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liesu Jun 16. 2024

10. 생생한 마음

Kadikoy, Turkey


걱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 이겠지만 그래도 이 여행은 지금껏 해왔던 것과는 너무나 달라서, 그 없이 이곳을 느껴보는 날이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줄곳 생각해 왔다. 사실 걱정을 했던 이유는 터키라는 나라의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영어 능률이 떨어지는 것도 있었고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속된 말로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도 좀 무서웠다. 타지에서 이방인은 당연히 낯선 존재이지만 말이다.

집에서 채 이십 걸음도 되지 않는 버스정류장까지만 나를 데려다주겠다는 그를 극구 말렸지만 그의 불안한 눈빛을 나는 느꼈기에 함께 집을 나섰다. 자신보다 7살이나 많은 내가 뭐가 그리 걱정이 되는지 내가 아무리 나 여행 경력자라고 말해보아도 그의 마음속에 그 말이 닿지 않고 그의 마음엔 사랑과 걱정의 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어플에 위치공유 서비스를 활성화시키라는 그의 말에 바로 어플을 켜며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대중교통을 타고 내릴 때, 장소를 변경할 때마다 알려달라는 그의 말에 웃으며 알겠다며 답장을 보냈다. 그의 집 근처에는 대학병원이 많은데 그래서인지 버스에 오르내리는 사람들 중 노약자가 많다. 그래서 더 그러는 것 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버스에 올라타면 유난히 사람들의 눈길을 많이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없이 혼자 올라탄 이 버스에서 정말 많은 이와 눈을 마주쳤다. 눈을 마주친 후에는 무슨 표정을 짓는 게 좋을지 정답일지 모르겠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단 말이 있듯이 그저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한 번도 빠짐없이 그들에게서 기분 좋게 돌아왔다.


울퉁불퉁, 잘 정리되지 않은 길을 지나 이스탄불에서 손에 꼽히게 큰 환승역인 예니카프역에 도착했다. 발음하기도 힘든 나의 목적지인 그곳에는 아이친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스탄불에 와서 그녀를 알게 되고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게 우리들끼리 하루를 보내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왔다. 마침 그의 시험이 얼마 남지 않기도 했고 그의 부축 없이 계단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다쳤던 발이 많이 좋아지기도 했고 제일 중요한 건 낯을 많이 가리는 내가 이제는 조금 부담 없이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쯤이 딱 좋겠다 생각했다.

귀를 한껏 긴장시키고 전철에서 들리는 안내음을 들었다. 마음 편히 노래를 들을 수는 없었다. 발음하기도 힘든 그 역에 도착했다는 걸 알아채고 내리려면 내게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터키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처럼 전철역에 도착도 하기 전에 내릴 준비를 하지 않으니 나라도 긴장을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안 그럼 인파에 휩쓸려 내리지 못할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이친과 그녀의 남자친구인 부락은 전철역 입구가 잘 보이는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멀리서부터 손을 흔드는 그들을 보니 따스한 온도가 생생히 돌아와 미소가 지어졌다. 오는 길에 그녀가 생각났다며 꽃을 들고 있는 부락도 그의 말에 귀여운 미소를 지어 보이는 아이친도 한 겨울 따뜻한 온기를 만들어내 주었다. 우리는 잠깐 수다를 끝내고. 부락을 보내고 아이친이 추천하는 동네로 향했다. 카디쿄이는 터키 젊은이들의 핫한 동네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경리단 길이나 로데오 거리 같은 느낌이었다. 하늘이 우리보다 낮은 터키임에도 어느 식당 하나 저렴한 곳은 별로 없었고 음식 한 플레이트에 우리나라돈으로 대부분 사만 원을 넘겨 적잖이 충격이었다. 나의 속 사정도 그냥 지갑 사정도 별로 좋지 않아 우리는 일단 마켓으로 향했다.


걸스 나잇을 한껏 기대하던 아이친은 오늘 무조건 술을 취해한다고 계속해서 말했고 나는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마켓에 들어간 우리는 작은 병으로 된 와인 두병과 감자칩 하나를 구매했다. 그리고 해변가로 향했다. 이미 해가 다 진지는 오래였고, 해변가에 피크닉매트를 깔겠다고 바리바리 싸 온 그녀가 나는 귀여울 뿐이었다.

되지 않는 영어로 얼마나 많은 나의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you know what I am saying’이라는 말을 되풀이했고 고맙게도 그녀는 나의 말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녀는 남자들의 우정을 빼고도 우리가 정말 진정한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줬다. 한참 동안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는 아이친은 해변가 망 끝에 있는 곳에서 볼일을 보고 왔고 우리는 내가 아이친의 와인을 모두 뺏어 먹고 나서야 레스토랑으로 향할 수 있었다.

터키에 있는 식당에서 이만큼 비싼 돈은 쓸 수 있을지 상상도 못 해 봤는데 그 정도로 비싼 돈을 쓴 오늘이었지만 아이친과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깊은 대화를 나누 오늘을 기념하자면 그렇게 아까운 돈도 아니었다.


그녀의 집에 가는 길. 전철 안에서부터 속이 안 좋았다. 빈속에 신나서 마셔버린 한 병하고 반 병의 와인이 탓이었을 테지. 도저히 서있을 수 없어 우리나라 철없는 십 대 청소년들처럼 전철 문 앞에 쪼그려 앉아버렸다. 그리고 전철을 갈아타기 위해 전철에서 나서자마자 반대편 레일에 토를 하고 말았다. 토를 하는 내가 민망할 걸 생각했는지 그녀는 내게 이목이 집중되지 않기 위해 동영상 녹화를 하며 춤을 춰보였다. 플랫폼에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지어낸 노랫말은 나중에나 알 수 있었지만 그녀는 엉뚱한 사람임에 없었다.

결국 다 게워내 버린 라자냐도 값비싼 한잔의 와인도 한 병하고 반 병의 와인도 감자칩도 아쉬웠지만 추억은 그대로 우리에게 남았고 금액과 상관없이 그 음식들은 토사물이 되어 레일 위에 버려져버렸다.


이제는 너무나 편안해진 그녀의 집 소파에서 너무나 달콤한 잠을 잤다. 나랑 성향이 비슷한 거 같은 그녀의 친구와 함께 집에서 아침을 해 먹고 나를 데리러 오는 그를 기다렸다. 자기 없이 재밌었냐는 그의 말에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고 다른 말로 돌려버린 나였다.


집에 들어오니 역시나 청소를 하고 간 게 무색하게 만큼 또 더럽 펴져 있었다. 컨디션이 안 좋았던 나는 침대에서 쉬고 그는 책상에 앉아 독일어 공부를 했다. 오 분만 오 분만 하다가 1시간 반쯤 쉬었을까, 샤워하고 나왔다. 침대에 널려 있는 빨래들을 정리하다 미네랄워터가 먹고 싶어 남은 게 있냐 물었다. 아마 없을 거라는 그의 대답에 아쉬운 표정을 짓자 한 채 고민도 없이 사러 갈까?라고 묻는 그였다. 열두 시가 넘은 시간에 밖에 내 보내는 게 미안했지만 참을 수 없는 갈증에 그에게 다녀와 달라고 부탁했다. 침대에 있는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침대보도 새로운 것으로 교체했다. 그는 바깥바람이 찬 지 한껏 상기된 얼굴로 병들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집에 들어왔다. 안경을 쓰고 미네랄워터 병뚜껑을 따고 책을 꺼냈다. 오늘의 나는 얼굴이 잿빛이 될 만큼 컨디션이 안 좋았지만 늦은 시간 귀찮음을 무릅쓰고 빨래통에서 신었던 양말을 다시 찾아 신고 밖에 다녀온 이의 생생한 마음을 봤다.

Jan6-7

작가의 이전글 11. 일상의 일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