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철-아홉 마리 금붕어와 먼 곳의 물
외톨이 같은 성향이 있는 나는 한 번의 인생의 고비를 넘기고 나에 대해 더 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설적으로 나를 파악하고 들쳐봤으며 내 안의 이면에 대해 생각했다. 그 뒤 같은 대학원에 재학하고 있는 S의 말에 ‘나 자신을 까뒤집어가며 이해하고 알아가면 차차 타인과 우리에 대한 포용력이 생깁니다.’라는 말에 작게나마 공감했다. S는 평소 내 마음속 가려운 한 구석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말들을 주로 작가노트에 쓰고는 하는데 처음에 S의 그림을 마주하고 S의 생각이 걸어간 궤적을 마주했을 때는 너무 솔직한 언어들과 날것의 감정들이 부담감과 거부감 같은 것을 주었지만 나를 알아간 뒤로는 어쩌면 이것이 일상의 언어이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여름 공허가 가득하던 그 여름, 안규철 작가의 글을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때 마주했던 안규철 작가는 내 마음속 깊은 곳 오랫동안 켜지지 않았던 횃불 하나에 불을 붙이듯, 그렇게 어쩌면 넋 놓고 흘러갔을 내 삶을 일깨워줬었다.
사람의 내면을 관찰하는 S와 다르게 안규철 작가는 사물들 속에 깊이 새겨져 있을 그들의 체념과 그리움과 원한을 기억해야 한다고 한다. 사물들에게도 지난 시간들을 기억하고 추모할 여백 같은 것들을 남겨주어야 한다며 말이다.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 할지 몰라도 우리는 세상에 대한 골똘한 관찰자가 되곤 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책처럼 읽고 들추어서 지금의 삶으로 나를 이끌어야 한다.
안규철 작가는 작가로서의 나를 일깨워주었다. 여러 종류의 두려움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예술가는 어떤 종류의 두려움을 다루는지, 어떤 것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예술로 하여금 어떠한 세상에 어떠한 고백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예술과 삶의 불화로 인해 고민하던 나의 모습을 사물의 형상에 빌려 표현한다면 이런 모습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이름 없는 예술가는 나무 의자 하나를 화분에 심고 가꾸며 그 의자가 잃어버렸던 나무의 본성을 기억해 내서 다시 자라는 것을 상상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한참 뒤 문득 그 의자의 안부를 물었다. 오래 잊고 지냈던 것을 부끄러워하며 의자가 아직도 그 화분 속에 있는지, 그 불가능한 꿈을 포기하고 다시 누군가의 의자로 되돌아가버린 것은 아닌지 물었다.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가슴을 쳤다.’
예술가는 삶이 아무 흔적 없이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하고 평생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할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구름 같은 것을 남겨두어야 한다. 작가의 말처럼 무수한 시간을 맞은 조약돌 하나 하찮은 것이 없는데 우리의 시간을 얼마나 소중할까.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는 인내하고 기다리고 침묵하는 식물의 미덕을 배워야 한다. 침묵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말이다.
언젠가 책을 낸다면 꼭 안규철 작가 같은 어투로 글을 써 내려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문장에 가득한 온기와 다시금 곱씹어보게 만드는 문장들이 내가 바라던 바와 같았다. 쉽게 가시지 않고 내가 남긴 말들이 가슴속에 남아 하나의 배경 같은 글들 말이다.
May 7 13:18
-일부 작가의 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