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시 십오 분에 일어나 알람을 끄고 다시 잠에 들었다. 이상한 꿈을 꿨다. 무슨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모두가 날 좋아하는,
이층에서 누가 내려오는 소리에 눈을 뜨니 시간은 벌써 9시가 되어있었고 Y는 출근을 한다고 했다. Y의 동생을 데리러 점심에 돌아올 테니 그때 같이 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난 짧고 작은 소리의 탄식을 질렀다.
지금까지 제주도의 제일 큰 단점은 여름의 습기도 가을의 바람도 아닌 교통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틀 전 Y의 회사에 차를 두고 왔고 바로 이용가능한 교통수단이 택시밖에 없어서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면 교통이 제주의 제일 큰 단점이 맞다. 오늘도 이렇게 아무 하릴없이 오전시간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과 한숨이 밀려왔다. 생각 없이 핸드폰을 보다가 지도교수님의 걱정스러운 안부전화를 받고 잠자리에서 나왔다. 한참 동안의 통화뒤 일단 준비를 하고 커피를 마시면 오전시간을 버린 것 같은 마음이 괜찮아지겠지 싶어 마음을 안정시켰다.
사실 차로 40분 거리를 버스 3번을 갈아타고 2시간 30분에 걸려서 나의 차가 있는 곳으로 갈 수도 있지만, 크게 할 일도 없는 내가 쓸데없이 이율을 따졌고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그 핑계덕에 햇살이 잘 드는 Y의 집 베란다에서 좋은 노래를 틀어놓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는 밀린 드라마를 봤고 말이다.
얼마 전부터 든 생각인데 제주에서의 다이내믹한 하루하루를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둘까 생각 중이다. 영상일기를 쓰는 것처럼, 그럼 조금 더 크리에이티브한 하루들을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아무래도 작가라는 직업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기록하는데 초점이 되어있기도 하고 내가 영상 만들기를 좋아해서도 있지만 이러면 좀 더 바라보고 우울증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책을 읽으려다가 햇살이 너무 이뻐서 핸드폰 비디오를 켜고 베란다 곳곳을 담았다. 오늘부터 하나 더 늘어난 할 일은 제주 자연의 이쁨을 담는 것, 며칠하고 게을러지지 말 것. 일주일에 3개 정도의 영상은 남겨야지. 아주 짧은 쇼츠라도. 그래, 그러다 보면 누군가 나의 영상이나 글을 기다릴 수도 있고, 그럼 나도 그 기다림에 부흥하고 싶을 거고 그러면 더 살고 싶어 지겠지.
Y와 함께 점심을 먹고 제주시에 치료센터를 오픈하신 펜션 사장님께 찾아갔다. 치료를 받을 생각은 없었는데 온 김에 무료로 해주겠다는 사장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목은 조금만 보고 족저근막염을 봐주시기로 한 거였는데, 사십 분을 넘게 목만 풀었다. 장사하는 게 아니라 진짜 심각한 거라고 하시더니 치료가 다 끝나고는 강남에서 이 정도 받으면 20만 원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별로 궁금하진 않았는데,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네비의 목적지를 작업실로 해 두고 향했다. 얼마 전 밑 칠을 해둔 유화가 다 마른 거 같아서 이제는 정말 더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고 나니 해가 다 져있었고 세 시간이 흘러있었다. 역시 내게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건, 최대 집중력을 올릴 수 있는 건 작업을 하는 걸 거라고 또 생각했다. 학교동생이 부탁한 포스터를 제작하고 집으로 향했다.
주황빛을 한 달이 손에 닿을 만큼 낮게 떠있었다. 죽기 전에 우주선을 타볼 수 있을까? 돈을 많이 벌면 타볼 수 있겠지.. 그렇다면 별이 아주 잘 보이는 북유럽은 어떨까? 아무튼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있는 곳을, 죽기 전에 가보고 싶다.
20251028 2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