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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Lee Aug 23. 2021

"지구가 아프단 말이야!"

"미안하다. 선우야 같이 노력해보자."

오후 출근하는 날이다. 아내도 마침 쉬는 날이고, 선우도 학원 방학이라 간만에 점심을 밖에서 먹기로 했다. 뭐 먹을까 고민하다가 요즘 날도 너무 덥고, 몸도 허해 집 근처 삼계탕집으로 결정했다.


오랜만에 몸보신이라 나와 아내는 신나게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선우를 보니 침대에 누워 있는 게 아닌가. 세월아 네월아 하며 통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선우야 나가야지. 선우야 준비하자.” 몇 번을 얘기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얘가 왜 이럴까 화가 나서 “선우야! 빨리 나가자!” 약간 큰소리를 냈다. 그랬더니, 선우가 울먹이며 말한다.     

“그렇게 가까운 데 가면서 차는 왜 타고 가? 그냥 걸어가면 돼지.”

     

가깝긴 해도, 걸어서 30분은 족히 가야 하는 거리다. 게다가 35도가 넘는 뙤약볕 아닌가. 최대한 부드럽게 선우를 달랬다.     


“선우야. 지금 날씨가 많이 더워서 차 타는 거야. 나중에 날씨 선선해지면, 그때는 걸어가자.”

     

그래도 선우는 요지부동이다. 뾰로통한 표정을 드러내며 말을 꺼낸다.   

  

“자동차 타면 공기가 얼마나 나빠지는지 알아? 저번에 뉴스에서 봤는데, 지구가 몇 년 지나면 없어질 수도 있대. 그런데 왜 자동차를 타고 가?”     


갑자기 어안이벙벙했다. 이게 ‘지구’, 즉 환경 문제까지 나올 이슈인가? 그냥 잠깐 차 타고 나갔다오는 건데? 하긴, 선우가 평소에 환경을 생각하긴 했다. TV에 환경 문제가 나오면 주의 깊게 살펴본다. 쓰레기를 버릴 때도 페트병의 종이까지 뜯어서 따로 분리수거하는 애다. 아마 얼마 전, 환경 관련 뉴스를 보고 지구가 생각보다 오염되었다는 사실이 뇌리에 박혔었나 보다.     


“선우야. 맞는 말이야. 그런데, 선우가 생각하는 것만큼 지구가 그렇게까지 오염된 건 아니야. 물론, 이렇게 계속 자동차 타고 다니고, 샴푸 많이 쓰면 지구가 피해를 입겠지만, 몇 년이 지나면 지구가 없어진다는 말은 선우가 잘못 들었을 거야.”     


“아니야. TV에서 봤단 말이야.”     


어떻게 보면 참 기특한 생각이다. 지구를 아끼는 것을 실생활에서 실천하자는 말 아닌가. 그런데, 선우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약간의 배고픔과 짜증이 더해져 선우에게 말했다.

     

“선우야. 너가 지구를 생각하는 것만큼 아빠 생각은 안 하니? 간만에 가족들 외식하는 거고, 아빠 요즘 힘들어서 삼계탕 먹으러 가는 건데, 그걸 이해를 못 해줘?”     


선우는 볼멘소리로 말을 잇는다.     


“아빠는 맨날 쓰레기 그냥 버리잖아. 페트병도 종이 안 떼고 그냥 버리고.”    

 

완전 팩트폭력 당했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선우의 눈에 나는 환경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었다.      


나는 나대로 화나고, 선우는 선우대로 씩씩댔다. 지혜롭게 아내가 나와 선우를 중재했다. 선우에겐 아빠가 피곤하니까 이번에는 걸어다녀오자고 부드럽게 얘기하고, 내겐 앞으로 쓰레기 잘 배출하라고 조언했다.     

 

다행히 선우는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식당으로 나섰다. 모두 맛있게 먹고, 근처 빵집에서 빵까지 사왔다. 아침에 진통을 겪긴 했지만, 다행히 해피엔딩으로 끝난 가족 외식이었다.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선우가 항상 부족하고, 잘 모르기에 잘 가르쳐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당장 오늘의 일만 봐도 선우가 나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나. 나는 지구의 아픔을, 환경문제를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선우는 자신이 어른이 된 후 지구가 없어지진 않을까 (생각보다 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민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었다.      


오늘 선우에게 제대로 교육 받았다. 선우야. 앞으로 쓰레기 분리수거 잘 할게. 자동차도 필요할 때만 쓰고. 우리가 노력하면,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지구가 덜 아프겠지? 선우야, 지구야 그동안 미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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