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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플레이크 May 18. 2021

석회질 많은 독일 수돗물, 정말 몸에 해롭나?

베를린 다이어리

“수돗물에 석회질 많은데 그냥 마셔도 돼?”

남자 친구와 살기 시작했을 무렵, 항상 수돗물을 마시는 그를 보고 물었다.  흔한 바리타 정수기도  쓰지 않았다. 사실 남자 친구뿐만 아니라 베를린에 사는 많은 독일 친구들이 그냥  수돗물을 . (처음에 나는 그들이 맥주보다 비싼 물값을 내기 싫어서라고 생각했다.) 남자 친구는 “괜찮지. 근데 ?”하고 되물었다. 나는 유럽 여행을  때마다 들었던 말을 했다.

“석회질이 몸 안에 쌓여서 안 좋다던데.”

 유럽에  때마다  챙겨 다니던 샴푸와 린스 얘기도 했다. 유럽 호텔에 비치된 샴푸로는 아무리 머리를 감아도 푸석푸석했다. 처음엔 샴푸 탓인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유럽 도시에 많은 석회수 때문이었다. 유럽에  때마다 나는 비싼 에비앙, 다른 생수들을 꼬박꼬박  마셨다.  말을 듣더니 그는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냐며 웃었다.

“석회수 성분의 대부분은 칼슘과 마그네슘이야. 칼슘과 마그네슘은 우리 몸에 필요한 필수 미네랄 성분이고. 석회가 몸에 쌓인다는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는 걸로 밝혀졌다구.”

다시 석회수를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글로 검색할 때는 왜 ‘석회수는 많이 마시면 체내에 쌓이고, 뼈가 굵어져 코끼리 다리가 된다’는 심각한 글만 수두룩한 걸까? 이렇게 시작된 논쟁 덕분에 우리는 각종 사이트를 뒤지고, 베를린과 서울의 수도사업소, 독일의 비영리 소비자 안전 및 시험 기관인 ‘슈티프퉁 바렌테스트(Stiftung Warentest)’ 사이트까지 들어가서 ‘팩트 체크’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 물은 여러 층의   토양을 통과하면서 많은 천연 물질과 미네랄을 흡수한다. 우리가 부르는 미네랄의 성분 대부분이 칼슘과 마그네슘인데,  미네랄 함량이 높을수록 물이 세진다. 거칠고 단단해진다. (영어로도 석회수는 'hard water' 부른다.)  칼슘과 마그네슘 함량에 따라 연수와 중수, 경수 등으로  것이다. 독일에서는 물이 강한 정도(경도) 재는 단위로 ‘°dH’ 쓴다(미국은 ppm, mg/L). 독일 경도 지표에 따르면 8.4-14° dH 중수, 14° dH 넘으면 경수, 8.4°dH이하면 연수로 본다. 독일 내에서도 베를린의 수돗물은 17°dH ‘ 이다. 3-4°dH 초연수에 해당하는 서울의 수돗물에 비하면 10배나 강한 물이다. 하지만 석회수는 경도가 높아도 인체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석회수에 포함된 미네랄의 일부만이 신체에서 실제로 대사 되고 나머지는  밖으로 배설되기 때문이다. 몸의 문제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석회를 흡수해야 하는데, 식수를 통해 이러한 양을 흡수하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독일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석회수 자체보다는 오히려 납으로 만들어진 오래된 하수도관이 더 안 좋을 수 있다. 때문에 베를린 시에서 관리하는 교체와 유지 보수, 점검이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각 가정에서는 수돗물을 셀프 점검할 수 있는 키트들을 시중에서 쉽게 살 수 있다. 또 물의 경도에 대한 정보는 연간 수도요금 고지서와 지역별로 물을 공급하는 업체 사이트에 상시 올라와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건강의 관점에서 보자면 석회수 수돗물은 몸에 전혀 해롭지 않다. 해롭다면 기계에 해롭다. 경수는 60도 이상의 온도에서 석회질이 하얗게 침전되어 세탁기나 커피머신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 또 물을 쓰고 난 뒤 욕실 주변이나 싱크대에도 하얗게 침전물이 생기기 때문에 보기에 거슬린다. 독일에 석회를 없애는 특정 세제가 발달한 이유다. 독일 사람들은 세탁기에도, 식기 세척기에도 일반 세제와 함께 이 석회를 없애는 세제를 넣는다.

이런 눈에 잘 띄는 하얀 침전물 때문에 우리는 건강에도 안 좋을 거라고 잘못 믿게 되었다. 지금은 그 믿음이 인터넷에 너무 만연해 있어서 진짜 ‘사실’을 찾을수록 나 스스로도 놀라웠다. 수돗물에는 석회수가 있다 하니 매번 생수를 사 먹었는데, 알고 보니 유명 생수 브랜드 중에는 석회수(=미네랄)가 수돗물보다 더 많이 들어있는 제품도 많았다(특히 에비앙!). 또 사람들은 잘못된 인식 때문에 집에서는 칼슘과 마그네슘을 없앤 정수된 물을 먹고, 마그네슘 영양제를 따로 사 먹는다. 이게 무슨 ‘웃픈’ 일인가?

나는 베를린에서 그냥 수돗물을 먹기 시작했다. 물만 먹어도 보충되는 칼슘과 마그네슘을 생각하면서. 남자 친구도 차를 마실 때만 바리타에 정수시킨 물을 쓴다. 석회수 특유의 찝찔한(?) 맛이 물을 끓여도 차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라는데, 솔직히 나는 거의 느끼지 못한다.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눈치채지 못할 듯하다.

수돗물을 먹든, 정수된 물을 먹든 그건 그냥 기호의 차이일 뿐이지, 잘못된 정보로 인한 불안의 대상이 될 필요는 없어야겠다.  

식기세척기에 쓰는 세제. 촉(chalk) 리무버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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