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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Sep 27. 2023

23.9.27 나의 상담 일지_9b

온전한 의존, 온전한 독립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여느 때처럼 더 이어나갔다.

대화내용을 빌어 그리고 과거의 기억들을 더듬었다. 선생님께서는 엄마가 그래도 나를 좀 도와주려고 하는 모습들이 비친다고 하셨다. 맞다. 나는 도움을 떠나 엄마아빠에게 분명한 사랑을 받고 있는 첫째 딸이지만 그 마음들이 붙어져있지 않고 가족 내에 어딘가 흩어져있는 느낌이 강했다. 분명하지만 흐릿하달까. 최근에 마지막으로 엄마와 싸울 때도 그랬다. 동생의 생일날 저녁상에서 나온 이야기가 싸움으로 번졌다.


소위 말하는 엄친딸, 아들 들은 좋은 회사에 취직하거나 끝내주는 곳에서 결혼을 했거나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근데 더 그전으로 들어가면 엄마의 고향친구분들은 어쩐지 전부다 생활이 편안한 정도로 잘 살고 계신다. 그러니까 부자다. 든든한 지원을 등에 메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회사에 취업하거나 해외유학을 다녀왔다면 과연 나도 겨우 지금만큼만 부모님께 무언가를 해드렸을까. 엄마는 항상 내게 '네가 돈만 여유 있게 있으면 우리한테 더 잘할 거 알아.'라고 하시지만 가끔은 친구분들이 엄마에게 하신 자랑들을 내게 늘어놀 때 엄마가 밉기도 했다. 내가 그만큼 못해줘서 미안하고 속상해하는 거 알면서 굳이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아야 할까.


근데

오늘 선생님께 또 새로운 시각의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 한 테로부터 저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입 밖으로 나오는 나의 말은 대부분 '엄마 나도 할 말 많아.' 혹은 '엄마 우리보다 부모한테 더 받고 자란 사람들도 많아.' 같은 공격성이 가득한 말들이었는데 그 말을 하고는 항상 싸움이 시작되기는 했었다. 선생님께서는 나의 말을 들으시자마자 친구들처럼 자식에게 못해준 엄마도 본인 자신이 밉고 싫어서 그 속상한 마음에 더 싸움이 됐을 거라고는 생각해 봤냐고 하셨다. 그리고 그 뒤에 엄마가 어떤 모션을 취했는지 봤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항상 싸움이 생기면 나는 집 밖으로 나가 울면서 걷다가 집에 들어와 그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마음을 짐작한다는 거 참으로 위험한 일이라는 걸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결국엔 아쉬움이 큰 두 사람이 서로를 물어뜯어왔던 것이었다. 서로 극과 극의 상황에 왔을 땐 나의 속상함을 또 상대의 속상함을 들여다보고 그 감정을 그대로 묻어두지 말고 제대로 마주한 뒤 나에 대해 또 상대방에 대해 알아봐야 했다.

상담이 끝나고 조금 더 든든해진 것 같은 마음으로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어제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사실 공부하고 싶다고 하면 엄청 뭐라 할 줄 알았는데 그래서 엄청 용기 내서 얘기한 거거든 엄마가 무슨 생각으로 아무 말 없이 들어줬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들어주니까 마음이 든든해지네 내가 항상 말했던 응원이 그런 거였나 봐 세상에 부모님이랑 이런 대화 한번 못해보는 사람들 많대 우린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좋은 대화를 나눈 거 같아 � 고마워'

그리고 바로 엄마에게 답장이 왔다.

'엄마는 네가 한 27살 정도 만해도 엄마가 조금만 더 능력이 있으면 다하라고 하고 싶어. 근데 일할 수 있는 나이는 얼마 남지 않아서 그게 미안하지. 엄마는 너희들이 하고 싶다고 하면 다해 주고 싶어. 하고 싶다는데 다해줄 수 없어 미안하지. 그래서 걱정이야. 그래도 엄마 마음을 이해해 줘서 고마워. 일단은 아직 일 년 남았으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자'

생각지도 못한 말들이 내게 와 내 마음에 꽃잎에 앉은 나비처럼 살며시 앉았다. 하고 싶게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 이렇게나 가슴깊이 들어왔던 적은 처음이라 말이다. 결국엔 선생님께서 추측하신 엄마의 마음이 너무 맞아서 아직도 나는 철없는 어린 딸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엄마도 엄마 나름대로 열심히 도와주고 있잖아. 나는 이렇게 말이라도 표현해 주면 돈보다 그게 더 좋아.'

라고 내 마음을 한번 더 비췄다.


내 힘으로 오로지 했다고 믿는 여행도 그림도 결국엔 어떤 순간, 장소, 누군가와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것이었는데 오로지 나 혼자 해결했다고 믿어왔던 지난날에 조금은 단면적인 인간이구나 싶기도 했고 조금은 마음을 더 편하게 먹게 되었다.


도움받지 않고 혼자 해내려 했던 지난 나의 마음들. 자립심이라 부르고 오기라고도 읽을 수 있는 그 마음들을 이제는 좀 내려놓고 조금 더 편안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도움을 받는 것과 능력이 없는 것은 아예 다르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깊이 머릿속에 깊이 되새겨 감정의 안정성을 가질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온전히 기대어봐야지만 온전히 독립이 가능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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