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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Lee Jul 06. 2021

"휴대폰 번호 저장했어!"

드디어 선우에게 친구가 생겼다.

“아빠! 이리 와 봐.”     


일 끝나고 들어온 내게 선우가 할 말이 있다며 부른다. 항상 들어오면 머리만 까닥하고 인사하는(그것도 안 하는 경우가 많지만) 선우이기에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사고 친 건 아니겠지?’      


선우 : “나 친구 휴대폰 번호 저장했어.”


나 : “그래? 잘 했네. 학교에서?”


선우 : “학원에서. 같은 학년 애야. 학교도 같아.”     


갑자기 내 눈이 커졌다.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얼마 전에 선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친구가 없단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휴대폰 번호를 저장한 친구가 생겼다니. 마치 내가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덩달아 신이 나서 나도 물었다.     


나 : "이름이 뭔데?"


선우 : "예림이. 성은 모르겠어."


나 : "(놀라며) 여자애네?"


선우 : "응. 사는 데도 비슷해서 학원버스 같이 타고 왔어."


나 : "잘됐네."


선우 : "응. 번호도 내가 먼저 물어봤어."     


“너 번호가 뭐야?”라고 쭈뼛쭈뼛하게 물어봤을 선우. 그 모습이 눈에 선했다. 선우의 휴대폰에 가족과 친척 말고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저장된 것은 아마 ‘예림’이가 처음일 것이다.


항상 자기 휴대폰으로 연락 오는 것은 학원이 끝났는지, 집에 혼자 잘 있는지 물어보는 ‘아빠’, ‘엄마’뿐이었을텐데... 앞으로 선우의 휴대폰으로 가족의 문자와 더불어 예림의 문자가 온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궁금했다. 예림이와 어떻게 친구가 됐을지, 예림이가 어떤 아이일지...      


나 : 예림이 번호를 왜 저장했어?


선우 : 학원버스타고 오는 시간이 1초 같았어.


나 : ?? 그만큼 말하는 게 재미있었단 말이야?


선우 :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응!!     


캬... 선우의 표현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즐거웠으면 1초 같았다는 표현을 쓸까. 그 정도로 예림이와 말하는 게 즐거웠을까. 나와 대화하면 따분해하던 선우의 모습이 떠올라 살짝 약오르기도 했다.  

   

이사 온 지 이제 2달 반이 지나간다. 친구가 없다고 칭얼대던 선우가 걱정이었다. 애가 학교와 학원에서 잘 적응할지, 혹시나 전학 와서 학교에서 왕따 당하진 않을지, 나와 아내가 맞벌이해서 선우를 신경 제대로 못 쓰는 건 아닌지...     


아니었다. 선우는 잘 지내고 있었다. 나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오히려 나보다 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선우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학교도 적응했고, 학원도 잘 다닐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휴대폰에 번호도 저장하는 친구도 떡하니 만났다.

    

항상 가족들에게만 연락했던 선우. 이젠 예림이에게 연락할 것이다. 또 새롭게 번호를 저장할 친구들에게도 연락할 것이다.


선우의 친구도 앞으로 더 많아지겠지. 그만큼 선우의 세계 역시 넓어질 것이다.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길 아빠도 기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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