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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r 28. 2024

김포 100년의 거리




김포 '100년의 거리'를 거닐었다. 거리에 100년 된 건물은 없었다. 다만 100살 먹은 노인처럼 천수를 다한 거리였다. 시간이 2001년도에 멈췄다. 시간이 공간을 얼렸다. 노스탤지어를 느꼈다. 김포는 같은 경기권인 성남과 비슷하다. 내가 성남을 떠난 게 2001년이다. 기억에 남은 마지막 성남의 모습이 2024년 김포에 구현됐다. 타임캡슐을 열었다.





자본이 돌지 않으면 거리는 노후한다. 사람들 발길과 그들의 소비가 영양소를 제공한다. 영양소 공급이 끊기면 죽는다. 100년의 거리는 죽었다. 젊은 예술가와 사업가가 투입돼 인공호흡기를 달아줬으나 차도가 없다. 악순환이다. 발길이 뜸하다. 상권이 노후화된다. 발길이 더 뜸해진다. 호흡기 뗄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거리의 마지막을 목격했다. 





원인을 찾았다. 김포 내에 신도시와 계획 상권이 생긴다. 더 가깝고, 편하고, 세련된 상가 단지가 속속 등장한다. 김포도 꾸준히 쇄신한다. 문제는 공간을 이동하며 쇄신한다는 점이다. 묵은 것은 방치된다. 신도시에 새것, 좋은 것이 모인다. 쇄신은 김포 시민 전반을 위함이다. 특정 상권의 상인들이 아니다. 김포의 자본은 인프라 설비에 쓰인다. 인프라의 혜택을 받는 것은 신도시뿐이다. 새롭게 들어선 지하철역 근처로 상가가 몰린다. 인파가 몰린다. 장기역 옆으로 김포의 베니스를 이미지 한 라베니체가 들어온다. 중간에 운하를 뚫고 도로를 정비하고 양옆으로 상가를 줄 세운다. 요즘 뜨는 브랜드와 식당이 공간을 임대한다. 산책로도 공원도 새 상권 주위에 조성된다. 시는 될 놈에게 올인한다. 한때의 대입 우수반과 같다. 학교를 빛낼 이들에게 인프라를 한두 반에 몰빵해 명문대 타이틀을 수집하려는 학교의 속셈이 숨어 있다. 100년의 거리는 답 안 나오는 낙제생이다. 인도에 차량 진입 방지봉 대신, 급식 배달에 쓰이는 플라스틱 우유 박스에 시멘트를 부어 흉물스러운 조형물을 만들었다. 나라 단위에서 한 것인지 개인 단위에서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흉물을 오랫동안 방치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상가도, 거리도 관리가 되지 않았다. 





100년의 거리엔 해동 1950이란 카페가 분투 중이다. 젊은 피로 노후된 거리에 줄기세포 배양하고 있다. 젊은 작가를 모집하고, 거리의 헤리티지를 좇아 브랜딩하고, 요즘스러운 인테리어로 젊은 층의 발길을 잡는다. 을지로에 있을 법한 힙스터 카페를 지향했다. 비비드 컬러의 레트로풍 의자부터, 공업용 콘크리트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선반까지. 벽과 천장의 내장재를 걷어내고 소재와 배관 시공을 노골적으로 볼 수 있는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를 했다. 뉴진스 캐릭터 펜을 팔고, 요즘스러운 커피 메뉴도 선보인다. 녹차, 흑임자맛을 첨가한 아인슈페너가 메뉴판 위에 있다. 소속 디자인팀이 있는지, 건물 전반에 통일감을 줬고, 벽에 붙인 이벤트 포스터도 브랜드 색이 들어 있다. 다만 한 끗이 없다. 그 한 끗은 자본이 채울 수 있다. 요즘스러움이 고객에게 안착하기 위해선 자본으로 만든 마감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애초 계획만큼 상행위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돈이 돌지 않는다. 건물 여기저기에 인테리어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4개의 층을 직원 한 명과 cctv가 커버했다. 우리가 머문 시간 동안 다른 손님을 보지 못 했다. 해동 1950의 분투는 어떤 흐름을 만들지 못 하고 있다. 





"이 거리에 사람 좀 오나요?" 나는 질문한다. 해동 1950의 젊은 직원이 답한다. "점점 더 조용해지네요. 요즘은 특히 안 와요." 뭐라 할 말이 없다. 멋쩍게 고개를 끄덕인다. 





흐름은 개인의 힘으로 만들 수 없다. 같은 방향성을 가진 동지가 필요하다. 요즘스러운, 볼만한 카페와 전시 공간이 몇 개는 있어야 젊은 층의 발길이 닿는다. 카페 하나 보자고 이 먼 길을 나서는 이는 많지 않다. 접근성이 좋은 편도 아니다. 역에서 내려 10분가량 굽이굽이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가야 하는 이유, 즐길 거리가 몇 개는 되어야 한다. 건물 하나 아무리 꼼꼼히 본다고 해도 30분 이상 체류하지 않는다. 커피 마시며 작업하는 사람이라면 몇 시간이고 체류할 수 있다. 다만 김포까지 굳이 그 먼 길을 가서 작업할 사람은 많지 않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지가 10명 정도 된다면, 반나절 둘러볼 수 있는 이유가 생긴다. 2021년에 생겼단다. 3년 동안 홀로 애써 왔다. 뚜렷한 성과는 없다. 






100년의 거리는 흥미롭다. 실용도 측면이 아니라 관광 측면에서 말이다. 소비가 이뤄지진 않았다. 2024년 수도권에 이런 공간이 남았단 말이야?라는 물음이 연달아 떠오른다. 간판은 부서지고, 스티커는 떼지고, 색이 바래고, 디스플레이 된 상품은 오염됐다. 상인들이 수익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잃었다. 도로엔 생기가 없다. 그 생기 없음이 주는 강렬한 인상을 음미한다. 외국물 마신지 오래된 검은 머리 외국인이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도저히 살릴 수 없는, 끝을 바라보는 상권이 주는 애잔함과 노력의 선험적 무용함이 내 안에 엄청난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너무 오래된, 변화의 동력을 잃은, 안주한 이들이 몇 년을 버틴 공간이다. 어떤 의미의 스펙터클이다. 이 터전을 벗어날 수 없는, 그 이외에 다른 일을 생각할 수 없는 장년층 상인이 만드는 빈곤의 스펙터클. 






한 슈퍼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슈퍼로서 본질을 잃었다. 유리창 뒤에 담배 몇 개와 구색도 맞출 수 없는 몇 개의 상품들이 되는대로 놓여 있었다. 매장 절반은 탁주 박스가 몇 개 쌓여 올려졌다. 그 절반에 해당하는 곳의 유리에 탁주 판다는 글이 붙여져 있다. 어두운 조명과 지저분한 매장을 본다. 먼발치에서 눈으로 쿱쿱한 냄새를 맡았다. 대다수의 상가가 이런 식이었다. 조금이라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면 노력이라도 해볼 텐데, 아무런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한때의 인기 상권은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다. 이제는 소비력 없는 남은 몇 명이 오가며 이야기 나누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100년의 거리가 풍기는 노스탤지어와 쓸쓸함의 냄새. 100년 된 상가는 없었지만, 거리는 100살 노인처럼 회색빛에 침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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