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다이어리
페이스북에 공유된 한 유튜버의 영상을 보게 됐다. 그녀는 부산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라이브로 방송을 하다가 잠시 화장실을 가는데, 그 사이 음식점 주인과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그녀의 뒷담화를 하고 그 대화가 고스란히 녹화된다. 아주머니들은 유튜버의 짧은 치마 길이와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큰 가슴, 팬티나 입은 거냐고 험담과 욕을 한다. 실시간 달린 시청자들의 댓글로 사실을 알게 된 유튜버는 식당 주인을 불러 왜 자신의 짧은 치마와 복장에 대해 뒷담화를 했는지, 맛있어서 찾아온 손님을 왜 욕하는지 물었다. 식당 주인아주머니는 어쩔 줄을 모른 채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유튜버는 (원래 현금 계산 많이 하는데 오늘은) 카드로 음식값을 내겠다며 계산하고 나온다.
영상을 본 나도 “남이야 짧은 치마를 입던, 팬티를 입던 말던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저렇게 욕을 할까” 생각하며 그녀의 편을 들었다. 게다가 그녀는 기분이 나빠 거의 먹지도 않은 음식값 (10여 만원)도 계산하고 나온다. 댓글을 단 사람들은 그런 집에 무슨 계산까지 하고 나오냐, 천사가 따로 없다, 라며 그녀를 응원하고, 뒷담화의 장본인인 아주머니들을 비난했다. 내가 처음 영상을 봤을 때 25만 정도이던 조회수는 나중에 보니 160만이 넘어 있었다. 그녀의 다른 영상들이 1~2만 회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실로 파격적인 조회수였다. 그런데 내 설명을 듣던 독일 친구가 말했다.
“근데 여기에는 우리가 따로따로 봐야 하는 몇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아. 당연히 남 욕을 한 건 잘못한 거지. 하지만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뒷담화를 한 것에 대해 우리가 이렇게까지 비난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남의 흉을 보며 살지 않나? 그리고 또 하나, 자신들의 이야기가 녹음이 되는 줄 모른 채 말한 내용을 공개하는 건 독일에서는 프라이버시 침해가 될 수 있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영상을 내보낸 것이니까, 오히려 식당이 고소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야.”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하는 독일에서는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대화였다. 독일에서 코비드 19에 걸려도 확진자를 추적하지 않는 이유도 프라이버시 침해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유튜버가 일부러 아주머니들의 말을 녹화하려고 한 건 아니니까, 고의는 아니지.”하고 내가 다시 그녀의 편을 들었다. 그렇다면 의도 없이 녹화된 내용을 당사자 동의 없이 더더욱 내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생각할수록 단순하게 누구의 편을 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식당의 아주머니들은 자신들의 말이 녹화가 되는 줄 알았다면 당연히 뒷담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투버의 말대로, 그녀가 계산을 하고 나간 후에 욕을 해도 했을 것이다. 아주머니들은 그녀가 없는 자리여서, 자신들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뒷담화를 한 것이다. 유투버도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녹화가 되었다면, 아무리 그녀가 화가 나더라도 영상을 공개적으로 내보낼 때에는 좀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녀가 당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방법에는 다른 방법들도 있었을 테니까. 아주머니들의 육성을 그대로 쓰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결국 이 영상으로 이익을 본 사람은 누구인가. 1만 5000개의 댓글을 단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주머니들을 욕했고, 식당의 이름을 노출시켰다. 저런 가게는 망해야 한다, 별점 테러를 하러 가자 등의 댓글도 수두룩했다. 자기들만 있는 줄 알고 나눈 뒷담화로 이 식당은 정말 망할 지경이 되었다. (식당은 후에 사과문을 붙였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당연한 일일까? 내가 악의 없이 한 뒷담화가 나도 모르게 세상에 알려져 내 일을 잃고 사업을 잃는 것이 과연 당해도 싼 일일까? 물론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들으므로 우리는 모두 말조심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면서 뒷담화를 한다. 학교 친구에 대해서, 직장 동료에 대해서, 혹은 잘 알지도 못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그런 우리가 남이 한 뒷담화에 몰려가 비난을 할 때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모두 위선자 일뿐이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베를린 다이어리> 칼럼의 2월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