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hilip Lee Jun 18. 2021

"친구가 없단 말이에요!"

선우야. 아빠가 친구가 되어 줄께

퇴근하고 가족이 같이 저녁을 먹는다. 진수성찬은 아니더라도, 특별한 의식은 없어도 이 시간은 중요하다. 밥을 먹으며, 각자 하루 어떻게 지냈는지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우도 학교와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한다. “오늘 마림바라는 악기를 연주했는데요.”, “오늘 합기도 학원에서 피구를 했는데요.” “오늘 급식에 스파게티가 나왔는데요.” 주제도 다양하다. 여러 가지를 서로 묻기도 한다. 며칠 전, 선우에게 물었다.     


나 : “선우야. 요즘 학교에선 누구랑 많이 놀아?”     


선우 : “노는 사람 없어요. 친구가 없단 말이에요.”     


거리낌 없이 대답한 후, 선우는 계속 밥을 먹는다.      


나 : “그래? 조금 지나면 친구 생길 거야.”     


선우의 대답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나도 다른 말을 꺼냈다.      


그런데, 친구가 없다는 선우의 말이 며칠 동안 내 머리를 맴돌았다. 선우는 그렇게 쉽게 얘기했지만, 얼마나 답답할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만한 누군가가 없다는 게, 언제라도 만나서 신나게 놀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     


선우의 지금 상황을 보면, 친구 사귀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코로나로 일주일에 2~3일밖에 학교를 안 간다. 게다가 전학까지 했으니 마음에 맞는 친구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렵겠나.     


그런 선우에겐 집에 오는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가보다. 집에선 보고 싶은 TV도 볼 수 있고, 책도 볼 수 있고,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또한, 마음껏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나도 예전보다는 선우와 많이 놀아주려 한다. 가까운 놀이터에도 가고, 베이블레이드라는 요즘 팽이 치기도 한다. 예전에는 선우가 하자고 해도 귀찮다고 안 했었다(이런 무정한 아빠라니...).


그런데 같이 해보니까 재미있었다(물론, 한 번도 선우를 이겨본 적은 없지만). 무엇보다도 신나는 선우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팽이 치는 게 저렇게 좋을까.     


선우는 잘 때 잠깐이나마 엄마나 아빠랑 누워 있다. 같이 누워있다가 선우가 잠들면 자리를 옮기는 식이다. 며칠 전엔 내가 선우와 누워있었는데, 무척 피곤한 날이었다. 3~4분 누워있다가 조심스레 안방으로 가려는데, 선우가 옷을 붙잡았다. 


선우 : “아빠! 가지 마.”     


나 : “너 몇 살인데, 아직도 혼자 못 자?”     


짐짓 화를 내고 선우 곁을 떠났다. 잠을 자려는데, 찝찝했다. 순간 선우의 환청이 들리는 듯 했다. 


‘친구가 없단 말이에요.’     

다시 선우에게 가보니, 침대에 앉아 찔끔 눈물 흘리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도 너가 아빠냐? 쯧쯧’ 나를 혼내고 싶었다.     


‘에고. 내가 너무 심했구나. 그냥 잠깐 누워있는 건데... 그것 하나 못 해 주다니...’     


“선우야. 같이 누워 있자.”      


친구가 없다는 것은 선우에게 어떤 의미일까. 아이의 문제라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도 어렸을 때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학창시절을 생각해  보면,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던 추억도 찾기 힘들다. 그래서 그때로 돌아가고픈 생각도 별로 없다.     


선우는 지금 이 시간을 나중에 어떻게 기억할까. 전학 와서 친구도 없고, 코로나로 학교도 잘 안 가고, 학원 다니느라 힘들었던 때... 부정적으로만 기억하지 않을까.     


아찔했다. 선우의 문제를 선우에게만 맡겨선 안 된다. 물론 선우의 문제를 내가 다 해결해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같이 노력해야 할 부분 아닐까.     


내가 선우의 친구를 만들어줄 수는 없다. 학교에 가서, 학원에 쫓아가서 선우의 친구를 찾을 수 없다. SNS에 올려 아이의 친구를 찾는다고 모집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다. 같이 놀아주고, 같이 팽이치고, 같이 보드게임하고, 같이 맛있는 것 먹고... 아빠로서 지적하고 지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친구로서 같이 얘기하고 같이 웃는 것 아닐까.      


어떻게 보면, 참 간단한 일이다. 아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 중요한 것은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겠다.      


선우야. 같이 놀까? 아빠, 그래도 괜찮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굽신)

이전 09화 같이 레벨업 하지 않을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