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희 Mar 29. 2021

냉면

새벽 단편: 냉면

냉면


“면 자르면 오래 못 산대”

냉면이 너무 길어서 가위를 대자 네가 말했다.

“그게 뭐야”

킥킥대며 싱거운 소리 하지 말라고 받아치고는 면을 자른다.


자르지 말걸.


그 여름 우리는 냉면을 참 많이도 먹었다.

너무 더워서 집에는 있을 수가 없었고, 오래 돌아다니기엔 금방 허기가 져서.

지갑 사정이 넉넉지 않은 우리에겐 선택권이 많지 않았고, 가난한 취준생과 뮤지션 커플이 긴 여름을 보내기에 냉면은 아주 좋은 메뉴였다. 싸고, 시원하고, 쉽게 입맛을 돋궈주었으니까. 가끔 주머니 사정이 나쁘지 않은 날엔 육쌈 냉면을, 그렇지 않은 날엔 물냉면 하나, 비빔냉면을 하나 시켜 나눠 먹는 것이 우리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그걸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그 여름 너는 공연을 하나 잡았다고 했다.

“이번엔 돈도 좀 쳐주고, 잘하면 다음 공연도 데려가 준대”

애써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신나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한 달이나?”

볼멘소리를 내뱉어도 소용이 없었다. 이미 굳어진 마음을 돌리기에 오래된 여자 친구의 투정은 힘이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뭐, 탐탁지 않지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녀오면 냉면 말고 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스테이크 같은 거.”


칼질하는 흉내까지 내며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저도 머쓱한지 너는 덧붙였다.

“이제 곧 가을이잖아. 언제까지고 냉면만 먹을 수는 없지.”

“그래, 가라 가. 가서 돈 많이 벌어가지고 스테이크도 사주고 파스타도 사주라!”

눈을 흘기며 너의 등을 떠밀었다.

역에서 기차에 올라타면서 너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손을 흔들었다.


가을이 왔다.

너는 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오지 못한 거겠지.

저녁 공연 이후 뒤풀이를 하던  밤, 너는 홀로 숙소로 돌아가다 음주운전을 하던 차에 치였다고 했다. 즉사였다. 나는 그 먼 곳에서 병원도 가보지 못하고 너의 부고를 들었다.

옆에 있어주지도 못하고.


너를 보내고 두 가지 후회가 남았다.

그 날, 등 떠밀지 말걸.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가지 말라고 억지 부리고 화라도 내볼 걸.

냉면 먹을 때 면 자르지 말 걸. 네가 하던 말을 우스갯소리로 넘기지 말 걸.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거 알지만 그래도, 그냥, 그럴 걸.


내년 여름에는 뭘 먹어야 할까.

네가 없는 여름에는.

냉면도 없고, 너도 없는 그 더운 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던 네 목소리가 맴돈다.



내년 기일엔 맛있는 거 사갈게. 냉면 말고, 더 맛있는 거.

작가의 이전글 도망가도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