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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Lee Jun 15. 2021

같이 레벨업 하지 않을래?

게임과 인생은 닮은 점이 많다


슬슬 선우가 게임의 맛을 알아간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는 늦게 시작한 편이지만, 게임을 갈망하는 눈빛은 강렬해진다. 지금은 규칙을 정해 엄마 폰으로 주말에만 하고 있다.      


‘조그만 애가 게임을 얼마나 잘 하겠어?’      


1분, 아니 10초만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면 이 생각은 바뀐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닐텐데, 어떻게 이렇게 잘 할 수 있지? 아이들에겐 게임 DNA가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나 보다.     


이런 나도 선우와 함께 즐기는 게임이 있다. 이름도 구수한 <아빠 게임해!>. ‘추억의 고전 게임’이다. 게임기를 TV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무려 53개의 옛날 게임이 들어 있다.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선우가 하는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한두 번 같이 해보니, 앗! 재미있었다. 테트리스, 갤러그, 슈퍼마리오, 쿵푸, 남극탐험 등 예전 내가 어릴 때 해 보았던 것들 아닌가.. 요즘말로 추억 제대로 돋았다.     


같이 게임을 하며, 누구 점수가 더 높은지 경쟁하며 깔깔댄다. 스마트폰 게임은 아무래도 화면이 작아 눈이 나빠질까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도 내려놓았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고전 게임이 어느덧 우리 가족의 공식 놀이가 되었다.     


이렇게 게임을 하며,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게임과 우리네 인생. 공통점들이 있지 않을까?     


게임을 살펴보자. 게임이 시작된다. 주인공은 목표까지 질주해야 한다. 가는 길이 순탄치 않다. 곳곳에 있는 장애물을 피하고, 적들의 공격을 막아야 한다. 지체할 여유도 없다. 정해진 시간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장애물만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아이템을 먹으면, 닳은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미션을 수행하면 칼이나 방패를 얻기도 한다. 힘들 때마다 도와주는 조력자도 있다. 이렇게 적들의 방해와 조력자의 도움 속에서 주인공은 목표까지 도착한다. 거기에는 항상 최후의 적이 기다리고 있다. 어떤 적보다 크고 강력한 끝판왕이.      


현실은 어떠한가. 세상이라는 게임판에 우리는 놓여 있다. 매일매일 크고 작은 적들이 나를 넘어뜨리려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업무,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회사 상사들, 항상 얼굴에 불만이 써 있는 마주치는 사람들... 매달 납부해야 하는 고지서, 새로 산 차에 누군가가 저질러 놓은 문콕...     


느긋하게 살아갈 수도 없다. 매일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일을 해야 하루가 마감되고, 내일이 찾아온다. 물론, 여유도 없다. 매일매일 새로운 일이 생기고, 그 일을 완수 못 하도록 또 다른 일들이 들이닥친다. 어떨 때는 밥 먹을 시간도 없다.     


다행히 현실에도 조력자는 있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한결같은 가족들, 가끔 목소리만 들어도 살아갈 힘과 위로를 주는 오랜 친구들, 잘 모르는 내게 친절을 베풀어주는 고마운 사람들... 이들 때문에 하루하루 살아간다. 이들 덕분에 강력한 적들의 공습도 이겨낼 수 있다.     


그렇다면 끝판왕은 누구일까? 학생들에겐 큰 시험, 자격증 취득 등이 될 수 있겠고, 취준생들에겐 입사가 될 수 있겠다. 취업을 한 사람들에겐 아마 결혼이 아닐까. 결혼과 함께 세트로 ‘내집 마련(될 수 있으면 아파트)’이라는 강력한 적도 맞닥뜨려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 부양, 부모님 병 간호, 자식 결혼, 경제적으로 불완전한 노년 생활도 신경써야 한다. 이런저런 크고 작은 적을 물리치고 나선, 마지막으로 나의 몸을 직접 무너뜨리는 바이러스와 직면해야 한다.     


어찌 보면 게임은 단순하다. 무자비하지 않다. 죽더라도 몇 번 더 도전할 수 있고, 내가 해 온 게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도 된다. 즉,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고, 힘든 미션을 언제든지 도전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게임에서처럼 레벨업도 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저하되며, 새로운 것을 도전할 의욕도 줄어든다.     


인생이라는 게임. 난 어디까지 와 있는 걸까? 또 어떤 끝판왕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사실 나보다도 아들이 슬슬 걱정된다. 이제 막 인생 게임을 시작한 선우에겐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벌써 에너지가 바닥나진 않았을까? 휴. 내가 선우의 어려운 문제를 풀어주면 좋을 텐데... 높은 장벽을 대신 넘어주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철저히 자신의 힘으로 게임해야 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승리와 실패를 오롯이 결정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몫이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견디며 하루하루의 게임을 할 뿐이다. 적재적소에 만날 조력자들을 기대하며, 또 내가 다른 사람의 조력자가 되어주며...      


가족이 즐기는 고전 게임들처럼 현실에서의 게임도 언제나 웃으며 마칠 수 있었으면 한다. 될 수 있으면 같이 레벨업도 하고 말이다.


오늘의 플레이를 시작해 본다. 선우와 나. 환상의 호흡을 기대하며 3, 2, 1, 레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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