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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구리 Mar 29. 2021

조직 부적응자입니다만,

#1. 사회 부적응자는 아니지만, 조직 부적응자입니다.

너는 사회 부적응자는 아닌데, 조직 부적응자야.


어렵사리 입사한 첫 회사는 작은 광고 에이전시였다.

입사한 지 2개월은 되었을까. 어느 날 주임이 회의실로 나를 불렀다. 왜 회의실로 불렀었고, 정확히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붉으락푸르락한 주임의 얼굴과 무거운 공기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오직 이 한마디뿐.

"너는 사회 부적응자는 아닌데, 조직 부적응자야!"



꾸밈없는 조직 부적응자


#1. 광고 에이전시 S
      주임: A카피 어때?
      나(인턴) : 저는 B카피가 더 효과적일 것 같아요.

A 카피는 주임이, B카피는 사원이 썼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A 카피를 주임이 썼다는 점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하지만 그보다 상사의 의견에 대한 공감을 서두에 깔고, 객관적 근거를 들어 나의 의견을 넌지시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다. (고백하자면, 연차가 쌓이고 나선 알고도 안 할 때도 꽤 있었다.)



#2. 중소기업 I
     팀장 : 이 구두 정말 예쁘지 않아? 하나 살까?
     대리 : 와~ 팀장님한테 딱이에요! 너무 예뻐요!
     나(사원) : ... (정말 너무 안 어울린다고 생각 중)


마음에 없는 칭찬, 입바른 소리는 조직에서 넘치게 필요하다. 예쁘게 말하는 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3. 대기업 계열사 N
      상무 : 요즘 회사 생활 어떤가?
      나(과장) : 좀 빡세긴 하지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어도 '상무님께서 워낙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따위의 대답이 필요했다. 다음 날, '빡세다'라는 단어를 임원 면전에서 사용하는 직원은 너 하나라는 꾸지람과 상무님이 매우 당황하셨다는 뒷이야길 구구절절 듣게 되었다.



꾸밈과 배려 그 사이


몰랐다. 물어본다고, 몽땅 사실대로 대답하면 안 된다는 것을.

낯 간지러웠다.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간질간질한 단어들을 내 입으로 내뱉는 자체가.

말랑말랑 유연하지 못하고 뻣뻣해서 더 쉽게 얻어맞고 쓰러졌다. 내가 맡은 업무만 열심히 한다면 굳이 간질거림 따위 필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제발 사회생활 이렇게 꾸밈없이 하지 좀 말자!
그럼 그냥 꾸밈없는 호구되는 거야.
출처 : https://youtu.be/nETFDpJyPDU 영상 캡처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상사인 손범수가 부하직원인 김환동에게 이런 말을 했다. 손범수가 연출할 드라마의 조감독을 맡고자 입봉을 거절한 환동에게 범수가 건네는 말이다.(이 장면 꼭 보시길 8:57부터~) 드라마에 현실을 반영하지만, 드라마는 절대 현실이 아님을 안다. 현실이었다면, '환동아 내년에 내가 너 꼭 입봉 시켜줄게!'라는 공수표를 날렸을 가능성이 99%다.


알면서도, 이 장면을 보곤 뒷맛이 씁쓸했다.

조직 부적응자라는 단언 대신 애정 어린 조언을 들었다면 나의 커리어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어린아이가 부모를 통해 사회적 언어를 그대로 배우듯, 신입시절에 상사를 통해 조직의 언어를 배운다. 조직 문화와 같은 환경 또한 중요하겠지만, 단 1명이라도 멘토가 있다면 조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꾸며서라도 서로 배려한다면, '조직 부적응자'가 탄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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