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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Lee Sep 01. 2021

"버킷리스트가 이뤄졌어!"

이젠 가족과 함께 꿈꾸고 싶다

금요일. 오후에 출근하는 날이다. 그냥 집에서 쉴까 하다가 아들내미 생각이 났다. 선우는 방학 때 특별한 곳 제대로 못 가봤기 때문이다. 1박으로 휴가는 다녀왔지만, 가고 싶었던 박물관이나 수영장 등은 전혀 못 갔다. ‘방콕’만 죽어라 했다. 다음 주 개학이라 바람이라도 쐬자 싶어 어디를 갈까 찾아봤다.    

 

가까운 계곡을 생각했지만, 날씨가 선선해져 추울 것 같았고,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는 시점에 사람이 몰려 위험할 것 같았다. 스마트폰을 찾아보다가 ‘여기다!’ 싶은 곳을 발견했다. 선우가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수원 화성으로 가기로 급 결정. 차로 3~40분 밖에 안 걸려 시간도 적당했다.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콘프레이크와 우유), 간단한 간식과 물을 챙겨 수원으로 향했다. 간만에 가족과 드라이브라 기분이 좋았다. 출근 시간이 끝난 후라, 별로 막히지도 않았고, 무사히 도착했다. 주차하고, 입장권을 사고, 화성행궁에 들어섰다. 선우가 갑자기 들뜬소리로 한마디 한다.     


“우와! 이제야 화성 와봤네. 내 버킷리스트였는데!”     

나와 아내는 활짝 웃는 선우를 보고 따라 웃었다. 얘가 ‘버킷리스트’라는 단어는 또 어디서 들어봤는지... ‘정말 와보고 싶긴 했구나.’       


곳곳을 돌았다. 행궁은 왕이 궁궐을 벗어나 머무는 곳이다. 그 행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곳이 이 화성행궁이란다. 예전 부엌, 왕의 숙소, 여러 문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약간 아쉬운 점은 갑작스럽게 와서 이곳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 유홍준 교수님의 말씀이 절로 생각났다. 미리 계획했다면 인터넷으로 정보라도 찾아봤을텐데... 그래도 간만의 외출에 우리 가족은 즐거웠다. 날씨도 화창해 우리 마음은 더욱 들떴다.   

  

짧게 행궁을 들러보고, 바로 옆에 있는 수원 통닭거리에 갔다. 아내가 대학 때 자주 갔다던 곳에 가서 수원의 명물 왕갈비치킨과 프라이드치킨을 시켜 먹었다. 어쩌면 수원통닭 먹는 것은 아내의 버킷리스트 같았다. “맞아! 여기 그때 이랬었어!”라며 즐겁게 추억을 곱씹었다.      



통닭으로 이른 점심을 먹고, 수원 화성의 동쪽 문인 창룡문에 갔다. 원래는 활쏘기 체험도 해보려했는데, 마침 점심시간이라 체험을 할 수 없었다. 선우는 “다음에 해야겠다.”라며 아쉬워했다. 대신 성곽길을 걷고, 사진을 찍었다. 위에서 보니, 수원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오후에 일을 나가야 해서,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가 12시 반. 짧은 3시간 동안 그래도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못내 아쉽긴 하지만, 그게 또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짧은 번개여행을 마치며 돌아가던 중, 아까 선우가 외쳤던 말이 생각났다. ‘버킷리스트’.     


나도 다이어리에 수십 개씩 버킷리스트를 적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젠 그때 썼던 버킷리스트가 무엇인지 기억도 안 난다. 고작 서너 개 정도? 외국 100개국 이상 가보기,외국어 2개 이상 마스터하기, 책 10권 쓰기, 출판사 등록하기...      


결혼 후 하루하루 살기에 바빠, 아이 키우는데 바빠 버킷리스트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고나 할까. 그저 하루 잘 살기에 급급했다. 아무 탈없이,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하루를 마감하면 다행이었다. 버킷리스트라는 건, 꿈이라는 건 그 당시의 내겐 사치였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버킷리스트였다는 화성을 갔을 때의 선우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반짝이던 눈과 평소에 볼 수 없었던 환한 웃음. 가만 있자 그 표정을 내 얼굴에서 찾을 수 있을까?


슬프게도 내 얼굴에선 선우의 표정을 찾을 수 없었다. 주름과 짜증섞인 입꼬리뿐... 언제부터일까 생각해보니, 내 사전에 ‘버킷리스트’가 삭제되어 버렸을 때인 것 같다.     


다시금 버킷리스트를 생각해봐야겠다. 예전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더라도 그것만 생각해도 힘이 솟고, 동기부여되는 그런 꿈들, 소망들, 바람들... 잠깐, 이젠 혼자가 아니라 가족들과 이루어갈 수 있지 않을까. 아내와 아들 선우와 함께... 갑자기 신이 난다. 어떤 버킷리스트를 세워 볼까?     


선우야. 우리 뭐해볼까? 일단 코로나 끝나면 가까운 외국 나가서 배낭여행 어때?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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