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에 훌쩍 배낭 메고 홀로 떠난 행복했던 걷기 여행기
경로: 알레스야우레(Alesjaure) 전방 10km 지점 -> 첵차(Tjäktja) 전방 4km 지점
걸은 거리: 22km (아이폰 건강 App)
걸은 시간: 6:20 ~ 16:00
난이도: 하
강평: 포기할 것은 빨리 포기하면 편하다. 안전에 대한 주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알레스야우레(Alesjaure) STF Hut에 도착한 것은 대략 12시경이었다.
이곳에서 할 일은 다음과 같았다.
집에 전화를 한다.
점심을 먹는다.
간식거리를 구입한다.
여행 첫날 아비스코 투리스테이션(Abisko Turistation)에서 Wi-Fi로 가족들에게 연락한 이후로 이틀 동안 전혀 연락을 못했다. 쿵스레덴(Kungsleden) 구간에는 대부분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 아비스코(Abisko), 살토루옥타(Saltoluokta), 크비크요크(Kvikkjokk)와 같은 STF 마운틴 스테이션(Mountain Station)이 아니면 전기도, 인터넷도, 온수도 없다. 대신 대부분의 STF Hut에 전화는 구비되어있어 비싸지만 통화를 할 수는 있다.
한국으로의 전화는 1분에 25 SEK (=3,700원)이었다. 아내는 뜻밖의 전화에 살짝 놀란 듯했고 집에도 별일 없고, 나도 별일 없이 (몇 번 넘어지기는 했지만) 여행을 잘하고 있다고 간단히 통화를 했다.
전화는 시간이 되면 저절로 끊기는 자동 시스템이 아니라 매뉴얼 하게 책정된 비용이 1분에 25 SEK인 것이고, 통화 후에 산장지기에게 양심껏 시간을 말하고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하는 아날로그 시스템이었다.
이때까지 STF 회원은 Hut에서 당일 시설(부엌, 휴게실 등) 이용을 추가 비용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몰랐다.
알레스야우레(Alesjaure) STF Hut은 아직 여름 시즌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뭔가 정돈되지 않고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느낌이었고 몇 안 되는 다른 여행자들도 그냥 가만히 앉아서 쉬기만 하고 있었다.
원래는 밥을 해서 식사를 해야 했는데 그냥 구입한 간식만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가끔 외국 여행자들을 보면 점심을 아주 간단히 먹는 사람들을 보는데 그들은 그들이고 우리는 아니 나는 밥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아 그날 고생을 했다. (에너지 고갈)
여기 STF Hut에서 구입한 것은 초코바와 과자, 그리고 그 과자에 발라먹을 치약형(?) 치즈이다.
이곳은 어디서든 영수증을 발급해준다. (당연한가???)
영수증을 보니 초코바가 하나에 5 SEK (=750원), 치즈가 75 SEK (=11,000원), 과자가 10 SEK (=1,500원)이었다.
테이블에 앉아 저 초코바 하나와 과자로 점심을 대신했다. 혹시 영양이 부족할까 싶어 치즈를 아주 듬뿍 과자에 발라 먹었다.
저 치즈는 이후로도 아주 유용한 칼로리 보충제가 되어주었다.
STF 마다 방명록이 비치되어있다. 방문객들은 투숙 여부에 상관없이 기록과 안전을 위해서 기입하는 게 좋다. 첫 번째 칼럼은 STF member 여부를 기록하는 것인데 누군가 처음에 날짜를 써서 그다음도 다 날짜로 쓰고 있다. 역시 첫 본이 중요해...
점심을 과자로 대충 때우고 잠시 쉬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알레스야우레(Alesjaure) 다음 목적지는 첵차(Tjäktja)인데 이곳에서 약 13km 떨어져 있어 마음먹으면 그곳까지 갈 수도 있지만 급할 것 없으니 오늘도 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텐트 치고 가기로 결정한다.
아까 개울에서 만났던 스코틀랜드 여성 여행객들과 다시 만났고 그들은 내 DSLR로 내 모습을 찍어주었다. 이번 여행 중 거의 유일한 전신샷이다. 저 주황색 타월은 스포츠 타월이다. 색이 튄다.
나무길은 쿵스레덴(Kungsleden)의 상징이기도 하다. 매년 수만의 트래커가 이곳을 걸을 텐데 인간이 반복적으로 접촉하는 구간을 최소화하여 자연을 보호하려는 정책인 것 같다.
하루 종일 걷는다는 것은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일 것이다. 매우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낄 수도 있고, 가도 가도 끝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걸으며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 생각이 나기도 하고, 그들과의 여러 에피소드, 했던 일들, 해야 할 일들, 안 했으면 하는 일들, 아쉬웠던 기억, 흐뭇했던 기억, 후회되는 기억, 미래의 우려, 계획, 소망 등을 생각하기도 하고, 입으로 중얼거리기도 한다.
눈으로는 풍경을 봐도 보지 못하기도 하고, 귀로는 소리를 들어도 듣지 못하기도 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무슨 요리부터 해 먹어야지, 집에 도착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반가워할까, 종착지에 도착할 때면 어떤 느낌일까, 나는 어떤 포즈와 장면으로 그 장면을 극적으로 기억할까, 나중에 이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
학교를 다니고, 사회에 나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게 엊그제 같은데 앞으로 그만큼의 시간이 그 이상의 속도로 흐르면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때는 어떤 느낌일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까?
연락한 지 한참 된 친구나 지인들에게 연락해야겠구나, 수십 년 동안 잊고 있었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던 아이 때 친구의 모습과 추억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고, 그 순간이 지속된다. 그 순간은 얼마의 시간 동안이었는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엔가 어떤 자극에 의해 불현듯 현실로 돌아온다.
눈앞의 풍경은 바뀌어있다.
점심을 초코바 하나와 치즈를 듬뿍 바른 과자만을 먹고 걷는 걸음은 금세 기운이 떨어진다. 오늘도 오후 4시쯤 일정을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저께와 어제 같은 절경을 찾아 짐을 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기에는 오늘의 일정이 너무 길었고 몸안에 남은 에너지가 없다.
길을 조금 비껴 난 곳에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텐트를 쳤다.
보통 타프도 텐트 위에 치는데 오늘은 그것도 귀찮고 힘들다. 그냥 텐트만 쳤다.
바람이 많이 불어 텐트가 휘청한다. 텐트 옆면이 바람에 밀려서 텐트 내부 공간이 줄어들었다.
저녁으로 무엇을 해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기록도 없고 사진도 없다.
다행히 안경은 텐트 안에서 발견되었다. 먼지만 묻었을 뿐 흠집 하나 생기지 않은 멀쩡한 상태로... 이쯤 되면 운이 정말 좋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안경은 후에... 휴...)
오늘은 이렇게 일정을 마무리한다.
잘 자요 모두들...
To be continued...