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잘하는 남자랑 사는 게 꿈이었다. 꿈을 이뤘다. 그런데 엄마는 요리를 잘해야 한단다. 황급히 요리 잘하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조급해졌다. 그런데 어려워서 죽을 것 같다. 육아 일상에서 요리만 빼면 모든 일은 할 만하다. 유독 요리가 이다지도 힘든 이유는 무얼까? 다들 쉽게 하는데 난 왜 이리 도망치고 싶은 걸까?
집안일이 한쪽에 기울지 않은 가정을 꿈꿨다. 꿈을 이뤘다. 그런데 수평을 맞추기 위해 내가 밀어낸 요리라는 집안일이 가장의 무게를 더하는 것 같다. 평등을, 합리를, 노예 같지 않은 여성의 삶을, 하녀 같지 않은 엄마의 삶을 꿈꿨다. 그를 돌쇠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내가 편하면 그가 불편해지는 거였다. 그가 불편하니 내 맘이 편치 않다. 차라리 내 몸이 힘든 게 낫겠다. 힘들기만 하면 되는 거라면 좋겠다.
어느 날부터 남편에게 얻어먹는 밥이 체할 것 같았다. 나는 내 요리공포와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했다. 그건 내가 잘하는 일이다. 딱지를 떼는 일.
핑계 하나.
엄마는 주방에 얼씬도 못하게 하셨다. 평생이 일일일인 엄마는 시집가서 하라며 주방 문을 걸어잠갔다. 2남 3녀의 맏딸로 열두 살부터 채소 장사로 가계를 거들며 동생들을 키우던 엄마. 결혼하고도 가모장으로 안팎의 일을 쉬는 날도 없이 하던 엄마. 엄마는 늘 찬밥을 뒤늦게 먹었다. 어릴 땐 엄마가 우리와 아빠의 밥상 심부름을 하는 하녀처럼 느껴져 너무 싫었다. 왜 아빠는 가만히 앉아서 엄마에게 물을 떠 오라고 할까? 나도 요리를 잘하게 되면 저렇게 하녀처럼 부엌데기로 부림 받으며 살아야 할까? 요리라는 일에는 엄마의 사랑과 동시에 피땀눈물, 고독, 설움이 모두 얽혀 있다. 환갑이 넘도록 40여 년간 요리로 먹고사는 엄마. 파출부와 식당일로 우릴 키우신 엄마. 나는 정말 요리를 잘하고 싶지 않다. 나는 평생 요리만 하며 사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 생선 가시에 찔려 손톱이 빠지고 성한데 없는 엄마의 거친 손을 닮고 싶지 않다. 나는 엄마랑 다르게 살고 싶다.
핑계 둘.
나는 행동이 느리다. 실수를 두려워해서 완벽을 기하느라 그렇기도 하고 천성이 느긋하기도 하다. 많은 것을 고려하느라 결정과 판단이 늦다. 요리는 순간이다. 빠릿빠릿해야 한다. 잠깐 사이 타고 짜지고 망한다. 결론. 요리는 나랑 안 맞다.
핑계 셋.
요리라는 어마무시한 일!!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재료를 선택해 예산에 맞게 지출하고, 재료의 신선도와 가족의 건강을 고려해 삼시세끼 메뉴를 선정하고, 식재료에 맞는 보관법을 숙지해 신선하게 재료를 오래 보관하며 냉장고를 경영하는 일. 빠른 손놀림으로 재료를 손질하고 레시피를 숙지하거나 타고난 감으로 적절한 간을 맞춰 재료를 익혀내는 일. 적절한 온도와 시간, 저어주고 체킹 해가며 아이의 보챔에 응하면서 멀티플레이도 이만큼 다중플레이가 따로 없다. 나는 하나만 파는 거 좋아한다. 동시에 여러 개 하는 것, 힘을 뺄 것과 줄 것을 선별해 내는 일이 어렵다. 그래서 보통 다 열심히 해왔다. 요리는 제한된 시간 안에 주력할 일과 대충 해도 될 일을 구분해야 한다.
핑계 넷.
난 어릴 때부터 소화력이 약해 부드럽고 담백한 음식이나 채소, 과일을 즐겼고 반려인의 입맛은 고기 위주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고혈압이 있으셔서 내겐 저염본능이 있는데 그는 단짠을 좋아한다. 내가 요리하면 거의 원물 그대로나 삶고 찌고 데치는 조리법을 하고 간이 약해 맛이 없다.
하아..
이건 분명 요리 잘해보려고 쓰는 글이다. 요리를 못하는 인간으로 살아온 시간들이 불행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분명 있을 거야!
다시 하나. 요리를 잘한다고 엄마처럼 살게 되는 건 아니야. 나에겐 이미 요리가 쉬운 반려인이 있잖아. 긴장 풀어. 뭘 해도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이 있잖아. 입맛 까다로운 사람 없어. 힘 풀어.
다시 둘. 나는 특별한 요리, 색다른 요리부터 하려고 하지. 기본부터 하면 뽀롱나니까. 메뉴라도 새로워야 맛없어도 재미와 의미를 남길 수 있으니까? 뭐든 즐기고 이해하고 탐구하려는 너잖아. 이래저래 실험하다 보면 재료의 특성과 조리법별로 장단점도 감으로 익히게 될 거야. 경험주의자 맞잖아.
다시 셋. 재료 선택과 구입, 손질과 보관을 내가 직접 해야 그때부터 메뉴가 머릿속에서 나와. 마음에서 우러나와 요리하고픈 마음이. 경제권과 역할 분담도 좋지만 냉장고와 주방의 주인이 둘이라 중구난방으로 냉장고가 관리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야. 누가 어디에 뭘 넣었는지를 서로 찾지 않아도 될 만큼 합의된 기준과 원칙이 생길 때까진 둘 다 지금처럼 계속 답답해하며 재료의 절반은 버리면서 음식물쓰레기를 품은 냉장고랑 살게 될 테니까.
"요리는 나 말고 먹어주는 사람이 맛있게 하는 거예요."
맞다. 나는 내가 먹고픈 요리만 자꾸 하고 있었다. 요리를 못한 건 사실 사랑을 몰라서, 나만 알아서 일지도 몰랐다. 내가 먹고 싶지 않은데도 그와 아일 위해 할 수 있다면 그게 진짜 사랑이다. 요리를 모르는 난 아직 사랑을 모른다.
나 말고 그를, 내 아이를 오래 마음 가득 품으면 사랑이 음식으로 뿅 하고 튀어나오면 좋겠다.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