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를린플레이크 Nov 26. 2020

이 시대의 여행법

불안하고 편안한. 

지난 여름, 5주 반을 서울에 있다 왔다올해 2월에 가려던 것을 못 가고 미루고 미루다 다녀왔다마일리지로 가려던 걸 무척 싼 티켓이 있어 그냥 샀다코로나 시대에 비행기 값이 몇 배는 더 비싸다는 말이 돌았지만실제론 싼 티켓도 많았다내가 산 항공 티켓은 560유로였다. (보통 때라면 800유로 아래으로는 구경도 못할 가격이다.베를린에서 도하도하에서 서울로 오는 여정은

미안한 말이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편했다


일단 공항에 사람이 없어 기다리는 줄이 없었다. 비행기 안에도 사람이 없었다한 줄에 한 명씩 앉았다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선 누워서 왔다기내식은 금방 나왔고기내 화장실 앞에도 줄 선 사람이 없었다입국심사대에도출국심사대에도 사람이 없으니 무거운 짐을 들고 오래 서있지 않아도 됐다모두가 여행하지 못하는 시대에 여행은아이러니하게도 쉽고 편했다

 

바뀐 점이라면 비행 내내 마스크를 쓴다는 점항공사에선 투명한 페이스 커버까지 나눠줬다마스크를 쓰고 그 위에 또 투명한 플라스틱 커버를 머리에 둘렀다장시간 앉아있는 비행기 안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소독을 철저히 하는 공항이나 비행기 내에서 감염률이 오히려 낫다는 사실에 애써 위안을 삼았다서울에서는 2주 격리를 했다그게 몇 배는 더 힘들었다


서울에서 일정을 마치고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날

비행기 안에서 의료진들이 입는 방호복 같은 옷을 입은 승객을 봤다그녀는 발 끝에서 머리 끝까지 모두 방호복으로 덮고 자리에 앉았다화장실은 어떻게 갈까, 불편해 보였지만그녀는 한번도 벗지 않았다두려움이 새하얀 방호복처럼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았다그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누가 상쇄시킬 수 있을까. 이 시대에 과연 누가 안심시킬 수 있겠나... 



코로나19 가 터진 이후의 여행은 확실히 낯선 것이었다공항 카운터는 모두 비어있고경유지에서도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었다세기말 시대에 텅 빈 거리를 거대한 스크린이 점령하고 돌아가는 것처럼도하의 공항에서도 거대한 영상만 공허하게 돌아갔다. 2020년의 여행은 불안하고 편안한 것이 공존하는 이상한 여행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이게 베를린인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