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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Lee Jun 09. 2021

"도서관이나 같이 갈까?"

나와 선우와의 마법의 시간

오늘은 일이 일찍 끝나 다른 날보다 두세 시간 일찍 퇴근한다. 이런 날은 그리 많지 않기에 기분이 좋다. ‘퇴근 후 뭐 할까?’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간만에 낮잠 자서 쌓인 피로를 풀까? 요즘 새로 나온 미드가 뭐 있더라? 친구한테 연락해서 생존신고라도 할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집에 도착. 때마침 학원 차에서 내리는 선우와 함께 집에 들어갔다.

 “오늘 뭐 배웠어? 점심 많이 먹었어?” 이런저런 일상적인 질문을 했다. 선우는 시큰둥하다.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하다. 하긴 아침 일찍 학교 갔다 곧바로 학원 두 개 마치고 집에 온 선우다. 웬만한 직장인만큼 피곤하고 지치지 않았을까.     


“그럼 아빠랑 낮잠이나 잘까?”     


피곤한 나도 쉬고, 피곤한 선우도 쉬게 만드는 고도의 전략. 최고의 육아법 아닌가. 그렇지만, 역시 선우는 나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는다.     


“아니.” 단호하게 의사를 표현한 후, 뭐하며 놀지 이리저리 궁리한다. 음. 하는 수 없다. 쉬고 싶었지만, 간만에 아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 아닌가.      


“선우야. 같이 도서관이나 갈까?”     

“예!!!”      


갑자기 선우의 무채색 얼굴이 총천연색으로 빛난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선우도 책을 좋아한다. 요즘은 학습만화에 너무 빠져 있긴 하지만, 뭐라도 읽고 있는 게 어디인가. 책을 사서 봐야 하지만, 빌려 읽고 있다. 책을 빌리는 과정 역시 나와 선우에겐 재미있는 놀이가 된다.     


도서관은 걸어서 2~30분 되는 거리이다. 딱 걸을 만한 거리이다. 이사온 날,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을 보고 이 도서관을 발견했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지어지지 얼마 안 되어 깨끗하고, 신간도 많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어린이 책 자료실이 깔끔해서 선우도 무척 좋아했다. 유레카!     


이곳에 일주일에 한두 번은 간다. 보통 선우는 7권, 나는 2~3권을 빌려온다. 선우가 못 갈 때는 내가 선우 책을 빌려 온다(선우가 꼼꼼히 주문한다). 책이 오면, 선우는 온통 책에 빠져든다. “선우야~ 손 씻고 책 봐야지. 옷 갈아입고 책 봐야지.” 잔소리를 해대도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책을 읽고 싶은 선우의 집념을 꺾진 못한다.      

도서관에 가는 건 나와 선우가 얘기하는 기회가 된다. 집에선 별로 얘기를 못 나누고, TV를 보기 일쑤인데, 일단 나가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다. 그래서 나한테는 도서관 가는 것이 선우와 노는 시간이고, 쉬는 시간이다. 운동이 늘 부족한 내게 최소한 걸을 수 있는 기회도 준다.     


예전 선우 나이 때, 처음 동네 도서관 갔던 게 기억난다. 갈 때마다 세 권씩 빌려줬던 어린이도서관. 학교 오는 길에 매일 들려 책을 빌려오곤 했다. 무엇을 빌렸는지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보고 싶던 책을 빌려 집에 올 때의 행복한 느낌이 아직 남아 있다. 선우도 그때의 나처럼 행복한 걸까?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선우가 나와 도서관을 같이 가줄까? 책에 흥미가 확 떨어져 도서관 자체를 멀리할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커지고 사춘기가 오면 나와 어딜 가는 것 자체를 꺼리는 건 아닐까(안 돼~).     

지금을 잘 누려야겠다. 도서관에 가는 것은 단순히 책만 빌리는 게 아니다. 나와 선우에겐 뜸했던 대화를 나누면서 소소한 추억을 만들어가는 마법의 시간과도 같다. 마법의 효력이 없어지기 전에 선우에게 계속 주문을 걸어야겠다.     


“선우야. 도서관이나 갈까?”     


ps. 그런데, 선우야 만화책은 좀 그만 보면 안 될까? 이젠 글 많은 책도 슬슬 읽어야 돼...

(라고 말하는 나의 잔소리는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 그런 방법 적혀 있는 책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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