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띤떵훈 Apr 12. 2024

비행기 추락




비행기 탈 때마다 추락하면 장면을 그린다. 비행기 사고는 차 사고 확률보다 낮다. 그 말을 듣고도 안심할 수 없다. 사고 여파는 비교할 수 없다. 경미한 차 사고는 많아도, 경미한 비행기 사고는 많지 않다. 차에 문제가 생기면 갓길에 세운다. 비행기에 문제가 생기면 세울 곳이 없다. 중력은 언제고 비행기에 손짓한다. 문명의 이기가 기름 태우며 중력의 부름을 무시한다. 문제가 생기면 부름을 무시할 수 없다.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도 내게 발생하면 100%다. 많은 이가 본인은 다르다며 로또를 구매한다. 나는 특별해, 당첨 될지 몰라. 같은 맥락이다. 이코노미 좌석 벨트 맬 때 마다 추락을 그린다. 나는 떨어질지 몰라. 





비행기에서 충분한 숙면을 취한다. 중국 상하이를 경유해 멜번으로 돌아간다. 중국행은 짧고, 호주행은 길다. 짧은 중국행 비행기를 먼저 탔다. 제공한 기내식을 먹고, 잠을 청했다. 이북을 청취모드로 듣는다. 다음주 주말에 독서 모임이 있다. 러셀 서양 철학사로 이야기 나눈다. 틈 날 때마다 러셀 서양 철학사를 읽는다. 3천 년 가까운 시간을 커버하는 책이다. 일반 책 4권 분량이다. 3천 년의 세월은 길어서 매 페이지 새로운 인물이나 사건이 등장한다. 뇌 용량을 초과한다. 집중력이 한계를 보이고 이내 잠에 빠진다. 러셀의 서양철학사는 완벽한 수면제다.





추락한다. 이건 다르다. 다른 덜컹거림에 눈을 떴다. 지금까지 이런 털뷸런스는 없었다. 기체가 요동친다. 기체가 뭔가에 부딪쳤다. 쿵 소리를 낸다. 기내가 심각하게 덜덜거린다. 기체는 충돌 후에 콰과과광 소리를 낸다. 모종의 이유로 부품 하나가 폭발했고, 그 폭발을 견디지 못 한 비행기가 이상 주행한다. 곧 추락한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말했지. 언젠가 추락할 거라고. 아무리 비행기 추락 확률이 낮다고 해도 0은 아니잖아. 예감은 틀리지 않았어. 생각보다 괜찮네. 울고불고 혼절하진 않잖아. 이렇게 죽는구나. 서른다섯 해 잘 살았다. 완벽했다곤 할 수 없지만, 만족스러웠지. 마지막 두 해는 평생 못 누렸던 호사도 누렸고. 성공, 성공- 말만 했지, 진짜로 그 비슷한 걸 할 줄이야. 능력있는 친구들 둔 덕이야. 그러고 보면 인생은 예상 외의 사건으로 가득했네. 예상 외 사건이 삶의 큰 궤도를 바꿨구나. 교포와 만나 결혼하고 멜번에 정착한다고? 어린 내가 들으면 터무니 없는 소리로 치부했겠지. 방 청소도 제대로 한 적 없는 내가 10년 동안 청소로 밥 벌어 먹는다고? 비행기 추락보다 충격이네. 아무튼 예상 외의 삶이었다. 마무리도 그렇고. 그래, 받아들이자. 현대인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봤을 때 몹시 짧은 생애지만, 다른 시대와 지역에선 천수를 누린 것일 수도 있어. 이제 끝이다. 마지막을 받아들이자.’





기체의 강한 떨림이 사그라든다. 비행기는 무사히 상하이에 착륙했다. 귓구멍을 막고 잠을 자 착륙 방송을 못 들었다. 강한 충돌음은 바퀴가 지면에 닿는 소리다. 공중에선 있어선 안 되는 소리지만, 지면에 닿을 땐 일반적인 소리. 예상은 이번에도 빗나갔다. 

작가의 이전글 김포 100년의 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