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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희 Aug 27. 2016

네, 8월 26일입니다



'내 공간'이 사치인 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무얼 하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도시에서, 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고작 침대 한 칸. 지나치게 자유로운 덕에 길을 잃었다. 시간의 홍수 속에 할 줄 아는 건 유영 뿐. 나한텐 물살을 즐길 여유도 뭣도 없어. 바빠지길, 물결이 몸에 익길, 내 한 몸 지탱할만한 작은 노를 가질 수 있길, 하루하루 바라고만 있다. 무지개처럼 잡히지도 않는 바람들을 휘저으면서.


요 전날에는 선명한 무지개를 발견하고 끝을 생각했다. 무지개 끝에 황금 항아리가 묻혀 있을 리 없다는 걸 아는데도 자꾸만 걷고 싶었지. 하늘이 참 예뻤다.


엄마도 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부쩍 한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도망치기만 했는데. 할 수 있는 거라도 하는 게 우리의 최선이라는 소리를 지껄이며 울었다. 37분 42초의 상자 속에서 우리는 여기 저기 많이도 다녔다. 요즘 내 울음은 곧잘 끅끅하는 소리를 낸다. 터뜨리면 민폐니까 담아두는 것이다. 엄마는 자꾸만 뭘 믿으며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올 해 일어난 좋은 일이 너뿐이라는 말이 마음을 짓누른다. 엄마, 나도 비슷해. 라는 말을 삼킨다.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 등 뒤로 묶인 수레의 무게는 늘 엄마 것보다 가볍다. 실은 그거 다 엄마가 끄는 거지? 제일 무거운 짐은 나일거야. 제일 무서운 짐도 나일테지, 쓴 생각을 굴린다.


머리에 쓴 맛이 감긴다. 희망이고 싶다. 희망이고 싶다. 희망이고 싶다. 세 번 외치면 이뤄지는 마법같은 세계가 있다던데. 돌아가는 주문을 까먹었어.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잖아. 여섯 살 쯤엔 알고 있었는데 이젠 첫 글자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희망을 희망하는 사람이 되었다. 장래희망이란 것은 자꾸 때가 타더라고. 락스에 여러번 담궈도 빛바랜 꿈은 악취가 심하다. 신이 되는 방법을 어디서 읽었건 것 같은데, 뭐였더라.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일기는 늘 어렵다. 사실은 뭐 하나 쉬운 게 없어. 상자 같은 침대에 담겨 자꾸만 울음을 먹는다.


먹어야 힘이 난다는 말에 또 희미한 웃음을 흘린다. 먹어야지요. 먹어야지요. 거식증에 걸렸는지 자꾸만 야위는 웃음에 빳빳한 풀을 먹여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오늘도 하루가 갔답니다. (살 날이 하루 줄었다니 잘 되었지요.)
일기 끝. 네,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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