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면접

- 계약직을 탐하는 계약직경력자와 대학원수료생신입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고서 한동안 오던 보험회사와 인터넷 글을 올리는 일을 하는 헤드헌팅 회사, 문화 사무직을 가장해 콜센터 업무를 하는 회사의 콜도 줄어들 무렵, 나는 모든 사기가 꺾인 채로 침대에 붙어 있는 일이 잦았다. 지원한 회사에선 응답이 없고, 이력서 넣을 곳을 계속 찾고 있지만 연봉은 하나같이 회사 내규에 따름인 현실에 답답해져가고 있을 때쯤 서류합격 문자가 왔다. ‘****센터 서류 합격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면접을 원하실 경우 메일을 보내주세요.’ 두말 않고 메일을 넣은 후 다음 날 있을 면접을 준비했다. 회사의 비전, 회사의 방침, 회사의 목표… 면접에 갔더니 내가 첫 번째 순서였다.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면접이 진행되는 형식이었다. 서류에 떨어지는 일도 잦아, 서류에 합격한 것만도 감사해하고 있는데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이번에야 말로’ 1년도 안 되는 계약직 자리에 친구들은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 한다고 말들이 많았지만, 이 자리가 다른 자리에 비해 얼마나 괜찮은지 아는 나는, 이 직무에 가고 싶은 나는 그래, 열심히만 한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관련 직무에 해당하는 경험과 관련해 자신의 강점을 설명해보세요.”, 첫 번째 순서인 나부터 대답을 이어갔다. “저는~ 블라블라.”그리고 대답이 마지막 참가자 순서에 이를 무렵, 그 분은 대답했다. “저는 몇 년 전 이 곳의 해당 직무에서 일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간단명료하고 정확한 답변이었다. ‘이 일을 해봤던 사람만큼 이 일을 바로 잘 아는 사람이 존재할까?’

 합격이 된다면 주기로 했던 전화는 다음날 내내 울리지 않았고, 나는 어디에 나가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쉬지도 못한 채 하루 종일 안절부절 전화가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같은 지역번호만 떠도 가슴이 벌렁벌렁 거릴 지경이었는데 놀랍게도 받아보면 고용센터였다. 궁금한지 엄마의 문자도 와 있었다. 전화를 주기로 했던 오전 시간이 지나고나자 점점 현실인식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 안 되었구나. 그렇구나… 뭐, 될 리가 없지.’ 친구는 나를 위로해주었다. “어차피 인연이 아니었던 거야. 더 좋은 인연이 나타날 거야.” 둘러본 구직사이트에 거기보다 나은 일자리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나는 뜬금없이 빵이 땡겼다. 보슬보슬하고 촉촉한 빵과 달콤한 크림이 입안에 감돌면 내가 위로받는 느낌,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수도 하지 않은 채로 겨울 잠옷바지를 입고 그 위에 엄마의 까만 잠바를 걸친 채로 슬리퍼를 질질 끌고 집 앞 편의점에 갔다. 후레쉬베리 두 개가 든 곽 하나를 천 원 주고 샀다. 아파트 앞 벤치에 잠시 앉아 빵을 맛보는데 하늘이 너무 맑았다. 12월 즈음 몇 달 안에 취직이 되면 그때부터 논문을 쓰고 한 번쯤 여행도 떠나야지 했는데 벌써 봄이 된 것이다. 몸은 편한데, 입은 달콤한데, 마음은 참 쓰다. 후레쉬베리의 달콤함도 내 마음을 메우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그분을 탓할 수도 없다. 계약직, 같은 업무를 또다시 지원하는 그 사람도 얼마나 간절할까? 하지만 나도… 나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잠시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업에 매진하며 이 날 이때까지 살아왔는데… 29살이 된 여자수료생신입은 어디서 시작을 할 수 있는 걸까? 정말로 죽어라 노력했는데, 저 사람도 노력을 했고 그래서 어쩔 도리가 없다.     

똑같은 직무 계약직에 몇 년 후 다시 지원한 구직자와, 29살로 수료생이 되어 신입이 된 나 중 그 누구도 잘못한 이는 없었다.     

 그런데 동시에 입장을 하고 나니 나 아니면 너라서, 나온 그 사람을 좋아할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는 텅텅 비어있었지만  그 사람은 계단을 타고 먼저 내려가 버리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곳을 내려왔다. 공간은 있어도 탈 사람은 한 명밖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