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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Lee Jun 22. 2021

부자가 안 좋은 이유는?

잘 산다는 건 무엇일까?


지난 주말에 처갓집에 갔다. 제일 신난 것은 아내도 나도 아닌, 선우였다. 선우와 같은 나이의 조카 한나가 눈이 빠지도록 선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선우 역시 한나와의 만남 기다려왔다. 둘은 어렸을 때 가까운 곳에서 자라 거의 친형제처럼 지냈다. 그랬기에 간만의 만남은 거의 이산가족 상봉과도 같았다.  

    

장모님도 우리를 극진히 챙겨주셨다. 직접 하시는 텃밭에 데려가시며, 거기서 뽑은 상추를 한다발 안겨주셨다. 저녁 식사도 삼겹살에 대게찜까지 대접해 주셔서 다이어트를 잠정 휴업하고, 과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장모님은 집에 돌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느라 분주하셨다. 김치에, 각종 반찬에, 야채에, 직접 담그신 식혜까지...      


우리는 고마운 마음과 더 못 있어 아쉬운 마음으로 처갓집을 나섰다. 신나게 놀던 조카는 선우가 떠나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선우도 짙은 아쉬움에 조카가 자기 집에 가면 안 되냐며 묻는다. 조만간 또 오기로 약속하고, 집으로 향했다.     


늦은 저녁이라 막히지는 않았다. 출발한 지 3~40분 지났을까. 고속도로 양쪽에 완전히 번화한 아파트단지가 펼쳐져 있었다. 한밤인데도 아파트 불빛으로 한낮과 비슷할 정도로 밝아 보였다.     


나 : 여기, 어디지? 완전 신세계네.     


아내 : 그러게. 예전에는 허허벌판이었을 텐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선우가 생뚱맞은 질문을 한다.     


선우 : 부자가 안 좋은 이유가 뭐게요?     


나. 아내 : 글쎄. 그게 뭘까?     


선우 : 부자는요. 집에 훔쳐갈 게 많아서 밤에 잘 못 자요.      


나 : 그래? 훔쳐갈 게 뭐가 있는데?     


선우 : 금고도 있고. 또 돈도 많고,     


나 : 그래? 그럼 우리는 밤에 잘 자나?     


선우 : (즉각적으로) 그럼요.      


아내 : 창문 다 열어놓고 자도 될걸.     


운전으로 피곤했었는데, 가족과의 유쾌한 대화로 피로가 좀 풀린다. 한편으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선우도 이제 잘 살고 못 살고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는구나.’     


선우가 생각하기에 우리 집은 훔쳐 갈 게 없나 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절로 값이 올라가는 아파트는 우리는 없다. TV에서 A급 연예인이 광고하는 외제차도 없다. 통장에 충분한 잔고도 없다. 있는 것은 갚아 나가야 할 은행대출금뿐...      


그럼에도 선우는 부자에 대한 농담을 건넨다. 기분이 약간 묘했다. 선우가 더 크면 우리집이 잘 살지 못하는 걸 어떻게 생각할까. 그때도 지금처럼 이렇게 유쾌하게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돈’은 중요하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돈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      

당장 우리에겐 저녁 식사를 하며 하루의 삶을 나누는 가족이 있다. 언제라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려 하는 장모님이 계시고, 선우를 목빠지게 기다리는 조카도 있다.      


또 무엇이 중요할까. 삶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가치들을 빼놓을 수 없다. 정의, 평등, 자유... 눈에 보이진 않지만,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 아닌가. 이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동물과도 같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돈 외의 중요한 것들을 선우에게 지혜롭게 가르쳤으면 좋겠다. 또한 ‘잘 사는 것’과 ‘돈이 많은 것’이 반드시 같은 것이 아님을 전해주고 싶다. 돈이 없어도 잘 살 수 있고, 돈이 많더라도 꼭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선우에게 알려주기 전에 전제 조건이 있다. 나 먼저 돈에만 눈을 밝혀 다른 중요한 것들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쉽지만은 않은 노릇이다. (당장 이번 달 카드값이 얼마더라?)     


선우야. 우리 잘 살자. 돈이 있어도 잘 살고, 없어도 잘 살자꾸나. 그럴 수 있겠지? (나한테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인 것 같구나,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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