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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상 Apr 21. 2018

응급실에 간 아빠

  3시간의 긴 강의를 다 듣고 집까지 1시간 30분은 걸릴 거리를 생각하며 녹초가 다 되어 학원문을 나서는 중 휴대폰을 바라보니 부재중 전화가 3통 찍혀있다. 두 통은 엄마, 한 통은 모르는 번호. 우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는다. 다음으로 모르는 번호.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린 후 낯선 듯 제법 익숙한 음성이 들린다. “어, 현상… 삼촌이야.” 묵직하고 낮으며 제법 침울한 목소리였다. 대번에 안 좋은 직감이 오는 그런 목소리였다. “네, 어떤 일로 전화하셨어요?”, “엄마한테 못 들었니?… (콜록 콜록) 삼촌이 이따 전화하마.” 전화를 끊고 이상한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급하게 엄마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거니 엄마가 전화를 받는다. “현상, 난 지금 혼란스러워 죽겠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아빠가 지금 응급실에 와 있어. 일단 급하니 끊어 봐라.”, “거기 어디야? 내가 지금 갈게.” 전화를 끊고 응급실이 있는 병원을 문자로 전해 받은 후 요상한 감정들이 나를 에워쌌다. 누구보다 강하던 아빠. 집 안에서 담배피우는 걸 당연시하며 걱정돼서 몇 마디라도 할라치면 호통치고 화만 내던 아빠. 그렇게 항상 기세등등 했던 아빠가 응급실에 갈 일이란, 도대체 어떤 걸까… 부리나케 달려간 응급실에는 동생과 엄마가 나란히 안절부절 못하며 서 있었다. 그 옆으로는 경호 직원들이 서 있고 아빠는 응급실의 의자 위에 앉아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내가 이제 무일푼이 되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며 뭐라고 뭐라고 계속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꽤 시간이 흐른 후 주사를 맞은 아빠는 잠이 들었고, 동생을 따로 불러 이야기해보니 아빠가 응급실에서 주사를 뜯고 피를 흘리며 뛰쳐나가자 응급실 간호사들과 직원들이 잡으러 가고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연신 눈물을 닦으시며 아빠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엄마 말인즉슨, 최근 들어 갑자기 아빠가 집에 오면 몸을 떨고, 화장실에 자주 가고, 많이 불안해했었는데 오늘은 일도 다 마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뒷목이 땡겨서 터질 것만 같다고 말을 하셨다 한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와 약국으로 갔는데 혹시 뇌 관련 질환일지 모르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응급실에 왔다는 것이다. 아빠는 방금 일이 무색하게 코까지 골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나는 그때 거의 처음으로 아빠의 얼굴을 발을 손을 온 몸을 바라보게 됐었다. 발가락엔 오랜 목수 일로 찌든 까만 때가 끼어 있었고 얼굴의 주름은 더 많아지고 머리숱은 더 적어져 있었다. 배가 많이 나오셔서 살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빠의 몸의 부피는 한없이 줄어 있었다. ‘혹시나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 그렇게 단단하던 아빠가 이제는 그렇지 않게 된 걸까?’ 여전히 곤히 잠든 아빠 등에 간호사는 척수를 뽑아 뇌질환 검사를 하려고 커다란 바늘을 꽂았다. 신기하게도 피 아니면 나올 게 없을 것 같았던 몸에서 희고 맑은 물 같은 것이 뚝뚝 하고 떨어졌다. 그 흰 물체는 투명하고 길쭉한 유리병 같은 것에 담겼다. 한참을 더 있다 결과를 들으니 아빠의 뇌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그랬다. 얼마 후 한의원에 갔더니 아빠의 증상은 남성갱년기우울증과 불안장애가 급격히 같이 온 경우라 했다. 그리고 아빠는 180도 달라져 버렸다. 가족들에게 불호령만 하던 아빠였는데, 가족에게 한 명 한 명 붙잡고 그동안 미안했다 사과를 하는가 하면, 많이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나가면 걱정이 된다며 빨리 돌아오라고 하였다. 걱정이 되어 물이라도 한 잔 떠드릴까요? 하고 말하면 됐다고 하시며 우리 딸 사랑한다셨고, 그 말에 내가 웃으면 “내가 잘 하니 우리 딸 웃는 얼굴도 보는구나.”하고 생전 하지 않는 말까지 하였다. 또 일을 할 때 가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무서웠다고도 하셨다. 엄마를 보고는 “내가 니를 많이 사랑한다. 네가 예쁘고 나보다 똑똑해서 떠날까 봐 많이 무서웠다.”하셨다. 그런 변화가 너무 급작스러워 무서울 정도였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제법 쾌차하여서 걱정의 빈도가 많이 줄었는데, 신기하게도 빨래도 개키고 설거지도 하고, 밥도 짓는 모습이었다. 커다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 안에는 굉장히 작고 두려움 많은 영혼이 있었다는 걸 난생 처음 알게 되었다. 그간 사회적인 압력과 살아남아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가족에게까지 이어져 심하게 호령하던 것을 이제야 깨달으시고, 갱년기와 더불어 솔직한 모습이 되셨구나. 또 많이 나약해지셨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삶이라는 동그란 원판이 있다면 그 판이 반 바퀴 돌아간 것 같았다. 내가 어른이 되고 부모님이 아이가 되어가는구나. 세월이 흐르고 있구나. 이제 내가 그들을 지켜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구나.     

 그때를 잊을 수 없다. 병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아빠가 갑자기 사라지셨다. 엄마랑 나와 동생이 한없이 걱정을 하는데 아빠의 전화기는 한동안 꺼져 있었다. 한참 후에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들은 이야기로 아빠가 갑자기 할머니 댁에 가셨다고 그랬다. 생전 그런 적 없는 양반이 혼자서 할머니댁을 가다니 별 일이다 싶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아빠는 한동안 들떠 있는가 싶더니 잠시 후, 아이처럼 엉엉 우셨다. 내가 본 아빠의 첫 눈물이었다.     


“아버지랑 엄마가 너무 불쌍해.”    


엄마도 동생도 나도 놀라서 그 곁을 묵묵히 지키며 바라볼 뿐이었다.


세월이 가는구나. 놀랍게도 시간이 흐르는구나. 이제는 내가 부모님을 지킬 나이가 되었구나…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버지, 어머니도, 나도, 동생도 어렵다면 누가 누구를 지켜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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