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francisco, USA
다현이가 이상하다. 분명 나보다도 더 체력이 좋았던 아이였는데 분명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의 오르막을 벅차하고 있었다. 걸음이 느려지고 숨을 가빠하는 그녀를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6년 전에 함께 러시아 여행을 했을 때만 해도 내가 분명 더 체력이 안좋았는데 열 걸음은 내가 앞서가는 걸 볼 수 있었다. 키가 비슷해 보폭이 비슷한 우리는 구경하는 것도 걷는 것도 좋아해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는 여기저기 거닐며 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이곳에서 노숙자가 무서워 빠른 보폭으로 걷는 나를 버거워하는 그녀를 보니 정말 정말 마음이 안 좋았다.
갑자기 왜 이렇게 식욕이 좋아지고 체력이 안 좋아졌나 했더니 그녀는 갑상선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불규칙한 생활패턴에 쉬지 못하는 일이 문제였고 아직 나도 도전하고 있는데 너는 더 할 수 있다고 하루빨리 그만두라고 여행 내내 그녀에게 퇴사를 권유했다. 퇴사 기념으로 함께 여행을 가고 싶은 건 내 사리사욕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녀와 이곳에서 일주일밖에 함께하지 못하는데 비가 온다니 지난밤 너무 많은 걱정을 했다. 뭐 비 오는 것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지만 샌프란의 하늘을 맑아야 더 이쁜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지난 걱정을 땅에 던져 짓밟기라도 한 듯 하늘이 너무너무 파랗다. ‘그래 맞아 역시 이게 서부의 하늘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 나와서 대로변에 있는 필즈커피로 향했다. 솔직히 나는 여행할 때 맛집이니 뭐니 그런 거 알아보고 여행하지를 않아서 몰랐는데 필즈커피가 샌프란시스코 삼대 커피로 유명하고 뭐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꼭 가봐야 하는 카페에다가 민트라테? 그게 유명하다고 맛집을 잘 찾아보는 그녀가 그랬다. 우리가 갔던 필즈커피 지점에는 그 라테를 판매하지 않아서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그 외에도 많은 향을 첨가해서 라테를 판매하고 있는 듯싶었다.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사서 아침을 때우곤 살살 내가 꼭 다시 가고 싶었던 더 페인티드 레이디스로 향했다.
길가에 가로수보다도 노숙자가 즐비하다. 경직되어 있는 나를 발견한 그녀는 앞에 노숙자가 나타날 때마다 나를 지켜주는 보디가드처럼 걷는 위치를 바꿔주고 나를 밀어주고 당겨주기도 했다. 함께 여행한 지가 8년이니 그럴 만도 했지만 그녀는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내가 낯설고 안타깝다고 했다. 시청 쪽에 가니 무슨 무료급식 행사라도 하듯 정말 너무너무 많은 노숙자들이 있어서 진짜 숨이 멎을 거 같았다. 두려움에 패닉상태에 온 나를 그녀는 다른 길로 안내했고 그 길엔 엄청나게 유명한 빵집이 있었다. 잘 모르는 나를 이끌고 그녀는 빵집에 들어섰다. 평소에 패스츄리류 빵을 좋아하는데 진열장 안에 가득 쌓여있는 빵들을 보니 눈이 돌아갔고 그렇게 빵 두 개를 포장해 다시 목적지로 향했다.
더 페인티드 레이디스는 알라모스퀘어에 위치한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로 6채의 건물이 알록달록 이쁜 색으로 자리하고 있다. 180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처음엔 이렇게 귀여운 색들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사전을 찾아봐야겠다. 17년도에 이곳에 왔을 땐 모 그냥 이쁜 건물이 구나 싶었는데 그 이후에 갑자기 마블영화에 아주아주 푹 빠져서 정주행을 하고 영화를 볼 때마다 내가 다녀온 곳이 나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그 이후에 이곳에 더 빠져버리기도 했다.
6년 전 왔던 이곳에서 똑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고 싶어 잔디밭을 뛰어다니다가 넘어졌다. 넘어지는 순간을 직감을 하긴 했지만 황당함을 감출 순 없었다. 토끼눈을 하고 달려오는 다현이의 손을 잡고 괜찮다고 하며 일어나긴 했지만 창피함이 사라지진 않았다. 툭툭 털고 일어나 공원 내에 있는 화장실에서 진흙이 뭍은 손을 닦으려 했는데 물이 안 나올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해 가지고 있는 물로 대충 손을 헹구어냈다. 이렇게 또 웃긴 기억 하나가 남아버렸다.
점심때를 놓치기 전에 얼른 내가 사랑하는 Pier39로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항구에 도착했다. 평소에 우리 같았으면 거뜬히 걸어서도 갔겠지만 다현이의 체력도 걱정이었고 가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고 노숙자가 무섭기도 했다(사실 아무도 내게 해를 가하진 않았다). 분명 1월은 겨울임이 분명한데 햇살 가득한 항구는 모든 색들을 더 다채롭게 만들었다. 항구라는 장소가 주는 느낌은 분명 떠나는 장소인데 만남의 장소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고 그 느낌들이 우리를 더 설레게 만들었다. 오늘은 내가 다현이에게 맛있는 점심을 대접하기로 한 날이어서 맛있는 밥을 먹을만한 식당을 찾아 들어가 멋진 음식과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소화를 시키기 위해 항구 근처를 산책하다 그녀의 힘 빠진 미소를 보고는 잠깐 앉자는 말을 먼저 건넸다. 언니 힘드냐며 내게 물었지만 그보다도 나는 단번에 힘 빠진 그녀의 미소를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좀 힘들다고 거짓말을 했다. 벤치에 앉았는데 바로 잠에 들어버리는 그녀를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아 좀 쉴 수 있게 시간을 주었다.
집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하루가 또 마무리된냥 해가 붉게 변하고 있었다. 마지막 항구에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부탁해 난쟁이 같은 사진을 함께 찍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에 길을 나섰다. 숙소에 돌아가기 전에 내 친동생이 부탁한 슈프림매장에 들르기 위해 향했다. 매장에 가는 길, 민가에는 노숙자가 있지 않아 긴장감을 늦추고 여유로이 사진을 찍으면 길을 걸었다. 그리고 매장까지 몇 블록 남겨놓지 않고 아주 심각한 도시 상황을 마주했다. 제대로 된 노숙자 촌을 지난 것이었다. 아름답고 깨끗했던 도시의 풍경이 변해져 있을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 방금 먹은 저녁이 매스꺼워질 만큼 지독한 샌프란시스코의 밤거리는 한겨울의 나를 식은땀에 젖게 만들었다.
카카오톡 영상통화로 한국에 여행온 중국인 마냥 옷을 고르는 동생이 원망스러웠지만 별 수없는 피붙이였다. 그렇게 도미토리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과거 싱가포르에서 호텔리어를 했던 다현이의 바람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제일 오래된 호텔에서 하루를 묵기로 해 체크아웃 후 호텔에 짐을 맡기고 항구 근처에서 자전거를 빌려 금문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건너 소살리토로 향하기로 했다. 자전거를 빌리는 도중 말 같지는 이유로 다툼이 있기는 했지만 내게 다가와 조카를 달래는 이모 같은 다현이 덕분에 나는 속상한 마음에 울음을 터트리고 그렇게 상황이 모마돼었다. 어제와 같이 금문교 위에서 과거와 같이 사진을 찍었다. 다른 시간에 같은 곳에 있는데 나는 똑같이 그렇게 맑게 웃고 있었다. '언니 봐바 어때? 마음에 들어?' 하고 사진을 보여주는 다현이의 모습에서 친동생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소살리토를 다시 간 이유는 그곳을 가기 위해 달리는 도로에서 보이는 풍경이 정말 환상적으로 행복한 풍경이 여서도 있었지만 내가 정말 인생에서 최고로 맛있게 먹은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다시 먹고 싶어서도 있었다(나는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집은 아직도 줄이 즐비했고 불안한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배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냥 포기하겠다며 항구로 가자고 했다. '언니 정말 안 먹어도 괜찮겠어?' 라며 재차 질문하는 다현이에게 '괜찮겠어!!!? 저 패티를 봐!!!'라고 하고 싶었지만 비교적 성격이 나보다 여유로운 그녀는 무조건 ‘내가 햄버거를 사서 뛰어갈게’ 라고 할게 분명했고 나는 그러다가 다현이가 마지막 배를 놓치는 상황을 상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와 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내준 언니에게 고맙다면서 하루에 백만 원에 달하는 숙소를 통 크게 결제하는 다현이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았고 우리는 맛있는 피자를 사들고 집에 들어왔다. 이때 돈 써야지 생각한 나는 초밥을 좋아하는 다현이에게 우버를 통해 맛있는 저녁을 대접했다. 피곤함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이 비싼 호텔에서 그냥 잘 수는 없는 법.. 호텔 수영장에서 늦은 밤 단 둘이 수영을 즐겼고 베트남에서 물을 왕창 먹으며 처음으로 다현이에게 수영을 배운 나는 약 팔년이 지난 지금 다현이보다 수영을 잘하고 있었다.
아주아주 오랜만에 함께 해외여행을 하는 우리는 싸우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양가의 감정들을 느끼며 어찌어찌 시끌벅적한 하루들을 보내고 있다. 이야기로 하루가 가득하다는 거 살아있다는 느낌을 느끼기에 아주 충분한 느낌이라 그래서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언제나 언니와 함께하면 싸워도 좋다는 그녀의 마음이 더 느껴져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고 함께 웃을 수 있어서 그래서 그녀가 내 여행메이트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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