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hilip Lee Jun 29. 2021

나의 취미는 무엇일까?

선우의 취미를 보면서 내가 느낀 것

“선우야! 밥 먹어!”     


몇 번이나 소리쳐 불러도 선우는 요지부동이다. 소파에 앉아 책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나와 아내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나올 때쯤에야 선우는 책을 덮고 식탁으로 온다.   

  

책이 그렇게 좋을까? 밥 먹고 나중에 책 봐도 되냐고 묻고 싶었다. 그렇지만 하루종일 수업과 학원, 과제에 시달린 선우에게 책 읽는 것이 어떤 의미라는 걸 알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보면, 책 읽기는 선우의 취미라고 할 수 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수십 번을 반복해서 읽는다. 본 책을 또 봐도 그렇게 재미있나?     


선우의 취미는 또 있다. 레고 만들기. 벌써 몇 번(때로는 몇십 번) 만들고 허물어뜨렸던 레고. 뭐가 재밌는지 다시 만든다. 그리고 내게 달려와 “아빠! 이것 봐! 전보다 멋있지?” 묻는다. “그래. 응.”이라며 영혼 없는 대답을 하지만, 뭐가 달라졌는지 통 모르겠다.     


주말에만 하는 선우의 취미가 있다. 바로 스마트폰 게임이다. “엄마! 게임해도 돼?”라고 토요일 아침부터 엄마에게 조른다.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선우는 게임에 초집중한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게임을 제법 잘한다. 어떻게 알았는지 무료 아이템도 구입해서 자랑한다(아빠는 그 아이템이 뭐가 좋은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마음껏 게임을 할 수 있는 주말을 선우는 월요일부터 기다린다.     


이렇게 취미를 즐기는 선우를 멍하니 바라보다 나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지금 내 취미는 무엇이지? 나는 무엇을 할 때 즐겁지? '     

갑자기 멍해졌다. 뭐라 답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나면 TV 리모컨부터 찾고, 소파로 달려가는 나. 항상 “피곤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세상의 모든 짐을 지고 사는 나. 항상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갖가지 불평을 해대는 내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역할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또 힘들 때는 자기의 취미를 통해 잘 쉬고 있는 선우. 그런 선우에게 아빠의 이런 무기력한 모습이 부끄러웠다.     


나도 여러 취미가 있었다. 책을 읽고, 좋은 구절을 노트북에 저장해 놓는 것. 교회 목사님과 집사님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배드민턴 치는 것. 힘들고 바빠도 꾸준히 글 쓰는 것. 내가 좋아하는 야구팀 응원하고 경기 보는 것...     


이렇게 취미가 다양했는데... 지금은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니. 최근에 읽었던 책을 펼쳤다. 내가 곱씹어야 할 문장들을 워드로 쳐서 노트북에 저장했다. 한두 장쯤 치니 손목은 좀 아팠지만, 마음이 정돈되었다. 


그래, 이런 행동을 내가 좋아했었지. 이런 행동을 할 때 내가 기분이 좋고, 즐거웠지...     


무기력한 삶을 벗어던지고(리모컨과 스마트폰도 집어던지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 미뤄 왔던 것들을 하나씩 해봐야겠다. 언제 해보겠는가. 미루지 말고, 지금 하나씩 해봐야겠다. 그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기에 반드시.      


ps.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선우에게 말했다.

  나 : “선우야. 방학 때 아빠랑 같이 야구장 갈까?”

  선우 : “피. 말하고 나서 또 안 갈 거면서...”     


선우야. 이번엔 꼭 갈게. 아빠 좀 믿어줘 (제발)! 

이전 11화 부자가 안 좋은 이유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