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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나무숲 Aug 29. 2016

함부로 망가지게 하지 말아요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보인다

내 손에 들어온 물건들은 족족 부서지거나 고장나기 일쑤였다.

엄마는 그게 내가 물건을 너무 함부로 쓰기 때문이라 했는데, 작정하고 망가뜨리려 했던 건 아니다. 어쩌면 머리 속에 '이까짓거 망가지면 새거 또 사면 되지'하는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제 내가 망가뜨린 물건들은 우산이나 드라이기, 머그컵 등 비교적 금전적 출혈이 덜 한 것들이어서 새 것을 사는 것이 많이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그 중에도 엄마에게 가장 타박을 많이 받았던 건 신발이다. 신발을 너무 함부로 신어서 금방 굽이 닳는다는 것. 하지만 매번 새 신발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신발 수선집에 자주 갔다.

내가 다녔던 대학 교정 안에는 아주 오래된 신발 수선집이 하나 있었다. 굽이 망가지고 뒤축이 무너진 신발을 가져가면 다시 새 것처럼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내가 신발을 가져 갈 때마다 '자네 발을 질질 끌면서 걷는구먼' 하며 내 걸음걸이를 지적했다. 망가진 신발 때문에 타박 받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걸음걸이를 가지고도 혼이 나다니. 왠지 억울했지만 할아버지의 껄껄 웃음소리를 들으며 신발이 원상복귀되는 걸 기다리는 시간은 늘 즐거웠다.

사람들이 신발을 고치려 가져오는 걸 보면 그 사람의 걸음걸이 뿐만 아니라 성격도 알 수 있다고. 할아버지의 기준에 따르면 나는 '대충 되는대로 걷는 사람'에 속했다. 발 뒤꿈치부터 발가락까지 고루 힘을 전달하며 정석대로 걷지는 않지만, 여유있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걸어다니는 사람. 이라는 뜻이었을까?

째서 이렇게 걷게 되었는지, 그 기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어린 시절 왠지 뒷짐을 지고 설렁설렁 산책하는 아빠의 뒷 모습이 멋져 보였고, 나도 그걸 따라 했었던 건 기억이 난다. 아빠는 저녁 식사후 동네 산책을 할 때면 그렇게 슬슬 걸으면서 길가에 핀 망초대나 쑥, 팽이꽃 같은 것들의 이름을 내게 일일이 알려주었다. 꼿꼿하게 자세를 유지하며 걷기를 위한 걸음을 이어가면 쉽사리 발견할 수 없었을 길가의 즐거움. 그걸 발견하는 게 참 좋았다.

얼마 전, 신발을 고치기 위해 졸업 후 오랜만에 수선집을 찾았다. 걸음걸이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새 굽을 끼워 넣는 소리를 들으며 찬찬히 수선방 안을 둘러보았다. 손님들이 두고 가거나 할아버지가 교내를 돌아다니며 주운 각종 신발들이 걸려있었다. 저걸 왜 버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함부로 버려선 안 된다고 했다. 그저 그 한마디였고, 신발마다 담긴 누군가의 걸음걸이, 꾹꾹 설렁설렁 느릿느릿 잰걸음... 어떤 식으로든 눌러 담긴 인생의 뒤축들. 그걸 함부로 대하실 수 없었음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아버지가 정성껏 고쳐 준 신발을 신고 구두방을 나섰다.  인생이 고쳐 질 수는 당연히 없겠지만 내 길을 더 나답게 걸어갈 순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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