는 이 조그마한 감성 나들이 힐링이 되네요. 글을 쓰겠다고 하다보니 속으로 계속 스스로 말도 걸고 더 자세히 보려고 하고 사진도 깔짝깔짝 찍습니다. 다만 체력은 조금 키워서 돌아다녀야겠습니다. 그리고 양산은 필수구요.
그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려고 무언가를 하려고 했을 뿐인데 분명 그건 저에게 좋은 활동이 됩니다. 오랜만에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었네요. 틈틈히 감성나들이 이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들이와 글쓰기, 그림그리기와 함께라면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어도 조금은 마음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너무 스스로를 옥죄지 않으려고 하지만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사람마음이겠지요.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축처지는 것이 한국인만의 습성인지 아니면 인간의 고질적인 본성인 것인지, 학습된 것인지 참 알 수 없지만 저의 모토인 다정한 일상지키기를 위해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설사 스스로일지라도요. 다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인에게조차 눈치 보는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