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19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휴대폰 번호 저장했어!"

드디어 선우에게 친구가 생겼다.

by Philip Lee Jul 06. 2021

“아빠! 이리 와 봐.”     


일 끝나고 들어온 내게 선우가 할 말이 있다며 부른다. 항상 들어오면 머리만 까닥하고 인사하는(그것도 안 하는 경우가 많지만) 선우이기에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사고 친 건 아니겠지?’      


선우 : “나 친구 휴대폰 번호 저장했어.”


나 : “그래? 잘 했네. 학교에서?”


선우 : “학원에서. 같은 학년 애야. 학교도 같아.”     


갑자기 내 눈이 커졌다.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얼마 전에 선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친구가 없단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휴대폰 번호를 저장한 친구가 생겼다니. 마치 내가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덩달아 신이 나서 나도 물었다.     


나 : "이름이 뭔데?"


선우 : "예림이. 성은 모르겠어."


나 : "(놀라며) 여자애네?"


선우 : "응. 사는 데도 비슷해서 학원버스 같이 타고 왔어."


나 : "잘됐네."


선우 : "응. 번호도 내가 먼저 물어봤어."     


“너 번호가 뭐야?”라고 쭈뼛쭈뼛하게 물어봤을 선우. 그 모습이 눈에 선했다. 선우의 휴대폰에 가족과 친척 말고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저장된 것은 아마 ‘예림’이가 처음일 것이다.


항상 자기 휴대폰으로 연락 오는 것은 학원이 끝났는지, 집에 혼자 잘 있는지 물어보는 ‘아빠’, ‘엄마’뿐이었을텐데... 앞으로 선우의 휴대폰으로 가족의 문자와 더불어 예림의 문자가 온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궁금했다. 예림이와 어떻게 친구가 됐을지, 예림이가 어떤 아이일지...      


나 : 예림이 번호를 왜 저장했어?


선우 : 학원버스타고 오는 시간이 1초 같았어.


나 : ?? 그만큼 말하는 게 재미있었단 말이야?


선우 :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응!!     


캬... 선우의 표현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즐거웠으면 1초 같았다는 표현을 쓸까. 그 정도로 예림이와 말하는 게 즐거웠을까. 나와 대화하면 따분해하던 선우의 모습이 떠올라 살짝 약오르기도 했다.  

   

이사 온 지 이제 2달 반이 지나간다. 친구가 없다고 칭얼대던 선우가 걱정이었다. 애가 학교와 학원에서 잘 적응할지, 혹시나 전학 와서 학교에서 왕따 당하진 않을지, 나와 아내가 맞벌이해서 선우를 신경 제대로 못 쓰는 건 아닌지...     


아니었다. 선우는 잘 지내고 있었다. 나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오히려 나보다 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선우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학교도 적응했고, 학원도 잘 다닐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휴대폰에 번호도 저장하는 친구도 떡하니 만났다.

    

항상 가족들에게만 연락했던 선우. 이젠 예림이에게 연락할 것이다. 또 새롭게 번호를 저장할 친구들에게도 연락할 것이다.


선우의 친구도 앞으로 더 많아지겠지. 그만큼 선우의 세계 역시 넓어질 것이다.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길 아빠도 기도할게.     

이전 12화 나의 취미는 무엇일까?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