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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상 Apr 21. 2018

고용센터에 간 예술학도

 전화가 왔다. 고용센터라고 했다. 취업성공패키지를 신청하겠냐고 했다. 그것을 신청하면 취업까지 얼마씩, 취업 교육을 받을시 얼마씩, 고용이 체결된 후 청년내일체움공제를 신청하면 나와 기업과 나라에서 조금씩 보태 2년 후면 얼마씩 받을 수 있다고 그랬다! 얼마씩… 당장 대학원까지 낸 등록금의 십분의 일도 벌지 못한 내게 얼마씩이라는 말은 굉장히 획기적으로 들렸다. 그래, 얼마씩을 받자, 다만 얼마만이라도… 그것으로 가족 구성원 안에서의 나의 죄책감도 일부 덜 수 있고, 취업이 이루어지기까지 준비할 수 있는 비용하며 시간도 얼마간 벌 수 있을 것이다! “아니요. 아니, 네! 신청할게요. 어떤 게 필요하죠?” 고용센터 담당자는 최종학교증명서와 주민등록증을 가져오라고 했다. 며칠 후, 고용센터를 방문했다. 담당자는 짐짓 웃는 얼굴로 나를 쳐다본 후 말을 건넸다. “이 곳은 위탁업체예요. 저쪽을 보시면 아시다시피 여기저기에서 수상을 많이 했어요. 믿을 만하다는 소리죠.”, “네에~”나는 수긍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상담을 한 후 신청서를 작성하고 대학원 수료증과 주민등록증을 보여주었다. 다시 담당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얼마간의 기간 후에 결과가 나올 거예요. 1유형은 얼마간 지원받을 수 있고, 2유형은 각각 얼마 정도 지원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숫자들이란 구미가 당기면서도 왠지 머리 아픈 것이었다.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어떤 경우 받을 수 있는 거죠?” 긴 말을 깨고 내가 묻자 담당자는 말했다. “정규직일 경우에만요.”, “계약직이었다 정규직이 된 경우는요?", “한 회사에서 계약직이었다 정규직이 된다면 해당되지 않아요.” 긍정적인 얼마들 사이로 첫 부정적인 답변이 흘러나왔다. 나는 다시 침묵을 지켰다. “이제 신청서가 승인받게 되면 제가 구인 정보를 드릴 거예요.” 이후로도 계속 얼마, 얼마들의 향연이 하염없이 이어진 후 담당자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연극영화과라… 그러면 예체능학과이신 거죠?” 배웅까지 해주는 담당자였다. 그녀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실적일까? 그녀의 환대가 싫진 않다.

 고용센터를 나와 입구에서 다시 한 번 간판을 되돌아본다. 이곳이 내가 당분간 방문하게 될 곳이로구나. 점심시간을 한참 넘긴 시간이지만 끼니를 때우지 못해 샌드위치 가게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얼핏 내가 앉은 자리를 보는데 문득 가방 사이로 삐져나온 내 수료증이 보인다. ‘**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창밖에는 건너편으로 내가 나온 고용센터가 보인다. 바로 앞에는 하하호호 웃고 있는 여대생들이 보인다. 

 내가 원한 미래. 예술가. 내가 처한 현실 고용센터 방문. 그리고 창밖의 길로는 그녀들 사이로 나의 꿈 많던 시절이 보인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고용센터에서 정규직을 바라는 존재. 최저임금도 보장해주지 않는 일자리들을 구인사이트에서 보고 온 직후이다. ‘그래! 청년내일채움공제를 받자! 정규직이 아니면 청년내일채움공제를 받을 수 없으니까.’ 옆으로 여전히 수료증명서가 펄럭인다. 연극영화과 수료증명서가… 여태까지의 내 꿈과 앞으로 맞닥뜨려야 할 내 현실이 퍼덕인다.        

 

“정규직일 경우에만요.”, “계약직이었다 정규직이 된 경우는요?", “한 회사에서 계약직이었다 정규직이 된다면 해당되지 않아요.” 긍정적인 얼마들 사이로 첫 부정적인 답변이 흘러나왔다.

    


  샌드위치의 몽글몽글한 계란이 이에 휘감기며 입속을 가득히 메운다. 콜라를 한 잔 들이켜니 목구멍을 타고 위까지 환해지는 기분이다. 

 방금 전까지 나에게 샌드위치를 만들어준 알바생이 밖으로 나가니 샌드위치를 만드시는 주방 이모로 보이는 분이 뒤를 쫓는다. 마지막 알바날인 듯 몇 마디 말을 전하고 인사를 전하며 알바생은 앞치마를 벗고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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