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고 편안한.
지난 여름, 5주 반을 서울에 있다 왔다. 올해 2월에 가려던 것을 못 가고 미루고 미루다 다녀왔다. 마일리지로 가려던 걸 무척 싼 티켓이 있어 그냥 샀다. 코로나 시대에 비행기 값이 몇 배는 더 비싸다는 말이 돌았지만, 실제론 싼 티켓도 많았다. 내가 산 항공 티켓은 560유로였다. (보통 때라면 800유로 아래으로는 구경도 못할 가격이다.) 베를린에서 도하, 도하에서 서울로 오는 여정은…
미안한 말이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편했다.
일단 공항에 사람이 없어 기다리는 줄이 없었다. 비행기 안에도 사람이 없었다. 한 줄에 한 명씩 앉았다.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선 누워서 왔다. 기내식은 금방 나왔고, 기내 화장실 앞에도 줄 선 사람이 없었다. 입국심사대에도, 출국심사대에도 사람이 없으니 무거운 짐을 들고 오래 서있지 않아도 됐다. 모두가 여행하지 못하는 시대에 여행은, 아이러니하게도 쉽고 편했다.
바뀐 점이라면 비행 내내 마스크를 쓴다는 점. 항공사에선 투명한 페이스 커버까지 나눠줬다. 마스크를 쓰고 그 위에 또 투명한 플라스틱 커버를 머리에 둘렀다. 장시간 앉아있는 비행기 안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소독을 철저히 하는 공항이나 비행기 내에서 감염률이 오히려 낫다는 사실에 애써 위안을 삼았다. 서울에서는 2주 격리를 했다. 그게 몇 배는 더 힘들었다.
서울에서 일정을 마치고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날,
비행기 안에서 의료진들이 입는 방호복 같은 옷을 입은 승객을 봤다. 그녀는 발 끝에서 머리 끝까지 모두 방호복으로 덮고 자리에 앉았다. 화장실은 어떻게 갈까, 불편해 보였지만. 그녀는 한번도 벗지 않았다. 두려움이 새하얀 방호복처럼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누가 상쇄시킬 수 있을까. 이 시대에 과연 누가 안심시킬 수 있겠나...
코로나19 가 터진 이후의 여행은 확실히 낯선 것이었다. 공항 카운터는 모두 비어있고, 경유지에서도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세기말 시대에 텅 빈 거리를 거대한 스크린이 점령하고 돌아가는 것처럼, 도하의 공항에서도 거대한 영상만 공허하게 돌아갔다. 2020년의 여행은 불안하고 편안한 것이 공존하는 이상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