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잘 풀리고 어느 정도 유능한 강사로 기능하는 자아효능감을 느끼며 사는 중에도 뱃속 어딘가를 묵직하게 누르고 있던 것이 있다.
'근데, 쓰고 있지 않다.'
생각해보니 드라마작가지망생인 자의 정제된 분노.
자연소멸 위기에 처했던 내 또다른 자아는 서러움의 1년을 딛고 분노의 원천에서 폭발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만 자아와의 화해를 결심한 난 나의 새벽을 기꺼이 헌납했고 물 들어 올 때 노젓기를 멈추지 않았더니 배는 순항중이다.
지난 1년 내 뱃속을 누르고 있던 말들 중, 작가협회연수생 시절 작가님께 들었던 말.
"여러분은 왜 여러분이 만든 인물들이 어디에서 뭘 하며 시간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하지 않나요?
그러니 우리 같은 늙은 이들이 계속 필드에서 쓸 수밖에."
그때는 허접한 노력이 그냥 드러나는 나의 대본 합평시간이었고 전에 없이 다소 격앙된 작가님의 언사였음에도 큰 각성은 없던 나였다.
근데 그 지나간 말이 요근래 순항하는 배와 같이 머릿속을 떠다니는 중이다.
무인카페에서 내려 주는 쪼르륵 추출 소리를 들으며
철쭉 화단을 킁킁 대며 지나가는 남의 개를 관조하면서
난 오늘 새벽에도 쓰다 만 나의 여주와 남주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져 버렸다.
'이게 사는 거구나.' 라는 같잖은 사색도 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