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상 Apr 21. 2018

친구의 눈물

 정신적 지주로 생각할 만큼 귀중히 여기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영향을 받아 나도 대학원까지 갔는지도 모른다. 공부에 누구보다 열성적이고 어렸을 때부터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아 봉사활동을 참 많이도 다니던 친구. 음식가게에 들어가면 직원의 손길이 있을 때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성당에 다녀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왔을 당시 방문을 했는데, 그 앞에 서서 불신지옥을 외치던 이들에게 고결하게 웃으며 성호를 긋던 친구. 한때 한비야를 꿈꿔 성을 따 ‘정비야’로 불리웠던 친구. 그 친구의 인격적인 수준이나 삶의 가치관적인 측면이나 지속적으로 공부하며 나아가는 자세는 내게 항상 큰 영감과 힘을 주었고 나는 친구의 따스한 마음씨가 참 멋져보였다. 그런 친구가 포함된 내 모습 그대로 살자는 마음을 담아 지은 ‘날 그대로’모임에서 작년 여름 즈음 서울 근교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망원동’이라는 요즘 뜨는 동네였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문제도 있는 곳이었지만 성인이 된 우리는 모두 바빠 서울 근교인 그곳을 여행지로 삼을 수밖엔 없었다. 

 형형색색의 소파며 커튼에 침대에 빈티지한 소품이 있는 거실과 작은 방까지! 완벽한 에어비엔비에서 묵던 우리들은 들뜬 마음에 사진을 찍고 요리를 해서 나누어 먹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잠이 들기 전 서로의 일상 얘기를 나누던 와중에 난데없이 친구가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도 서럽고 애잔한 소리로 친구는 소리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와 친구들은 적잖이 당황한 것도 사실이었다. 모처럼의 여행이고, 낮부터 안색이 좋지 않던 친구가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나 감정에는 종일 신경 쓰지 않는 듯 반응하던 친구가 그 순간 조금은 얄밉기도 했다. 


친구는 말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한참을 꺼이꺼이 울던 친구가 울음을 가라앉히고 한 말들에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실려 있었다. 어려운 형편에 대학원까지 조교 일 등을 하며 어렵게 어렵게 졸업을 했건만 막상 주어진 현실은 계약직일 뿐이고, 앞으로 결혼도 육아도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막막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나는 바보였나 봐. 대학원에 올 게 아니라 취직을 할 걸 그랬어. 왜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 진작에 알았더라면…” 누구 하나 편하게 일하는 사람이 없던 그 공간에는 공감의 정적이 흘렀다. 어렵게어렵게 온 곳에서 잠시 현실따윈 잊으려 했던 내가 짜증났던 이유는 친구가 현실을 상기시켰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졸업하면 다를 줄 알았어. 적어도 이것보단 나을 줄 알았어…”    


한비야를 꿈꾸던 친구와 예술가를 꿈꾸던 나, 또다른 예술가를 꿈꾸는 친구와 디저트 가게를 차리고 싶은 친구가 나란히 그 방에 있었다. 너무도 아름답게 꾸며진 방에.    


 친구는 지금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구소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사회 선생님을 준비하기로 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친구의 적성이 그 일과 맞기도 하지만, 선생님과 공무원 말고 이 시대에 ‘나의 삶’도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그들이 꿈꾸던 미래가 무색하다. 모두의 꿈이 선생님이나 공무원은 아니었을 텐데… 우리 사회는 선생님이나 공무원이 아니면 안 되도록 강요하는 사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응급실에 간 아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